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에 치여도 지금 해야 할 일

22.05.12(목)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이 처치홈스쿨에 가는 날이긴 했는데, 엄청 일찍 왔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집에 도착했다면서 연락이 왔다. 아내에게 자주 물어보기도 하고 아내도 잘 대답해 주지만, 처치홈스쿨의 일정을 세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오늘은 어떤 이유로 빨리 끝난 건지 아니면 다른 날과 비슷한데 그저 느낌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다른 날에 비해 빨리 집에 온 듯했다.


“지금 시윤이랑 대전 중”

“왜?”

“끝없는 불순종”

“대전 중이라면 어떻게?”

“상대하기가 싫으네. 지금은 나도 엄청 열받아서 서로 말하지 말자고 함”


늦은 오후의 일이었다. 자주 있는 일이고,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빈번한 일일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근사한 해결책은커녕 당장 마땅한 답변을 찾지 못해서 답장도 못했다. 십여 분이 지나고 아내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내가 너무 또 다 얘기해서 마음이 무거우려나?”

“아니. 괜찮아”

“바른 태도로 대화할 준비되면 오라고 했고 진정됐음”

“여보와 시윤이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는 항상 내 마음속의 고민이야”


이렇게 말하니까 내 아들이 무슨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 치열하게 고민하고 마주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테니, 회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고 있는 거다. 대체로 아내가 감당하고 있고, 어쩌면 그래서 더 안쓰럽다.


원래 오후에 아이들과 장도 보고 문구점에도 다녀 오려고 했는데 다 무산됐다고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이런저런 일에 치이고, 야금야금 체력이 소진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나 혼자 속으로


‘저녁 먹고 애들 데리고 나갔다 올까. 아내는 집에서 쉬라고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소윤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 우리 저녁에 산책이라도 다녀오면 안 돼여?”

“저녁에? 소윤이는 산책이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문방구에 가고 싶은 거 아니야?”

“그것도 그렇고”


소윤이에게 정확히 대답을 못하고 망설였는데, 아내가 대신 대답했다.


“소윤아. 오늘은 일찍 자자. 엄마도 너무 피곤하고 내일 처치홈스쿨도 가야 되니까”


아무리 내가 애들을 데리고 나간다 한들, 아내의 휴식 시간을 조금 확보하는 만큼 퇴근 시간도 늦어지게 된다. 요즘 따로 퇴근이랄 게 없을 정도로 아이들과 함께 잠드는 게 일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른 퇴근을 향한 열망은 언제나 뜨겁다(이른 퇴근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빠르게 퇴근해도 9시가 넘는데. ‘그나마 덜 늦은 퇴근’이 좋겠다).


서윤이는 늦고 긴 낮잠을 잤다. 그건 곧 아내의 ‘덜 늦은 퇴근’이 수월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서윤이는 자러 들어가서 한참을 종알거리고 장난을 쳤다.


“강서윤. 엄마 나가라고 할까? 서윤이 엄마 없이 자고 싶어요?”


방 문을 열고 들어가서 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서윤이의 흥분(?)을 한층 잠재우기 위한 목적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보다는 막 신나서 떠들다가 후다다닥 이불 속에 들어가서 눈을 감는 서윤이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느는 말하기 능력과 더불어 고집, 떼의 빈도도 높아졌지만 대신 이런 재미도 생겼다.


“여보. 오늘은 나 너무 안 나오면 좀 깨워줘”


자기의 미래를 예견한 듯, 유언을 남기고 방에 들어간 아내는 역시나 소식이 없었다. 요즘은 방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내를 깨우는 대신 전화를 건다. 잠든 자녀도 함께 깨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여보. 왜 안 깨웠어”

“어? 내가 전화했잖아”

“아, 그랬어? 나 여보가 전화해서 깬 거야?”

“어”


몽롱한 상태로 나온 아내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주방으로 가서 과자를 찾았다. 언제나처럼 꺼내기는 아내가 꺼냈지만 먹는 양은 압도적으로 내가 더 많았다. 아내와 과자 먹으면서 수다 떠는 게 제일 재밌는데, 요즘 그럴 시간이 없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계절 탓인지, 코로나 탓인지, 아니면 그냥 노화의 과정인지 아무튼 피로에 치이고 있다. 오늘도 마치 고된 공사 현장의 일을 마치고 최대한 빨리 취하기 위해 빨간 뚜껑의 소주를 마시는 아저씨처럼, 아내와 나는 빠르게 과자 봉지를 비웠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막내가 하루의 마침표를 찍어주려는 듯 깨서 나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