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인 듯 여행 아닌, 순창까지

22.05.06(금)

by 어깨아빠

공간의 분리가 없는 방이었기 때문에 눈을 마주치면 바로 일어나야 했다. 잠결에 뒤척이다가 이불을 찾으려고 잠시 눈을 떴는데 서윤이와 마주쳤다.


“아빠아. 잘 다떠여어?”

“어, 서윤아. 서윤이도 잘 잤어?”


소윤이와 시윤이도 얼마 안 가서 깼다.


어젯밤에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마당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 내외의 정성이 느껴지는 잔디와 꽃, 나무가 조화를 이룬 마당이었다. 띄엄띄엄 의자와 탁자도 놓여 있었다. 아침밥을 마당에서 먹었다. 어제 휴게소에서 아침으로 먹이려고 했지만, 너무 긴 정체에 먹이지 못한 밥과 반찬을 오늘 아침으로 먹였다. 밑반찬 두어 가지를 넣고 주먹밥을 만들었다. 어제 자기 전에 빵도 먹고 잤는데 다들 어찌나 잘 먹던지. 분위기에 취해서 먹은 것 같기도 하고. 서윤이는 한 입 받아먹고 내려가서 돌아다니고, 또 한 입 받아먹고 내려가서 돌아다니고를 반복했다. 오늘은 마음껏 불량한(?) 태도로 먹으라고 그냥 뒀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그전에 잠시 마트에 들러서 장도 봐야 했다. 서둘러 퇴실 준비를 하고 막 나오려고 하는데 서윤이가 고집을 부렸다. 대체로 아주 사소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예를 들면, 신발을 신으라고 했는데 안 신겠다고 버틴다든가 기저귀를 갈자고 했는데 안 간다고 한다든가,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인데 끝까지 자기가 하겠다고 하든가. 요즘 부쩍 그런 일이 많아졌고, 하루가 다르게 횟수와 지속 시간이 늘고 있다. 오늘은 작정을 하고 서윤이를 훈육했다. 별것 아닌 일에 30분 가까이 고집을 부렸다. 서윤이에게도 훈육의 계절이 찾아왔다.


연휴라 그런지 전주에 사람이 무척 많았다. 주차할 데가 없어서 몇 바퀴나 돌았다. 지나치게 자본의 향이 스며들어 ‘전주 한옥 관광 타운’ 같은 곳으로 변한지 오래지만, 그래도 전주에 왔으니 잠시 걸으며 구경도 할까 싶었는데 빽빽한 인파를 보고 생각을 접었다. 대신 한적하고 아늑한 한옥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여기도 마당이 참 예뻤다. 사장님도 무척 친절하셨다. 손주 생각이 나시는 건지 아니면 자녀들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시는 건지, 우리 아이들을 엄청 예뻐하셨다. 서윤이가 거부하고 말고 할 틈도 없이 대뜸 서윤이를 안기도 하셨다. 요즘 낯가림이 심해진 서윤이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안겨 있었다.


장인어른, 장모님과는 거기서 헤어졌다. 우리는 순창으로 가야 했다. 순창에 사는 지인의 집에 잠시 방문하기로 했다. 정읍에서 순창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의 풍경이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초장거리 운전의 수고를 치를 만했다는 생각을 했다. 도시에서는 아무리 찾아다녀도 보기 어려운 비경이었다. 자녀들에게도 이 감동을 전하고 싶은데 매번 비슷한 말로 끝난다.


“와. 소윤아, 시윤아. 저기 좀 봐. 진짜 멋있다”


적어도 도시의 갑갑함을 느끼고 자연의 신비를 동경하는 사람으로는 자랐으면 좋겠다. 그저 동경만 할 뿐이라도. 아예 무시하고 무감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순창의 자연을 만끽하던 아내가 갑자기 소리를 치며 내 오른팔을 때렸다.


“아, 맞다”

“왜? 왜?”

“떡 놓고 왔다”

“진짜?”


어제 가족 모임에서 받은 떡이었다. 기장떡과 쑥떡, 콩고물이 담긴 봉지를 숙소의 냉동실에 넣어 놓고 그냥 온 거다. 아까웠다. 아깝긴 했지만 별 방법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장인어른에게 연락을 해 봤지만, 이미 멀리 가신 뒤였다. 우리도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갑자기 소윤이가 울기 시작했다. 떡을 놓고 온 게 너무 속상해서 우는 거였다. 소윤이가 유독 그 떡을 좋아하긴 했다. 원래도 인절미를 좋아하는데, 어제 받은 떡은 쑥떡 덩이에서 조금씩 떼서 직접 콩고물을 묻혀 가며 먹는 재미까지 있는 떡이었다. 집에 가서 그거 먹을 기대로 즐거웠는데 그게 무너져서 많이 속상했나 보다. 그 기분을 내내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한참 동안 침울했다.


