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25(월)
새벽에 소윤이가 이불을 챙겨서 거실로 나가는 걸 봤다. 일찍 일어나는 게 아니라 아예 중간에 엄마 옆에 자리를 잡고 눕다니. 엄마 옆이 그렇게도 좋을까. 오랜만에 만나는 것도 아니고 매일 하루 종일 붙어 지내는데도 그렇게 좋은가 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방에는 나와 시윤이 둘만 누워 있었다. 거실에 누운 세 사람을 깨우지 않게 하려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는데, 아내는 이미 깨서 앉아 있었다.
“여보. 왜 일어났어?”
“어? 그냥. 깼어”
다행히 서윤이와 소윤이는 자고 있었지만, 그 평온한 모습이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방에 홀로 남은 시윤이가 깨서 나올 일도 그리 멀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고. 아무튼 모두 아내의 몫이었다. 난 아내가 챙겨 준 홍삼액 한 포를 쪽쪽 빨아먹고 집에서 나왔다.
아내가 낮에 소윤이와 시윤이의 어릴 때 사진과 영상을 몇 개 보냈다. 아마 그냥 휴대폰 보다가 보게 됐을 거고, 보다 보니 계속 보게 됐을 거고. 원래 애들 옛날 사진이나 영상이 그렇다. 한 번 시작하면 멈추기가 어렵다. 지금 서윤이처럼 어린 자녀를 기르고 있는데도 옛날이 그리웠다. 볼이 통통한 소윤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을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시윤이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어제 소윤이가 편지에 쓴 것처럼 시간은 정말 잘도 ‘흘른다’.
“여보. 오늘 자부타임?”
“아!! 응. 고마워 여보. 나 오늘 시윤이한테 편지 써야 되는데”
“애들한테 말 좀 해주세요”
아내의 오늘 하루가 왠지 녹록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 제안을 했는데, 아내에게도 딱 필요했나 보다. 내일 처치홈스쿨에서 시윤이의 생일 축하를 하는데 생일인 자녀의 엄마가 편지를 써서 읽어 줘야 한다. 요즘 추세로 보면,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다가는 또 아무것도 못 할 시간에 깨서 나올 가능성이 컸다. 제안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도 내가 출근하고 얼마 안 돼서 다 깼다고 했다. 그만큼 아내의 하루는 길고 굵었을 거다.
퇴근하고 주차장에 차를 막 댔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잠시 장을 보러 갔다 왔는데 근처라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오는 길로 마중을 나갔다. 저 멀리서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서윤이는 유모차에 앉아서 깊게 팬 보조개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정말 이 순간이 주는 행복이 참 크다. 이게 아니었으면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까 싶기도 하고.
아내는 저녁으로 먹을 돈까스도 사 왔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은 돈까스를 참 자주 먹는다. 세 자녀에게 구분 없이 모두 먹일 수 있고, 간편한 음식이라 그렇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그렇기도 하다. 난 세 끼를 돈까스를 먹어도 되는 사람이다. 아내는 집에 들어와서 짐만 챙겨서 바로 다시 나갔다.
“여보. 나 갈게”
“어, 잘 갔다 와”
다들 잘 먹었다. 서윤이는 여전히 콧물이 줄줄 흘러서 얼굴이 콧물과 밥풀, 돈까스 범벅이었지만 어쨌든 잘 먹었다. 다만 엄청 흘렸다. 식탁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밥풀떼기와 돈까스 쪼가리를 휴지로 긁어모으고 바닥을 닦는데, 이게 현실이지 싶은 생각이 스쳤다. 아내가 가끔 ‘아, 이 짓을 앞으로 얼마나 더 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 이런 심정이었나 싶었다. 제주도의 똥돼지처럼 흘리면 바로바로 치우는 로봇 청소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 벌써 팔고 있나? 밥풀도 다 치워 주나? 아무튼 그런 게 있다면 꼭 사고 싶다.
오늘도 서윤이에게 미리 말해 줬다.
“서윤아. 오늘도 자다가 깨면 나오지 말고 다시 자. 알았지? 자다가 깨서 나와도 서윤이 혼자 다시 들어가서 자야 돼. 알았지?”
“네에. 아빠아”
저번에도 그렇게 얘기하고 재웠더니, 자다 깨서 나와서도 혼자 들어가서 잤다. 오늘도 그걸 기대하며 다시 한번 주지시켰다. 서윤이는 이제 모든 걸 이해하니까. 저녁 먹은 걸 대충 치우고 아이들을 씻겨서 방으로 들어갔다. 별로 늦은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꽤 피곤했다. 휴대폰을 대여섯 번은 떨어뜨렸다. 그러고도 잠에서 깨지 못해서 살짝 잠들었다. 한 20-30분 잤다.
‘아, 그냥 이대로 아침까지 잘까’
하는 유혹을 받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나왔다. 일단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부터 했다. 왠지 오늘은 조금이라도 미루면 안 하게 될 거 같았다. 서윤이가 언제 깰지 모르니 쫓기는 마음으로 간단하게 운동도 했는데 의외로 서윤이는 깨지 않았다. 서윤이는 핑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 본능의 욕구에 따라 ‘간단하게’로 포장해서 ‘대충’ 운동을 끝냈는지도 모르겠다. 샤워는 못했다. 나 혼자 있을 때는 항상 그렇다. 혹시나 샤워하고 있는데 서윤이가 깰까 봐 불안해서 못하겠다. 샤워하는 시간은 화장실에서 큰일 보는 시간과 더불어 몸과 마음의 자유와 평안을 만끽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마저 불안으로 채우고 싶지는 않다.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서윤이는 깨지 않았다. 아내는 꽤 힘을 얻고 돌아온 듯했다. 언제나처럼 별 거 없이, 밥 먹고 카페에 있다가 들어온 거지만 그게 곧 휴식이자 해방이니까. 다행이다. 고작 몇 시간의 자유로도 조금이나마 원기 회복이 가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