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주장 및 고집과 팔꿈치의 상관관계

22.05.08(주일)

by 어깨아빠

(내) 엄마와 아빠는 기어코 점심을 사 주러 오시겠다고 했다. 예배드리고 두 시쯤 만나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게는 비밀로 했다. 소윤이는 한 번씩


“아빠. 할머니가 보시면 전화하겠죠?"


라고 물어보며 놓고 온 편지와 선물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언제쯤 보실지 궁금해했다. 워낙 눈치가 빠른 녀석이라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평소에는 예배를 드리고 바로 밥을 먹는다. 오늘은 엄마와 아빠를 기다려야 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아내와 비밀스럽게 논의했다. 엄마와 아빠가 뭔가 속닥거리면 오히려 더 귀를 기울이고 집중력을 발휘하는 소윤이의 촉수를 피하느라 고생했다.


일단 카페에 가서 시간을 좀 보내기로 했다. 요즘처럼 활동량이 왕성한 서윤이와 함께 카페에 가는 건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다행히 서윤이가 낮잠 잘 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유모차는 순창에 두고 왔으니, 서윤이가 잠들면 나는 서윤이와 함께 차에 있고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만 카페에 들어가기로 했다.


서윤이는 예배 시간부터 엄청 능글맞게 굴었다. 좋게 표현하면 그렇고 나쁘게 표현하면 뺀질거렸다. 거의 모든 일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시도해 보는 시기인가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언제 그런 시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시기를 거쳐야 한다는 건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특히 이동할 때, 서윤이는 자기주장을 강하게 했다. 위험한 계단을 손을 안 잡고 내려가겠다고 하거나, 가면 안 되는 곳으로 가겠다고 하거나. 막으려고 팔을 잡으면 두 다리를 구부리면서 팔을 쭉 펴고 바닥으로 붙으려고 했다.


교회 밖으로 나와서 주차장으로 걸어갈 때는 아내가 서윤이 손을 잡았다. 난 소윤이, 시윤이와 앞서갔는데 뒤따라오던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우는 서윤이를 안고 걸어왔다. 아마 또 자기 마음대로 하려다가 제지 당해서 그랬을 거다. 서윤이는 카시트에 앉아서도 계속 울었다. 평소에 비하면 더 오랫동안, 심하게 울었다.


“아야. 여기 아빠아아아”


자기 팔을 가리키면서 아프다는 말도 했다. 요즘 워낙 고집도 세지고 그래서 오늘따라 더 많이 짜증을 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 뜻대로 못한 게 그렇게 분했나’ 싶었다. 서윤이는 졸려서 눈을 못 뜨면서도 계속


“여기 아빠아아아. 아빠아아아아”


라고 하면서 짜증과 울음이 섞인 소리를 냈다.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이때까지도 그냥 짜증을 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서윤이는 잠들었다.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며


‘그게 그렇게 화가 났나. 이렇게 잘 잘 거면서’


하는 생각을 했다.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난 아내가 갖다 준 커피를 차에서 마시며 기다렸다. 서윤이가 깨지 않고 잘 자다가 깰 만한 시간이 되어서 눈을 떴다. 서윤이는 눈을 뜨자마자


“아야. 아야. 여기 아빠아아아아아”


이때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다. 아까도 아내에게 물어보긴 했지만 한 번 더 물어봤다. 카페에 있는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서윤이가 깼는데 계속 아프다네. 아까 대롱대롱 매달렸어?”


서윤이가 손을 잡고 걷다가 갑자기 벽에 한 발을 올리더니 곧장 나머지 발도 올렸다는 거다. 아내는 잡고 있던 서윤이의 손과 팔을 잡아당기면서 서윤이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했고.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서윤이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서윤이를 무릎에 앉히고 진지하게 문진을 했다.


“서윤아. 어디 아파?”

“여기이이”

“여기는?”

“암 아파여어”

“그럼 여기는?”

“아야. 아야. 아빠아아아아”


서윤이는 분명하게 자기 왼쪽 손목을 가리켰다. 게다가 내가 조금 힘을 줘서 꺾을 때마다 울음이 심해지기도 했다. 반대쪽은 그렇게 해도 반응이 없었다. 서윤이는 아내에게 가지도 않았다. 아내가 안아준다고 해도 싫다면서 아빠에게 안겨 있을 거라고 했다. 매우 이례적인,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엄마 손을 잡고 있다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을 했나 보다. 아내와 나는 서윤이 팔에 뭔가 이상이 생겼다는 걸 확신했다. 우리가 있던 곳 근처와 집 근처의 정형외과를 모두 찾아봤지만 휴일이라 문을 연 곳이 없었다. 결국 근처 종합병원에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하고 응급실로 갔다.


서윤이의 부상 유무와 경중을 떠나서, 응급실 트라우마가 되살아 났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뭐라고 질문을 막 했는데 하나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금 아빠한테 말 시키지 마”


응급실에 또 간다는 자체가 나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엑스레이 찍을 때 너무 울다가 경련하면 어떻게 하지?'

