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레고가 아니야

22.05.01(주일)

by 어깨아빠

뒤척이다가 깨서 베개를 찾으려고 눈을 떴는데 소윤이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티를 내지는 않고 태연하게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어, 소윤아. 일어나 있었네”


덕분에 오랜만에 소윤이하고 먼저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윤이와 서윤이도 깨서 나오긴 했다. 그래도 소윤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가 이미 여덟 시가 넘었을 때라서 요즘 평균 기상 시간에 비하면 꽤 늦은 편이었다.


어린이 주일이라 소윤이 부서에서는 달란트 잔치를 한다고 했다. 소윤이의 기대가 컸다. 그동안 여러 과제(?)를 잘 수행한 덕분에 달란트를 차곡차곡 모았다. 학습이든 신앙이든 대가를 얻기 위해 움직이는 건 아내와 내가 지양하고 있어서 다소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생애 첫 달란트 잔치를 기다리는 소윤이의 순수한 마음도 이해가 간다.


“소윤아. 고민 너무 많이 하지 말고 과감하게 사. 우리 줄 건 안 사도 되니까 소윤이 사고 싶은 거 사고”


아내를 닮아서 신중하게 고민을 많이 한다. 작은 거 하나를 사더라도 비교와 고민을 거듭한다.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평소에도 전혀 관여를 하지 않지만, 오늘은 너무 깊이 고민만 하다가 원하는 걸 못 사서 속상해하거나 너무 오랫동안 고민만 할까 봐 살짝 얘기했다. 그렇게 얘기를 했어도, 보나 마나 온 가족의 선물을 하나씩 다 사지 않을까 싶었다.


장로님들이 동물 탈을 쓰고 어린아이들을 맞이하셨다. 이런 이벤트에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법이 없는 세 자녀는, 동물 탈을 보고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공손히 인사를 했다. 1층에서는 팝콘을 튀겨서 나눠주고 계셨다. 교회에서 오랜만에 느껴 보는 축제 분위기였다.


아침에 평소보다 늦게까지 잔 서윤이는, 오랜만에 예배 시간에 잠들지 않았다. 항상 그렇듯 적당한 수준의 부산스러움과 소란스러움으로 줄타기를 했다. 중간에 한 번 울어서 아내가 데리고 나가기도 했다. 안 자고 깨어 있는다고 해도 엄청 힘들게 하거나 신경이 많이 쓰이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아예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서윤이가 성가시게 할수록 예배 시간에 졸지 않게 되니까 좋은 면도 있고.


소윤이 예배는 평소보다 늦게 끝난다고 했다. 시윤이만 먼저 데리고 왔다. 시윤이도 옷 선물을 받았다.


“시윤아. 이거 옷 선물이야?”

“선물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주셨어여”

“아, 그래? 어린이 주일이라서 선물로 주신 거 아니야?”

“그런 거 같기도 한데, 선생님이 그 뭐더라 언제 입어야 된다고 했는데 잘 모르겠어여”


너무 시윤이스러운 반응이었다. 집에 있을 때는 그렇게 까불거리고 이것저것 참견도 많이 하고, 누나가 하는 건 다 궁금해하면서 밖에 나가면 그렇게 무심하고 무던할 수가 없다. 지난주에 시윤이 부서에서 말씀 암송과 성경 퀴즈를 했다고 했는데, 아내와 나는 그걸 어제 알았다.


“시윤아. 지난주에 새싹꿈나무에서 말씀 암송이랑 성경 퀴즈 했다며?”

“네”

“시윤이는 안 했어?”

“네”

“왜 말 안 했어?”

“그냥여”

“그럼 시윤이는 그냥 있었어?”

“네”


(시윤이가 이렇게까지 단답형으로 말하지는 않았는데,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못 적었다)


하나하나 다 챙겨서 미리 해야 하는 게 있으면 일찍 일어나서라도 해 가고, 가서도 열심히 참여하는 소윤이와 완전히 다르다. 학교에 보냈으면 준비물 맨날 까먹고 안 챙기고, 아예 말도 안 하고, 그런 거에 별로 신경도 안 썼을 거 같다. 그 시절의 나처럼. 얼마 전에는 시윤이가 보물 상자라며 책장에 소중히 보관하던 상자를 열어 보고 혼자 엄청 웃었다. 도대체 뭐가 들었나 궁금해서 열어봤는데 종이 쪼가리 한 장이 덩그러니 있었다. 평일 낮에 아내를 힘들게 할 때만 아니면 시윤이도 참 매력적인 녀석이다.


소윤이는 커다란 쇼핑백 하나를 들고 내려왔다. 거기에 오늘 산 모든 게 담겨 있다고 했다. 뭘 샀을지 너무 궁금했는데, 소윤이는 밥 먹고 집에 가서 공개하겠다고 했다. 점심 먹으면서 슬쩍슬쩍 유도 질문을 던졌는데, 자기도 입이 근질근질했는지 결국 거의 다 말했다.


