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03(화)
보통 아이들이 일어나는 시간이 일곱 시에서 여덟 시 사이다. 처치홈스쿨을 하러 가기 위해 집에서 나가는 시간이 아홉 시 무렵이고. 그 짧다면 짧은 시간에, 오늘도 아내는 시윤이와 진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어제처럼 깊어지기가 어렵기도 했고, 아내가 체념하듯 회피한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써 놓으면 우리 아들이 무슨 ‘문제아’처럼 보이지만 그런 건 아니다. 애교도 많고 장난도 많이 치고 사랑스러울 때는 한없이 사랑스러운데, 특히 나는 그런 모습을 더 많이 보는데 아내에게는 조금 다를 뿐이다. ‘조금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가볍게 치부하는 건가. 아무튼.
퇴근하면 아내에게 나갔다 오라고 할 생각이었다. 어제부터 작정했다. 저녁에 목장 모임이 있었지만, 아이들을 서둘러서 재우면 얼추 시간에 맞추는 게 가능했다. 목장 모임을 하는 날, 아내가 나가는 게 처음도 아니었고.
처치홈스쿨 하느라 바쁠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내 놓으려고 했는데, 마침 오늘 목장 모임은 취소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바로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난 오늘 목장 모임 없음. 여보 자유시간 보내도 됨. 애들한테 미리 말해 주고”
아내는 내가 퇴근할 때까지 답장이 없었다. 읽기는 했다. 퇴근하면서 전화를 했다.
“여보. 어디야?”
“나, 집이지”
“언제 왔어?”
“한 다섯 시쯤?”
“늦게 왔네. 오늘은 괜찮았어?”
“하아. 글쎄”
“왜? 가서도 힘들게 했어?”
“아니야. 괜찮았어”
진짜 괜찮았다는 건지 그냥 괜찮았다고 믿어야 산다는 건지 분간이 잘 안됐다.
“여보. 오늘 나갈 거지?”
“어, 안 그래도 애들한테 얘기하긴 했어”
“알았어”
“여보. 밥은 있는데 반찬이 없어. 어제 산 반찬이랑 어제 튀겨 주려고 샀던 치킨 텐더 있어”
“알았어. 내가 차려줄게. 여보는 바로 나가”
“나 진짜 안 하고 나간다?”
“어. 바로 나가”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오늘도 내 머리를 보고 웃었다.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면서.
아내는 세탁기에 빨랫감을 넣고 있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할 시간이 없을 거라면서. 아내는 나갈 준비(랄 것도 없지만)를 하고, 난 저녁 준비를 했다. 먹을 게 없다던 아내의 말과 달리 차려 놓으니 은근히 풍성했다. 각자 식판에 담아 줄까 하다가, 그래도 조금이나마 기분을 내라고 반찬 접시에 따로 담아서 줬다. 정작 아이들은 식판이든 접시든 조금도 신경을 안 쓸지도 모르지만. 내 나름대로는 반찬도 정성껏 담아서 냈다.
서윤이가 오늘은 계속 나에게 밥을 떠먹여 달라고 했다. 한창 자기가 떠먹겠다면서 사방팔방에 흘릴 때가 엊그제였는데, 어느새 잘 흘리지도 않을 정도로 능숙해지니 귀찮아졌나. 마지막까지 떠먹였다.
밥 먹고, 씻고, 책 읽고, 기도하고. 눕기 전까지의 과정이다. 오늘은 많이 피곤하지 않았고 아이들도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로 까불어서 오히려 웃게 되고 좋았다.
“잘 자. 사랑해”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각자 자리에 눕고 난 매트리스에 누웠다. 난 몰랐는데 방에 한 명이 더 있었다.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자는 누군가가 있었다. 잠에 취한 나는 그 사람을 깨우려고 애를 썼는데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코를 고는 그 사람을 깨워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은 있었는데, 쉽게 잠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한 30분 넘게 사투를 벌였나 보다. 코 골며 잠에 빠져드는 자아와 깨우려는 자아의 사투 끝에, 다행스럽게도 깨우려는 자아가 이겼다. 그렇게 눕자마자 잠들 줄은 몰랐는데. 오늘도 ‘아내 체험’ 제대로 했다.
지금은 아내도 돌아왔고 시윤이도 깨서 나왔다. 우리 집의 유일한 아들이자 아내의 피로 지분을 꽤 많이 차지하고 있는 시윤이는, 아닌 밤중에 애교를 부리며 아내와 나를 사르르 녹였다. 아니, 이런 녀석을 보고 어떻게 ‘낮의 시윤’을 상상한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