22.04.24(주일)
혹시나 했지만 허리는 여전히 아팠다. 어제보다는 통증이 좀 덜하긴 했지만 정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타이레놀을 먹으니 통증이 조금 사라지긴 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집안일과 육아를 비롯한 여러 일에 힘을 보태지 못했다. 아주 자잘한 일은 물론이고 평소에 내가 함께 있으면 거의 내가 맡는 서윤이 안아 주기, 각종 무거운 짐 들기, 트렁크 열고 닫기, 트렁크에서 유모차 꺼내고 넣기 등의 일도 모두 아내가 했다.
서윤이는 오늘 엄청 까불거렸다. 예배당에 들어가서도 한참 동안 떠들고 움직였다. 예배드리는 시간이니 조용히 하라고 하면, 약간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잠시 목소리를 낮췄다가 금방 시끄럽게 까불고 그랬다. 다만 그 정도가 지나치지는 않았고 애매하게 줄타기를 했다. 아내와 나의 분석에 따르면, 서윤이는 소윤이처럼 눈치가 빠르고 둔하지 않지만 거기에 막내 특유의 애교와 능청스러움이 가미된 녀석이다. 아내와 나는 서윤이를 보다가 실소를 보일 때가 많다. 그렇게 한참을 까불던 서윤이는 결국 유모차에 앉아서 잠들었다.
주일마다 가던 식당이 오늘은 문을 안 연다고 했다. 사장님께서 지난주에 미리 알려주셨다. 근처의 다른 식당을 물색하다 돌솥밥 파는 가게에 들어갔는데 손님이 가득했다. 전 손님이 먹고 나갔지만 아직 치우지 않은 빈자리에 앉았는데, 한참 동안 그대로였다. 그 사이 음식을 정하고 아내가 주문을 하러 주방으로 갔는데, 앞에 주문이 많이 밀려 있어서 엄청 오래 걸릴 것 같다고 하셨다. 그분은 마치 분주한 지금의 상황의 당황스러움을 푸념하듯, 얘기하셨던 것 같다. 얼마나 걸리는 건지 그래서 기다리면 되는 건지 아니면 나가야 하는 건지 정확한 안내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나왔다.
또 갈 곳을 찾는 건 너무 귀찮았다. 바로 옆에 있는 피자 가게로 들어갔다. 프랜차이즈 피자 가게는 아니었다. 첫 번째 식당에서 다소 맥이 빠지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 대충 애들 배만 채우고 갈 생각이었다. 내가 그랬다는 말이다. 피자를 한 판만 시키자고 했는데 아내는 나의 양을 생각했는지 한 판을 더 시키자고 했다. 모든 것을 아내에게 일임했다. 기대가 없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피자가 맛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맛있다면서 잘 먹었다. 서윤이가 하나도 안 먹었다. 정말 거의 안 먹었다. 피자를 싫어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그때 식욕이 없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서윤이가 점심을 거의 안 먹은 건데 아내와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별로 의욕이 없었던 것치고는 남은 피자를 내가 다 흡입했다. 소윤이도 맛은 있다고 했지만 아침을 먹은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아서 얼마 못 먹었다. 오히려 시윤이가 더 많이 먹었다. 아내는 어디서 무얼 먹든 대강의 양이 딱 정해져 있고. 결국 남은 건 다 내 몫이었다. 한 조각 남은 건 포장해서 가지고 왔다.
“소윤아, 시윤아. 이게 한 조각이어도 나중에 엄청 맛있고 귀한 양식이 돼. 아빠 입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지만”
집에 와서도 허리가 여전히 아프긴 했다. 약효를 받은 건지 아침보다는 조금 나았다. 그래도 허리의 긴장과 불편이 너무 불쾌했다. 다른 날 같았으면 축구하러 가는 것도 관두고 집에서 쉬었을 거다. 하필 오늘 지인을 불렀다. 지인의 자녀들도 함께 온다고 해서 소윤이와 시윤이도 엄청 기대를 했다. 소윤이는 몇 번이나 내 허리가 어떤지 물었다.
“아빠. 아직도 허리 아파여?”
진짜 내 허리 건강을 걱정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혹시나 아빠가 더 아파져서 축구를 하러 못 가게 되고, 친구를 못 만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던 것 같다. 취소를 하기에는 너무 여러 사람에게 실망을 주는 거라 일단 가기로 했다. 가서 못 뛰더라도, 아이들이라도 놀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언제나처럼 축구하러 가기 전에 잠시 집에 머무는 동안, 졸음이 쏟아졌다. 소파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아내도 여느 때처럼 ‘방에 들어가서 좀 자고 나와’라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냥 도의적 책임 의식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아내 곁에서 도움을 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러 들어가는 건 미안하니까. 결국 그렇게 버티다 들어가서 잔 날도 무수하지만. 오늘도 결국 잠깐 눈을 붙이려고 했는데, 그전에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잠이 좀 깼다. 나가야 할 시간이 다 되기도 했고.
갑자기 옷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하는 아빠와 언니, 오빠를 보며 서윤이도 덩달아 흥분했다.
“아빠아. 우이 어디 가여어?”