아내의 선물은 머리끈, 내 선물은 젤리, 시윤이 선물도 젤리였다. 서윤이 선물은 없었다. 소윤이 스스로에게 주는 건 레고를 샀다고 했다. 그게 제일 달란트를 많이 지불했다고도 했다. 소윤이 얘기를 듣고 ‘요즘 달란트 시장은 레고를 다 주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집에 와서 소윤이가 산 선물을 하나씩 구경했다. 소윤이가 레고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건 레고가 아니었다. 레고를 모방한 모조품 중에서도 본 적이 없는, 뭐 그런 것이었다.


“아, 소윤아. 이건 레고는 아니네”

“네? 이게 왜 레고가 아니에여?”

“아, 레고랑 똑같은 건 아니야”

“그래여? 레고가 종류가 다 달라여?”

“어, 그렇지. 이건 레고랑 비슷하게 만든 거지”


소윤이는 이해가 안 되는 눈치였다. 여덟 살 순수한 마음에 대못을 박는 ‘짜가’, ‘짜댕’, ‘짝퉁’, ‘짭탱’ 같은 비속어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이런 단어만큼 적확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또 없지만).


“근데 뭐 레고랑 거의 똑같지. 얼른 만들어 봐”


점심 먹고 집에 올 때까지 낮잠을 자지 않은 서윤이가 아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 소윤이는 (가짜) 레고를 펼쳤다. 설명서를 보고 열심히 만들던 소윤이의 한숨 소리가 종종 들렸다.


“아빠. 이것 좀 해 주세여. 이게 안 맞아여”

“그래? 방향이 거꾸로 된 거 아니야?”

“아니에여. 여기 설명서랑 똑같이 했어여”


소윤이 말대로였다. 소윤이는 정확히 설명을 따랐지만, 아귀가 맞지 않는 것들이 종종 있었다. 이게 ‘레고’와 ‘안 레고’의 차이지. 잠시 후에는 또 다른 푸념이 들렸다.


“아빠. 설명이 자세히 안 돼 있어여”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환하다고 했던가. 덴마크의 자존심 레고의 위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소윤이는 끈기를 가지고 마침내 완성을 했다. 시윤이도 누나가 만드는 걸 구경했다. 시윤이의 마음을 살펴준답시고


“소윤아. 시윤이랑 좀 나눠서 같이 해”


라고 했는데 시윤이가 먼저 대답했다.


“아빠. 저는 하는 것보다 다 만든 거 가지고 노는 게 더 재밌어여”

“아, 그래? 알았어”


어느덧 축구하러 갈 시간이 되었고, 아내와 서윤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굳이 깨우지 않고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집에서 나왔다. 차를 타고 출발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전화가 왔다.


“언지 어빠아아. 어지야아?”


잠에서 깬 서윤이는 거실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아내에게 가서 언니와 오빠, 아빠는 어디 갔냐고 물었다고 했다. 축구하러 나갔다고 했더니


“아니잖아여어. 여기 이따나여어어”


라며 작은방으로 갔다가, 진짜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갔다고 했다. 요즘 들어 서윤이가 부쩍 큰 게 느껴지다 보니 가끔


‘서윤이도 데리고 가도 괜찮지 않을까? 소윤이랑 시윤이가 있으니까?’


라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얼른 밀어낸다. 아직은 아니다. ‘축구장에서도 서윤이가 말을 잘 들은 것 같은’ 환상과 착시일 뿐이다.


다른 날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이 잘 놀지만, 오늘은 유독 더 그랬다. 날씨가 좋아서 그랬나. 둘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깔깔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교회에서 받은 팝콘을 가지고 가서 하나씩 아껴가며 집어먹는 것도 귀여웠다. 오고 가는 차 안에서도 둘 다 장난기가 넘치고 기분이 좋았다. 그런 두 녀석 덕분에 나도 계속 미소를 머금었다.


서윤이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저녁을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주먹밥으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먹고 남은, 아니 서윤이에게 주려고 일부러 남긴 뽀로로 과자를 서윤이에게 선물이라며 줬다. 먹다 남은 과자 담긴 봉지를 대충 여며서 준 건데, 서윤이는 그걸 아주 소중하게 품에 안고 다녔다. 언니와 오빠가 주먹밥 먹을 때 자기도 옆에 앉아서, 하도 들고 주물러서 다 부서진 과자를 함께 먹었다.


하루의 마무리로 세 자녀와 함께 기도를 하는데, 엄청난 졸음이 쏟아졌다. 기도를 하다가 헛소리를 한 것 같기도 하고 다행히 직전에 정신을 차린 것 같기도 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반응으로 보아하니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았다.


‘저게 무슨 소리지?’


하는 생각은 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꽤 고단한 주말이었다. 어제도 밖에서, 오늘도 밖에서. 물론 오늘은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한 시간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