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같지 않아도 필요한 시간

22.05.09(월)

by 어깨아빠

어제 일찍 누웠고 자면서 깨지도 않아서 아주 푹 잤는데도,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평소에 비해서 훨씬 더 묵직한 피로감을 안고 하루를 시작했다. 아내도 나와 비슷했다고 했다. 장거리 운전 한 번 했다고 이렇게 여파가 오래 가나 싶었다.


낮에는 형님(아내 오빠)네가 집에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사촌 동생을 무척 보고 싶어 하고, 형님도 조카들을 보고 싶어 하고, 아내도 조카를 보고 싶어 한다. 육아 전선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동질감에 혈육의 정까지 더해진, 머지않아 굉장히 애틋해질 끈끈한 모임이다.


오늘도 아내에게 자유부인을 제안했다. 아내는 지난 토요일에도 나갔다 왔는데 뭘 또 나가냐며 사양했다. 그건 그거고 오늘은 오늘이라는 의미로


“괜찮은데”


라는 답변을 남겼고, 아내에게 더 답변이 오지 않았다.


‘오늘은 정말 안 나가려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퇴근해서 아파트 정문을 들어서는데 반대쪽에 형님네 차가 나가는 게 보였다. 차단기를 지나 주차장에 들어섰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보였다. 형님네를 배웅하러 나왔다가 나까지 만난 거였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가 방방 뛰며 좋아했다. 오랜만에 밖에서 만나니까 왠지 더 반갑긴 했다.


“여보. 나 갈게”

“어?”

“나간다고. 자유부인”

“아. 그래? 알았어”

“여보. 지금 저녁 먹을 거 사러 가자”

“아, 그럴까?”

“어. 소윤이가 치즈김밥 먹고 싶다고 해서”

“그래”


소윤이는 식당에 가서 먹자고 했다. 어차피 김밥이니까 간단히 먹고 나오는 게 가능해 보였다. 소윤이의 바람대로 먹고 오기로 했는데, 막상 식당에 도착하니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워낙 협소한 곳이라 우리 식구가 앉을 만한 자리가 애초에 없기도 했고, 2층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더울 거라고 하셨다. 무엇보다 이 모든 걸 얘기하는 사장님의 표정과 말투에서 무뚝뚝함을 넘어선 약간의 짜증이 느껴졌다. 소윤이만 아니었으면 가지 않을 식당인데 소윤이가 여기서 파는 크림치즈 김밥을 너무 좋아한다. 오늘은 포장해서 먹기로 했다.


사람이 제일 없는 놀이터 의자에 앉아서 김밥을 먹었다. 서윤이는 참치 주먹밥을 먹였는데, 벌써부터 맛은 알아가지고 참치 있는 부분을 베어 먹겠다며 자기 나름대로 입을 이리저리 돌렸다. 해가 지니 생각보다 서늘했다. 바람도 약간 불고. 마침 시윤이는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나만 시원했다. 아내는 엄청 춥다고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약간 춥다고 했다. 서윤이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추운 날씨에 급하게 먹다가 체할까 봐 남은 건 집에 가서 먹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괜찮다면서 다 먹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아내는 저녁도 같이 먹고,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 잘 준비시키는 것도 함께 했다. 요즘 엄마가 나간다고 해도 별로 슬퍼하지 않고 잘 보내던 서윤이가 오늘은 많이 울었다. 자기가 누웠을 때 아직 엄마가 나가지 않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서윤이는 울면서 엄마를 찾아 거실로 뛰쳐나갔다. 처음에는 아내가 있었는데, 두 번째 나갔을 때는 나가고 없었다(아내가 나중에 말하기를, 나간 게 아니라 작은방에 불 끄고 숨어 있었다고 했다). 서윤이는 자기도 나가겠다면서 현관에 가서 신발을 신으려고 했다. 서윤이를 안고 자리에 눕혔지만 서윤이는 다시 일어나서 나갔다. 또 현관에 가서 신발을 들었다. 굉장히 거세게 울며 몸부림쳤다. 그렇게 길게 가지는 않았다. 다시 자리에 눕혔더니 그제야 손가락을 입에 넣고 울음을 참으며 눈을 감았다.


아내에게 ‘오늘은 맨날 가는 카페 가지 말고 좀 멀리, 괜찮은 카페로 가라’고 했는데, 오늘도 맨날 가는 집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늦게까지 하는 카페에 있었다고 했다. 막상 나가면 나도 그렇긴 하다.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굳이 멀리(라고 해 봐야 차로 10-15분 더 가는 거리)까지 가나 싶어서, 그냥 동네 카페 중에 그나마 괜찮은 곳에 자리를 잡곤 한다. 보내는(?) 사람은 기왕 자유인 거 질 좋게 누리다 오길 바라는 거고, 자유를 누리는 당사자는 어디서든 좀 쉬는 것에 의미를 두는 거고.


그래도 한참 영업시간 제한이 있을 때에 비하면 꽤 오랫동안, 늦게까지 있다 와서 내가 다 좋다. 그때는 어쩌다 한 번 나가더라도 마치 싸다 끊은 것 마냥 개운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어쨌든 주어진 시간 안에서는 ‘충분히’ 시간을 쓰고 오는 느낌이다.


내일은 또 처치홈스쿨에 가는 날이라, 오늘 밤에 노는 게(아내가 카페에 가서 노는 건 아니다. 내일 수업 준비도 하고, 계획도 짜고 그런다고 했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일 거다. 내일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겠다고 한 건 그래도 홀로 들이키는 바깥공기가 좋아서일 테고, 또 애들 재우면서 시간을 허비(?)하느니 나가는 게 낫기도 할 거고.


자유부인이 옛날(소윤이만 있었던 그 언젠가)처럼 ‘자유’부인의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필요한 시간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