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배송 시대의 익일 육아

22.04.26(화)

by 어깨아빠

오늘은 소윤이가 날 배웅했다.


“소윤아. 더 안 잘 거지?”

“네”

“그래. 알았어. 소윤아. 오늘은 저녁에 아빠 못 만나”

“왜여?”

“아빠 오늘 목장 모임 밖에서 해. 퇴근하고 바로 갈 거야”

“아 그래여?”


아직 포옹과 뽀뽀가 자연스러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소윤이와 인사를 나누고 집에서 나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에 가는 날이었고, 아내는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 전화를 했다.


“여보. 기도 좀 해 줘요”

“왜?”

“시윤이가 너무 힘들게 하네”

“왜?”

“그냥 자꾸 사소한 일에도 사사건건 불평하고 짜증 내고 그러네”

“지금도 계속?”

“어”

“일단 시윤이한테 시간을 좀 줘 봐. 진정할 수 있는 시간을. 여보가 따로 데리고 가서”


한 시간쯤 뒤에 아내에게 시윤이는 어떻게 됐는지 물어봤는데, 그 뒤로는 부를 일이 많지 않았다(시윤이가 괜찮았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했다. 시윤이는 처치홈스쿨에서 생일 축하를 받았다. 시윤이답게, 막 드러내서 좋아하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고 했다. 아내가 보기에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고 했다. 시윤이에게 오늘 좋았냐고 물어봤을 때도


"좋긴 했는데 앞에 나가서 혼자 있는 게 좀 창피했어여"


라고 대답했다. 영상 찍어 놓은 걸 보니까 내 눈에는 시윤이가 엄청 좋아하는 게 보였다. 아주 작은 표정 변화와 미소였지만, 시윤이의 속마음이 다 보였다. 아내가 편지를 써서 읽어 주기도 했는데, 시윤이는 울지 않고 아내가 울었다고 했다. 소윤이의 증언에 따르면, 시윤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고 했다. 사실 시윤이는 눈물이 많다. 엄마, 아빠와 헤어지는 상상만 해도 눈물을 흘리곤 한다.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에 눈물이 많은 거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어떻게든 참아내는 거고. 아무튼 시윤이는 덤덤한 듯 얘기했지만, 오늘 굉장히 행복했던 것 같다.


아내에게 오늘 저녁의 일정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여보. 나 오늘 집에 안 들르는 거 알지?”

“아 맞다. 잠시 잊었음”


이런 걸 보고 ‘아는데 몰랐다’라고 하는 거다. 육아를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 배우자에게 나의 부재를 미리 알렸고 상대방도 그걸 들었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지만, 정작 당일에는 그걸 잊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는 듯한 충격을 받곤 한다. 오늘도 혹시 몰라서 미리 말했는데 그러길 잘했다.


그 연락을 끝으로 아내와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다. 난 퇴근하고 바로 목장 모임을 하러 갔고 아내는 처치홈스쿨을 마치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만났다고 했다. 아내도 나도 바깥에서 약속이 있었던 걸 보면, 코로나가 끝나가긴 하나 보다.


10시가 다 돼서 집에 돌아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9시쯤 집에 왔고, 내가 도착했을 때는 잘 준비를 모두 마치고 자러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그 시간까지 아이들이 깨어 있는데 아내가 안 피곤할 리도 없고, 더 이른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아내가 안 피곤한 날이 없지만 오늘은 유독, 더, 많이 피곤해 보였다. 톡 건드리면 푸슈슈슉 하고 바람이 빠질 거 같았다.


만나서 정말 인사만 나누고 바로 자리에 누웠다. 물론 아내와 아이들만.


“여보도 아예 씻고 들어가”

“아니야. 나올 거야”

“못 나올 거 같은데”


더 일찍 들어간 날에도 못 버텼는데, 오늘은 시간도 늦고 피곤하기도 훨씬 피곤해 보였다. 가망이 없었다. 아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아내는 어떻게든 잠을 떨쳐내 보겠다며 이어폰을 찾았는데 그마저도 찾지 못해서 결국 그냥 누웠다. 역시나 아내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그러다 자정이 거의 다 됐을 무렵, 코가 막혀서 그랬는지 무서운 꿈을 꿔서 그랬는지 서럽게 울며 깬 서윤이 덕분에 아내도 깼다. 서윤이의 거친 울음에도 아내는 잠을 떨쳐내지 못해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아내는 거실로 나왔고 서윤이는 내가 들어가서 안고 나왔다. 서윤이는 나에게 안겨서도 한참 동안 서럽게 울었다. 왜 우는지는 모른다. 얘기를 안 하니까. 추정만 할 뿐이다.


서윤이의 울음이 조금 진정되고 다시 아내가 서윤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 5분 뒤에 아내가 다시 나왔다.


“바로 잠들었네”


비로소 아내의 육아가 끝났지만 애석하게도 하루도 끝났다. 무려 이틀에 걸친 육아라니. 마음만 먹으면 당일 배송이 가능한 시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