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22.05.02(월)

by 어깨아빠

관리사무소 주관 행사로 상자 텃밭을 나눠준다고 해서 신청을 했었다. 말 그대로 상자에 흙을 담아서 텃밭처럼 가꾼다는 말이었다. 그 상자를 오늘 나눠준다고 했다. 소윤이의 기대가 무척 컸다. 상자 텃밭을 신청하라는 공지를 봤을 때도, 신청하고 나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상자 텃밭의 실체를 확인한 소윤이는 적잖이 실망했다.


“엄마. 이게 끝이에여?”


소윤이는 ‘상자’보다 ‘텃밭’에 더 의미를 뒀나 보다. 작은 삽으로 삽질 몇 번 해서 모종을 옮겨 심고 나니, 기다리던 텃밭 가꾸기는 금방 끝이 났다. 물론 앞으로 관찰하고 가꾸는 일이 남았지만, 소윤이의 성에 차지는 않을 거다.


난 갑작스럽게 저녁 일정을 잡았다. 더벅더벅 보기 싫게 자란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위해 ‘바버샵’ 예약을 잡았다. 얼마 전에 아내와 함께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유명한 바버샵 영상을 봤는데, 아내가 나에게


“여보도 저런데 가서 머리 한 번 잘라”


라며 부추겼다. 전혀 생각이 없었는데 아내가 옆에서 자꾸 바람을 넣으니, 나도 모르게 바람이 들어서 덜컥 예약을 했다.


오전 무렵에 아내와 통화했을 때 아내의 목소리가 썩 좋지 않았다. 오늘도 베트남 고추처럼 매운 육아의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아내가 그러라고 할 리는 없지만, 혹시라도 아내의 상황이 더 안 좋아지면 자진해서 예약을 취소할 생각도 있었다. 아내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오후에도 전화를 했는데, 마침 장모님께서 오셨다고 했다.


장모님이 오신 덕분에 아내는 병원에도 다녀왔다. 요즘 눈이 너무 가려워서 힘들다고 했다. 서윤이 낳고 나서 전에는 별로 없던 각종 알러지 반응이 많이 생겼다. 저녁에는 장인어른도 오셔서 함께 식사도 했다고 했다. 난 처음 예약했던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빠르게 가서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덕분에 아이들이 자기 전에 도착해서 얼굴을 봤다.


소윤이는 내 머리를 보더니 막 웃었다.


“파하하하하하하하. 아빠 머리 봐”


시윤이도 덩달아 웃었다. 서윤이도 같이 웃었다.


“아빠아아아아. 머이 이당해에에에에”


아내는 웃지는 않았지만, 웃고 싶은 거 같았다.


“이상해?”

“아니, 괜찮아. 시원해 보이네”


‘잘 생겼어?’, ‘예뻐?’라는 질문에 ‘개성 있지’라고 대답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한참이나 내 머리를 보며 웃었다. 아내는


“근데 진짜 시원하겠다”


는 말과 함께 ‘재미 교포 같다’는 평을 남겼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에게 오전 시간이 어땠는지 들었다. 아내는 오늘도 시윤이와 함께 폭풍우를 뚫고 나왔다고 했다. 혼자 안방에 들어가서 펑펑 울며 기도도 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고, 하루 종일 저기압이었다고 했다. 딸과 손주를 위해 수고롭게 오신 장모님에게도 한참 동안 투박스러웠다고 했다. 아무튼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힘든 하루를 보낸 듯했다. 내가 일기를 써서 그렇지 아내가 직접 썼으면 훨씬 더 처절하고 슬픈 이야기도 많았을 거다.


아내의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혹시 우리가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두렵기도 하다. 언제나 티가 나게 아내를 힘들게 하는 시윤이는 물론이고, 속을 잘 드러내지 않다가 한 번씩 엄마에게 은근한 반기를 드는 소윤이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하루, 아니 몇 시간이 멀다 하고 틱틱거리며 다투는 둘을 볼 때도 그렇고. 아내도 나도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혹시나 뭔가 큰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지만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홈스쿨을 하는 만큼 사랑을 주고받을 시간이 많으니 웬만한 실수나 부족함은 서로 녹여낼 여유도 많다고 확신하지만, 가끔은 불안해지기도 한다.


나는 직접 겪어본 적도 없고, 마주한 적도 없는 ‘아내의 육아’에 관해 들을 때면 더욱 그렇다. 오늘도 아내의 이야기를 그저 들을 뿐,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고,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일지도 모르고.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게 될지도 모르고. 퇴근해서 함께 보내는 시간에, 수시로


“엄마가 너무 좋다”


고 말하는 시윤이에게


“시윤아. 엄마가 그렇게 좋으면 낮에 엄마 말 좀 잘 들어”


라고 말하고 싶어서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꾹 눌러서 내려보낸다. 전해 들은 일과 시간까지 끄집어 내서 싫은 소리를 하는 건 별로 좋을 게 없을 것 같다.


거의 매일 시윤이와 그런 시간을 보내는 아내는, 마찬가지로 매일 자기 전에 곤히 자는 시윤이를 쓰다듬는다.


“으이그. 예뻐가지고”


아무리 생각해도 시윤이는 나중에 크면 아내에게 잘 해야 한다. 하긴, 시윤이도 아내와 나에게 그저 ‘치유와 기쁨’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네. 시윤이도 평생 할 효도 그때 다 했나 보네. 그래도 잘 해라. 아빠처럼 결혼해서 애 낳고 나서야 그나마 철든 척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