서윤이에게 미안했다. 너는 안 가고 언니와 오빠만 가는 거라고 말했는데, 장난인 줄 알고 믿지 않았다. 서윤이는 우리가 현관에 나가서 신발을 신을 때도, 현관문을 열고 인사를 할 때도 장난인 줄 알았다. ‘진짜인가? 장난이겠지?’가 혼재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으며 ‘이제 그만하고 나도 데리고 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마 우리가 가고 나서 현실을 인지한 뒤에는 좀 울었을 거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축구를 하니 허리 통증이 사라졌다. 이게 오히려 운동으로 통증을 잡은 건지, 아니면 반대로 내 몸을 축내는 걸 착각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처음에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뛰면 뛸수록 통증은 사라졌다. 누가 보면, 아니 누구보다 아내가 보면 마치 허리 아프다고 했던 건 연기라고 생각할 정도로 감쪽같이 통증이 사라졌다. 하늘에 맹세코 조금의 엄살이나 연기를 보태지 않았다.
아내도 그 사이 지인을 만나고 왔다. 지난번에 갔던 정원이 넓은 카페에 갔다 왔다고 했다. 서윤이보다 한 살 많은 남자아이와 서윤이를 데리고 만났는데도 원활한 대화가 가능했다고 했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긴 했지만 ‘역시나 너무 좋은 카페’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윤이는 축구장에서 돌아온 언니와 오빠를 현관문 바깥까지 맨발 바람으로 나와서 맞이했다. 아내는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먹을 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두 함께 먹을 김치볶음밥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마지막 두세 숟가락 정도 남았을 때는 입에 불이 난 듯 헥헥거리며 맵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전까지는 잘 먹었다.
축구를 하고 온 날은 전체적으로 시간이 뒤로 밀린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샤워를 할지 말지가 고민이 됐다. 어제 목욕까지 하고 깨끗하게 샤워를 했으니 오늘은 넘어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축구장에서 너무 열심히 뛰어놀았다. 땀도 많이 흘리고 이리저리 구르기도 하고. 아이들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봤다. 내가 그 상황이었는데 씻지 못하고 자야 하면, 너무 싫을 것 같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씻겼다. 덕분에 퇴근 시간이 엄청 늦어졌다.
아내는 아이들과 들어간 지 10분 만에 메시지를 보냈다.
“아니. 왜….”
“?”
“또 벌써 졸림? 흑..위기다”
아내는 오늘도 피로의 고개를 넘지 못하고 쓰러져 가는 듯했다. 역시나 아내는 소식이 없었다. 시간이 꽤 지나고 아내를 깨우러 들어갔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냥 잠깐이라도 깨서 나오는 게 아내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까 싶었다. 아내의 몸을 흔들었는데, 아내는 어제처럼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여보. 지금 아침이야? 밤이야?”
“여보. 지금 밤이야”
그렇게 아내를 살짝 깨우고 방에서 나왔는데 서윤이도 같이 깬 게 문제였다. 서윤이는 어제부터 콧물을 좀 흘리더니 오늘은 콧물이 줄줄 흘렀다. 코가 막혀서 제대로 숨 쉬는 게 불편해 보일 정도였다. 평소에는 상관없는데 자면서 손을 빨 때 힘들어했다. 코가 막힌 상태에서 손가락까지 빠니까 숨 쉬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을 거다. 그러다 보니 자다 깨서 짜증을 엄청 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는데 아내는 매트리스와 바닥에 몸을 반 씩 걸치고 쓰러져 있었다. 정말 쓰러져 있었다. 서윤이는 거친 울음과 함께 괴로워했다.
“서윤아. 이리 와. 아빠가 안아줄게”
서윤이를 안아서 좀 진정을 시키고 다시 눕혔다. 조금 괜찮아졌나 싶어서 거실로 나왔는데 얼마 안 가서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서윤이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거실로 걸어 나왔다. 아빠한테 와서 안기라고 하니까 순순히 와서 안겼다. 눈을 감은 채로 서럽게 울었다.
“서윤아. 너무 힘들어? 괜찮아. 아빠가 좀 안아줄게. 기대서 자. 서윤아. 서윤이가 지금 코가 막히니까 손까지 빨면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 그러니까 오늘은 손을 빨지 말고 자 봐”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태는 아니었다. 졸음과 울음으로 뒤범벅이 된 서윤이에게 내 말이 들릴지도 의문이었다. 그래도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는 언제나 귀에 꽂히는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조용히 얘기해 봤다. 신기하게도 서윤이는 손가락을 빨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으려다가도 멈췄다. 덕분에 숨 쉬는 것도 좀 편안해졌다. 코는 여전히 꽉 막혔지만 입으로라도 숨을 쉬는 게 되니 금방 깊이 잠들었다.
아내는 서윤이가 나오고 나서 조금 뒤에 따라 나왔다. 서윤이보다 더 잠에 취한 모습으로. 아내가 씻는 동안 서윤이는 거실 매트 위에 엎드려서 잠들었다. 아내가 씻고 나와서 데리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너무 곤히 잤다.
“여보. 그냥 내가 서윤이랑 거실에서 잘까?”
“그럴래? 춥지 않겠어?”
“이불 덮으면 되지”
“그래. 너무 곤히 자긴 한다”
아내는 서윤이와 거실에 누웠고 난 방에 들어가서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서윤이를 깨우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피곤이 가득한 내일을 예고하는 선택이기도 했다. 자다 깨서 엄마와 동생이 없는 걸 알아챈 소윤이와 시윤이가 보나 마나 무척 이른 시간에 거실로 나올 게 뻔했다.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같이 깨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