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고민을 해결한 대신 퇴근을 포기했다

22.05.11(수)

by 어깨아빠


처치홈스쿨이 없는 날이었지만 아내는 오늘도 바빴다. 그동안 온라인으로 하던 목장 모임을 교회에서 한다고 했다. 나아지지 않는 코 막힘과 눈 가려움, 극도의 피로감, 거기에 자녀들과의 자잘한 밀고 당기기까지. 아내는 집을 나서기 훨씬 전부터, 어쩌면 눈을 떴을 때부터 매우 힘겨워했다.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놀러 가는 것도 힘든 일인데, 목장 모임이라는 집중과 대화가 필요한 시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늘 그렇듯, 아내는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갔다.


역시나 만만한 시간은 아니었다고 했다. 서윤이는 내내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서윤이 같은 아이가 혼자 돌아다니게 둘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못 가게 하면 또 울었을 테고. 게다가 지난 주일에 팔꿈치가 빠진 후로는, 함부로 서윤이 팔을 잡지도 못한다. 엉덩이 맴매를 맞아도 모자랄 판에 팔꿈치 탈골을 무기 삼아 상전 노릇을 한다. 물론 서윤이가 스스로 이용하는 건 아니고, 아내와 내가 겁먹고 움츠러든 거지만. 시윤이도 언제나처럼 잔잔하게 때로는 잔잔하지 않게 투정과 짜증을 던졌다고 했다. 목장 모임을 마친 아내의 목소리는 마치 힘겨운 시험을 치르고 나온 수험생 같았다.


“여보. 난 오빠네랑 호수 공원에 가려고”

“아, 그래?”

“어. 오빠가 호수 공원 간다고 같이 갈 거냐고 물어봐서 엄청 고민하다가”

“그래. 오늘 날씨도 좋고 사람도 없어서 좋기는 하겠다”


아내에게는 무엇보다 ‘쉼’과 ‘잠’이 필요하지만, 집에 가도 어느 하나 취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어차피 힘들 거라면, 차라리 바깥바람이라도 쐬면서 힘든 게 나을 때도 있다. 게다가 어른 둘에 아이 한 명인 오빠네 부부를 만나는 거니, 산술적으로는 아내가 이득이다. 아무리 육아 도우미가 있어도 어차피 엄마는 엄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가 아닌 시윤이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아빠. 있잖아여. 그. 그…”


입을 못 떼는 시윤이 옆에서 뭐라고 속삭이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하는지는 정확히 안 들렸다.


“아빠. 그. 뭐라고 말해야 되지”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말을 잇지 못하는 시윤이 대신 아내가 설명을 했다. 호수 공원에서 시윤이가 넘어졌고, 양 무릎이 꽤 아플 정도로 까졌다는 얘기였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시윤이가 펑펑 울 정도의 상처는 났다고 했다. 시윤이는 한차례 울고 나서 씩씩하게 아픔을 참고 있는 거라고 했다.


“시윤아. 많이 아팠어?”

“네”


“진짜 엄청 아팠겠다. 이따 집에 가면 물로 씻고 약 발라야 되는데 그때도 아플 거야. 무섭다고 짜증 내지 말고 씩씩하게 잘 해. 알았지?”


“네”


제일 많이 넘어지고 다치는 거 보면 가장 많이 까불기는 하나 보다.


“여보. 오늘 나 축구인 건 알지?”

“아. 까먹었네”

“아, 그랬어?”

“아, 차라리 잘 됐다. 저녁 뭐 할지 고민 안 해도 돼서. 애들은 그냥 대충 해서 먹여야겠다”


얼굴과 옷에 모래를 잔뜩 묻히고 행복해하는 서윤이를 찍은 사진을 받았다. 서윤이가 너무 행복한 표정이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지만 ‘수습하려면 막막하겠네’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도 당장 서윤이가 너무 좋아하니까 감히 말리지 못하고 그대로 뒀다고 했다. 어렸을 때, 접은 바지 밑단에서 모래가 후드득 떨어지면 엄마가


“아휴. 지훈아. 모래 좀 털고 들어와. 온 사방에 그냥 모래가 저벅저벅하잖아”


라며 얼굴을 찌푸렸던 기억이 난다. 바지 밑단에 조금 들어있던 모래도 그렇게 성가신데 온몸에 모래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걱정을 잊게 만드는 서윤이의 존재감이 새삼 놀라웠다.


잠시 후 아내는 다시 전화를 해서, 형님네와 장모님댁에 가기로 했다고 했다. 거기서 아예 저녁도 먹고 온다고 했다.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축구하러 떠난 남편 대신 친정에서 거두어 주는 건가. 아무튼 나도 한결 마음이 편했다. 물론 오는 시간이 늦고,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건 힘들겠지만 오늘은 저녁 고민과 그 준비를 위한 수고를 더는 게 더 좋아 보였다.


축구를 다 끝내고 휴대폰을 봤는데, 30분 전에 아내가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우린 지금 누움”


엄청 늦은 시간이었다. 저녁 식사 준비와 고민을 친정에 넘기고 퇴근 시간을 대가로 지불한 셈이었다.


오늘 만난 아내의 모습도 이번 주의 다른 날과 비슷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친 얼굴로 애써 미소를 띠었다. 코 막힘과 눈 가려움이 사라지면 좀 나아질는지, 그냥 이번 주가 가고 다음 주가 오면 좀 나아질는지. 아내가 얼른 조금이라도 정상 궤도에 가까워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