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05(목)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어?”
“지금 일곱 시야”
“어? 진짜?”
“어. 우리 알람을 안 맞췄나 봐”
“아, 그러네”
소윤이와 시윤이도 일어났고 서윤이만 자고 있었다. 서천에서 장인어른 쪽 가족 모임이 있어서 서둘러 출발하려고 했다. 아내와 나의 처음 목표는 ‘여섯 시에 일어나서 일곱 시 전에 출발하기’였다. 연휴의 시작이고 코로나에서 해방된 듯한 기분 덕분에, 멀리 놀러 가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았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려고 했는데, 일단 틀어졌다.
계획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른 시간이었다. 내심 ‘이 정도면 아직 차가 많지는 않을지도 몰라’라는 기대를 품고 출발했다.
“아빠. 몇 시간 걸려여?”
“음, 세 시간 걸린다고 나오네?”
나의 기대와 내비게이션의 계산을 뛰어넘는 엄청난 여정이었다. 장장 일곱 시간을 달려서 도착했다. 휴게소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애들 아침으로 먹일 밥과 반찬도 싸 왔는데 너무 막히다 보니 휴게소에 들어갈 엄두가 안 났다. 도착하면 점심도 먹어야 하니 너무 배부르게 먹기는 어렵기도 했고. 화장실에 갔다가 호두과자 한 봉지로 아주 간단히 요기만 했다.
“아빠. 이제 얼마나 남았어여?”
“어, 세 시간”
“네? 아까도 세 시간이었잖아여”
“그러게”
시윤이와 서윤이가 꽤 한참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막히는 고속도로 위였다. 짜증이 날 법한, 단순히 시간만 오래 거리는 게 아니라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막히는 길 위에서의 장거리 이동이었지만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날씨가 너무 좋았고, 좋은 날씨를 핑계 삼아 장거리 정체의 짜증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다른 가족들은 대부분 어제 오셨고 점심도 드신 뒤였다. 도착하자마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도 배가 고팠겠지만 아내와 나도 배가 엄청 고팠다. 평소에는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게장, 꽃게탕, 홍어회 등의 음식을 정신없이 먹었다.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은 게 아니라 너무 맛있어서 정신을 놓게 됐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딱히 한 건 없었다. 떡, 수박, 참외, 포도, 꽈배기, 아이스크림 등이 끊임없이 등장했고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먹었다. 한참 낯가림 없이 누구에게든 잘 가던 서윤이가 이제 다시 낯가림이 조금 생겼다. 많은 어른들이 서윤이에게 와 보라며 손을 뻗었지만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젓고 나에게 피신하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만 스스럼없이 가서 안겼다.
아내의 막내 고모님 댁이었는데, 완전한 시골이었다. 집 앞 계단에 앉아서 바람을 맞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 거기 앉아 있으면 예술적 영감이 쏟아지면서 예술적 인간이 되어서 예술적인 무언가를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손을 잡고 동네 산책도 좀 하려고 했는데, 떠나시는 가족분이 계셔서 길게 하지 못하고 금방 돌아왔다.
다른 가족들이 하나 둘 떠나고 우리 가족과 장인어른, 장모님만 남았다. 당일치기로 왔으면 일곱 시간의 대장정이 너무 허무했을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1박 2일의 여정이었다. 우리 가족과 장인어른, 장모님은 각각 다른 일정이어서 우리는 전주,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목포에 숙소를 잡고 내려왔다. 헤어지기 전에 잠시 군산에 들러서 카페에 가기로 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군산으로 이동하는 동안 일정을 변경하셨다고 했다. 굳이 목포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면서, 우리 숙소 근처에 숙소를 잡고 내일 점심까지 시간을 같이 보내기로 하셨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제일 신이 났다. 일곱 시간 동안 벨트에 매여 힘든 시간을 보낸 보상 아닌 보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린이날이었다. 가족 모임이 없었어도 엄청 거창하게 아이들을 위한 무언가를 준비하지는 않았겠지만(작년에는 지하철을 타고 정독 도서관에 갔었다), 그래도 너무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지나가나 싶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그런 아쉬움을 느낄 겨를이 없을 만큼 행복했을 것 같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여기저기를 거닐었고 차를 탈 때도 할아버지 차를 탔다. 저녁을 먹고 근처 문방구 앞에서 뽑기(달고나)도 하고, 전국구 빵집인 이성당에 가서 빵도 샀다.
숙소는 정말 ‘하루 자기 위한 방’으로 골랐다. 다섯 명이 자기에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전형적인 2인용 방이었다. 그래도 엄청 깨끗했다. 아내와 이야기 하기를, 넓고 더러운 방보다는 좁고 깨끗한 방이 백배, 천배 아니 비교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낫다고 했다. 대충 고른 것치고는 하루 자고 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방이었다. 꽤 늦은 시간에 숙소에 왔는데 아까 이성당에서 산 빵을 더 먹였다. 숙소에 가서 먹기로 약속을 했다.
엄청 피곤했다. 일곱 시간의 이동의 후폭풍이었다. 아이들을 피해 혼자 있을 곳 따위는 없는 주방, 거실, 방이 모두 응축된 일체형 숙소였다. 그래도 바로 자기는 싫어서 아내와 아이들 옆에 누워서 휴대폰을 봤다. 몇 대 맞았다. 거의 잠들기 직전까지 가서 그냥 자려고 했는데, 씻지 않은 내 몸과 머리가 느껴졌다.
‘씻어야 하는데. 씻고 자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자다 깨고 자다 깨고 그랬다. 결국 정신을 차리긴 했는데 씻는 데까지는 한참 걸렸다. 한참 동안 벽에 기대고 앉아서 휴대폰을 봤다.
‘내일 올라갈 걸 생각하면 충분히 자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바로 눕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소윤이의 모습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