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비슷해도 매년 뜻깊은 생일

22.04.27(숫)

by 어깨아빠

알람 소리에 눈을 뜨긴 했는데 어제 늦게 잠들어서 그랬는지 다른 날보다 피곤했다. 순간 고민이 시작됐다.


‘오늘은 좀 더 자고 나갈까?’


그러다 오늘이 시윤이 생일이라는 것도 떠올랐다.


‘그래. 좀 더 자고 시윤이 얼굴 보면서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고 출근할까’


영원히 잘 것처럼 평온하게 자는 세 자녀와 자는 모습도 애처로운 아내를 보며 고민했다. 그냥 일어나서 나가기로 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더 자려고 눕는다고 해도 더 자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요즘 아이들의 평균 기상 시간은 대략 여섯 시 삼십 분에서 일곱 시 사이다. 애들이 깨면 깊은 잠을 자는 건 어렵다고 봐야 한다. 많이도 아니고 딱 한 시간 정도만 더 자면 되는데, 그게 확보가 안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시윤이였다. 아직도 자는 아빠를 보고 괜히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아빠가 또 휴가를 냈나?’


작년 시윤이 생일에 연차를 냈었다. 시윤이에게는 말하지 않고, 출근한 척 작은방에 숨어 있다가 나타났다. 시윤이와 소윤이는 엄청 좋아했고. 혹시나 시윤이가 오늘도 그런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냥 원래대로 일어나서 나왔다. 대신 아침에 영상 통화로 생일 축하한다고 얘기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 이불에서 뒹굴고 있을 만큼 이른 시간이었는데, 이미 그 시간부터 서윤이의 울음과 짜증이 보였다.


낮에는 동생네가 집에 놀러 온다고 했다. 그전까지의 시간을, 아내는 이렇게 표현했다.


“오늘 매운 맛이네 정말. 몸은 고단하고 할 일은 많고 훈련할 일도 많은데 쉽지 않고”


아내에게 순한 맛인 날은 남편이 함께하는 주말뿐일지도 모른다. 아내의 한 문장에 아내의 하루가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 동생네가 오고 나서는 그래도 좀 나았던 것 같다. 아니면 나은 것처럼 착시를 일으킨 건지도 모르고. 서윤이보다 더 어린 사촌 동생을 만난 기쁨이, 아이들의 부정 요소를 조금이나마 희석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윤이도 덕분에 고모 가족에게 생일 축하를 받는 혜택을 누렸다.


저녁은 치킨을 먹기로 했다. 아들의 생일이니 나가서 먹든 집에서 먹든 그래도 조금은 생일스럽게 보내고 싶어서 이것저것 고민했다. 시윤이가 가장 좋아하는 탕수육은 너무 자주 먹어서 배제했다. 지난 주말에 부모님들이 오셨을 때 시윤이가 먹고 싶다고 했던 또 다른 음식이 치킨이었다.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치킨집에 가서 먹기로 했다. 옛날 호프집 같은 분위기의, 50-60대 어르신들의 모임 장소로 사랑받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이렇게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갔더니, 사장님 부부께서 엄청 예뻐해 주셨다. 덕분에 콜라도 서비스로 받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피곤했는데, 그것 때문에 태도가 안 좋거나 짜증을 내는 일은 없었다. 많이 컸다. 서윤이도 발라준 치킨을 조용히 잘 먹었다. 오늘도 가장 피곤한 건 아내였다. 매일 육아의 일상을 보내기도 하지만 밤이 되면 꼬박꼬박 자기도 한다. 불면증 같은 건 없으니까 누우면 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매일 이렇게 피곤한 건, 심지어 월요일을 시작으로 금요일이 될 때까지 매일 더 피곤해지는 건, 잠으로 인한 휴식과 회복이 자지 않을 때의 피로 누적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일 거다. 나의 퇴근이 마치, 쓰러지기 직전에 맞는 수액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올 때는 시윤이는 내 차를 타고, 소윤이와 서윤이는 아내 차를 탔다. 다시 한번 느꼈다. 시윤이의 매력은, 둘이 있을 때 선명하게 드러난다. 애교도 많고, 까불기도 많이 까불고, 웃기도 엄청 잘 웃고, 얘기도 많이 하고. 시윤이가 막내였어도 서윤이 못지않게 사랑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소윤이가 막내인 모습은 상상이 잘 안된다.


집에 돌아오니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케이크를 꺼내 초를 꽂았다. 참으로 단출하고 식상한 생일 축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매번 비슷해도 매번 지겹지 않고 황홀한 시간이다. 차마 어디 공개하기 어려운 몰골이었지만, 다 함께 사진도 찍었다.


“우리가 애들 조금씩만 먹여줄까? 이만큼만?”


아내는 케이크의 사분의 일 정도를 허공에다 나누며 얘기했다. 늦은 시간이기도 했고 치킨도 배불리 먹었으니 조금 맛만 보자는 의미였을 거다. 어림없는 소리였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저녁을 안 먹은 것처럼 쉬지 않고 케이크를 받아먹었다. 특히 서윤이는, 점심 먹을 때 식사 태도 불량으로 밥그릇을 빼앗겨서 오후 간식이었던 케이크를 혼자 못 먹었다. 절치부심했는지 마지막까지 앉아서 열정적으로 케이크를 받아먹었다.


그 이후의 시간은 다른 날과 비슷했다. 아내는 팽창의 정점에 이르렀다가 조금씩 소멸하는 풍선처럼 점점 힘겨워 보였다. 나는 그나마 괜찮았다. 아내보다는 내가 더 쌩쌩했다. 이유는 많을 거다. 내가 아내보다 체력이 좋기 때문이든지, 내가 완전한 야행성이기 때문이든지, 아니면 일보다 육아가 훨씬 힘들기 때문이든지.


아무튼 이것도 다행이다. 아내가 방전일 때, 나라도 비실비실하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