'혹시 링거라도 맞아야 하면 바늘 꽂을 때 또 경련하면 어떻게 하지?'

'팔에 깁스라도 하게 되면 손 못 빤다고 울다가 경련하면 어떻게 하지?'


논리적 타당성이 조금도 없는, 그저 불안과 두려움에서 기인한 상상이 머리를 금세 채웠다.


병원에 도착해서 아내가 서윤이를 안고 내렸다. 아내와 서윤이는 응급실로 들어가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와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고 계시던 엄마와 아빠에게도 연락을 드렸다. 주차를 하고 로비로 올라가는 동안 의지를 발휘해 마비됐던 이성을 되살렸다. 소윤이, 시윤이와 일상의 대화(서윤이에 관한 게 대부분이었다)를 나눴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기도하자. 뭐 기도해야 하는지 알지? 각자 기도해. 서윤이 별일 아니게 해 달라고”


한산한 외래 진료 병동 의자에 앉아 짧게 기도했다. 기도를 끝내고 눈을 떴는데, 들어간 지 10분도 안 된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곧 끝날 듯?”

“오잉. 벌써? 통화는 어렵나?”


바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서윤이는 팔꿈치가 빠진 거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서윤이가 손목이 아프다고 하니까 어깨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팔을 주물렀고, 그렇게 1초 만에 빠진 팔꿈치를 다시 맞추셨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으로는, 손목이 아프다고 오면 대부분 팔꿈치가 빠진 거라고 하셨다. 팔꿈치를 맞추고도 아프다고 하면 골절이나 다른 원인을 찾아봐야겠지만, 서윤이는 그런 게 없는 걸로 봐서 단순히 빠진 게 맞을 거라고 하셨다. 한 번 빠지면 앞으로도 또 빠지기 쉬우니 조심하라고도 하셨다. 서윤이는 아까와 다른, 환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쪽쪽 빨며 아내에게 안겨서 나왔다.


“서윤아. 안 아파?”

“암 아파여어어”

“이제 괜찮아?”

“네에”


하아. 힘이 쭉 빠졌지만 다행이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웃어넘길 수 있게 돼서. 아내가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서윤이 또래의 아이들에게 팔꿈치가 빠지는 건 아주 흔한 일이라고 했다. 그 이유도 대부분 비슷하다고 했다.


‘자기주장과 고집이 강해지면서 자기 뜻대로 하려는 아이를, 보호자가 팔로 잡아당기다가 팔꿈치가 빠진다’


서윤아. 너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 거니. 아무튼 가벼운 소동이었지만, 응급실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은 나에게는 유쾌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서윤이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자녀야”


(내) 엄마와 아빠도 일단 병원으로 오셨다.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를 깜짝 놀라게 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그 뒤로는 다시 평범한 일상이었다. 병원에 다녀온 덕분에 점심이 늦어졌다. 점심을 먹고 나니 바로 축구하러 갈 시간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함께 축구장에 가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겠다고 하셨다. 엄마와 아빠는 아내에게, 서윤이는 두고 혼자 집에 가서 좀 쉬라고 했지만 아내도 함께 축구장에 남았다. 어쩌다 보니 여섯 명의 식구가 축구하는 나를 기다리게 됐다. 이렇게 온 가족의 지지와 도움을 받는 축구인의 삶이라니. 다소 민망했다.


넓은 체육공원이어서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는 좋았다. 날씨가 좀 흐리고 추워서 걱정이긴 했지만, 엄마와 아내는 중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카페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꼬박 세 시간을 부모님의 은혜를 입어 축구를 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누구를 위한 어버이날인지 헷갈렸다. 아들과 며느리, 손주 점심도 사 주고 아들 축구하는 동안 손주도 봐 준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어버이날을 대접 받 아니 대접하고 돌아가셨다.


집에 와서 일단 아이들만 저녁을 먹였다. 점심이 늦었으니 저녁은 간단하게 먹였는데도 시간이 늦었다. 축구하고 오면 항상 그렇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와 매우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내 고모님이 싸 주신 꽃게탕을 뭔가에 홀린 듯 심취해서 먹었다.


“으아. 잘 먹었다. 이렇게 먹고 바로 누워서 자야 꿀맛인데”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일어나면 진짜 돼지가 되어 있을까 봐.


치우는 건 아내에게 맡기고 소파에 앉아서 노트북을 폈는데 잠이 쏟아졌다. 단순히 배가 불러서 졸음이 오는 차원이 아니었다. 축구를 해서 몰려오는 피로도 아니었다. 축구는 평소에도 한다.


“여보. 장거리 운전의 후폭풍인가 봐”

“그런가 보다”


아내도 나처럼 피로의 습격에 정신을 못 차렸다. 정말 오랜만에 날이 바뀌기 전에 들어가서 누웠다. 어제와 다름없이 평안히 자는 서윤이를 보며, 다시 한번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