순창에 있는 지인의 집은 완전한 시골집이었다. 마당에는 강아지와 병아리가 있었다. 병아리는 열 마리 넘게 있었던 것 같다. 도시의 아이들인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만지는 건 아예 시도도 못했다. 덥석덥석 병아리를 들고 옮기는 지인의 자녀들과는 다르게 곧게 서서 그저 바라만 봤다. 사실 나도 비슷했다. 거리낌 없이 만질 수 있는 동물이라고는 강아지 정도였다. 나도 도시의 아이들이었으니까. 병아리들이 똥을 너무 많이 아무 데나 싸서 놀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역시 오래 걸렸다. 서먹함을 풀고 그들(지인의 자녀들)과 어울리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까불거리던 시윤이도 얌전해졌다. 서윤이만 제 집인 듯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마당에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꾸 서윤이가 나와서 방해를 했다.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지인의 막내도 지인에게 딱 붙어 있었고, 서윤이도 나에게 딱 붙어 있었다. 평소에 막내들이 아빠에게 어떤 대우를 받는지 짐작이 가는 장면이었다.


세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일어났다. 목적지는 우리 집이었다. 다시 먼 길을 와야 했다. 막 자리에서 일어날 무렵, 아내가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급히 약을 먹긴 했는데 상태가 바로 좋아지지는 않았다.


“여보. 나 토 했어”

“진짜? 괜찮아?”

“어, 좀 힘드네. 티 안 내려고 더 힘들었네”


다른 데가 아픈 건 아니고 두통이 너무 심해지면서 갑자기 울렁거렸다고 했다. 차에 탄 아내는 곧바로 눈을 감았다. 시윤이도 바로 잠들었다. 서윤이도 바로 곯아떨어졌다. 소윤이와 나만 멀쩡했다.


“소윤아. 또 소윤이만 안 자네?”


소윤이가 끝말잇기를 하자고 했다. 끝말잇기를 하며 가는데, 출발한 지 삼십 분도 안 돼서 졸음이 쏟아졌다. 소윤이에게 양해를 구했다.


“소윤아. 진짜 미안한데 아빠 끝말잇기를 못하겠다. 아빠 너무 졸려서 노래를 틀어야겠어”

“아빠. 노래 틀고 끝말잇기 하면 되잖아여”

“아, 아빠는 노래를 불러야 잠에서 깨”


학창 시절에 노래방에서 즐겨 불렀던 록발라드 노래를 모아 놓은, ‘장거리’라는 이름으로 저장해 놓은 목록을 재생했다.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도 졸음이 달아나지 않았다. 다들 자고 있고 출발한 지도 얼마 안 돼서 어떻게든 더 달리고 싶었지만, 더 가다가는 큰일이 생길 정도로 졸렸다.


“와, 소윤아. 안 되겠다. 저기 잠깐 멈춰야겠다”


마침 고속도로를 타기 전이라 동네 마트가 보였다. 차를 세우고 소윤이와 함께 마트에 들어갔다. 바람도 쐬고 씹을 거리도 살 겸. 소윤이가 자석처럼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는데, 소윤이와 데이트하는 기분이었다. 나중에 다 큰 소윤이와 이렇게 다니면 그때는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것이고, 그리운 그 순간에 가지는 못해도 그때의 소윤이가 여전히 옆에 있어서 행복할 거다.


차에 돌아오니 시윤이와 서윤이가 모두 잠에서 깼다. 아내도 조금 괜찮아졌는지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나도 그 뒤로는 졸리지 않았다. 휴게소에도 여러 번 들렀다. 서둘러 갈 이유가 없으니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필요가 있을 때마다 휴게소에 멈췄다. 휴게소에서 저녁도 먹었는데, 세 남매는 휴게소에서의 저녁마저도 엄청 잘 먹었다. 밥 먹고 휴게소 간식도 먹었다. 물론 그것도 다들 잘 먹었다. 아내는 저녁도 간식도 안 먹었다. 아직은 속이 안 좋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니 열한 시였다. 짐이 많아서 유모차에 짐을 실어서 올라가야 했다. 트렁크를 열고 유모차를 꺼내려고 했는데, 깜짝 놀랐다.


“여보. 대박”

“왜?”

“유모차 놓고 왔다”

“어? 진짜?”

“어. 순창에 놓고 왔네”


순창 지인의 집에 꺼내 두고 온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일단 고민은 접어두기로 했다. 없다고 못 사는 건 아니었다. 다만 조금 많이 불편할 뿐.


고작 1박 2일이었는데 며칠 동안 집을 비우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시간을 꽉 채워서 쓴 덕분이었다. 그만큼 누적된 피로도 컸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으아’ 소리를 내뱉으며 기지개를 켰다.


“여보. 그래도 내일이 토요일이라니. 너무 다행이다”


아직도 이틀이나 쉴 수 있어서 정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