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13(금)
요즘 아내와 아이들이 처치홈스쿨에 가늘 날에는, 내가 먼저 전화를 걸 때가 많다. 아내는 눈을 뜨자마자 나갈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을 거다. 그래도 하루를 시작할 때 서로 목소리는 듣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꾸역꾸역 전화를 한다. 준비하는 아내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차에 타서 가고 있을 시간에 맞춰서.
그러고 나면 처치홈스쿨이 끝날 때나 돼야 다시 연락이 가능하다. 오늘은 기도회도 하고 교사 모임(교사가 곧 엄마들)도 하느라 엄청 늦게 끝났다고 했다. 집에 오면서 어제 소윤이가 가고 싶다고 하던 문구점에도 들렀다고 했다. 소윤이는 사고 싶었던 수첩을 샀다고 했다. 시윤이는 연필꽂이(? - 몽당연필을 꽂아서 더 오래 쓸 수 있게 하는)를 샀고.
아내는 역시나 녹초였다.
“여보. 미안. 오늘 저녁은 계란밥이야”
“괜찮아. 전혀 상관없는데”
육아하는 부모에게 ‘계란밥’은 약간 상징과도 같은 음식이다. 밥은 있는데 반찬은 딱히 없고, 뭔가를 만들기에는 귀찮거나 시간이 없을 때 찾게 되는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그나마 계란이라도 들어갔으니 영양적으로도 최악은 아니라는 심리적 면피까지 제공하는 위대한 음식이다. 나도 어렸을 때 계란 프라이에 간장과 마가린을 넣어 비빈 밥을 자주 먹은 걸 보면 유서 깊은 음식인가 보다.
아무튼 그런 계란밥은 우리 집에서는 주로 아침에만 제공된다. 아침이니 눈을 뜨긴 했지만 몸에는 여전히 피로와 잠이 남아 있고, 의욕을 내기 어려운 시간이니 간단히 해결하기 좋은 계란밥을 선택하는 거다. 주말에 점심을 거하게 먹어서 아직 배가 안 고플 때는 가끔 계란밥을 주기도 하지만 평일 저녁 식탁에 올라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난 상관이 없는데 아내의 입장에서는 너무 무성의한 음식을 올린다는 느낌인가 보다. 계란밥이든 김과 밥이든, 난 언제나 감사하고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어 있다. 오히려
‘오죽하면 저녁에 계란밥을 먹자고 했을까’
라고 생각하면 그저 안쓰러울 따름이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가 나중에 내가 이 땅을 뜨고 없을 때, 아빠의 어떤 모습이 가장 그립냐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 아빠는 밥을 참 맛있게 드셨어요. 뭐든지”
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도 뭐든 감사히 잘 먹는다고 자부하고 있다. 서윤이도 이제 그 경계에 섰다. 요즘 밥 먹는 태도가 지지부진할 때가 많아서 열심히 훈육 중이다. 오늘도 서윤이는 계란만 골라 먹고 영 집중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에 비하면 훨씬 너그러운 과정을 걷고 있다.
“서윤아. 아빠가 먹여 줄까?”
“네에”
곧잘 받아먹는 걸 보면 배가 불러서 안 먹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귀찮은 거다. 밥 먹는 게. 부지런히 먹지 않으면 굶게 되고, 굶으면 배가 고프다는 걸 몸소 깨닫게 해 주면 바로 사라질 태도지만 막내의 특권으로 면하고 있다. 이런 걸 알고도 속는다고 하는 건가.
교회에 갈 시간이 되어서 아내에게 뒷일을 맡기고 집에서 나왔다. 예배를 마치고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여보. 커피?”
“여보. 참지 못하고 배달시킴”
저녁에 아내와 커피를 배달시켜 먹은 게 매우 오랜만이었다. 커피를 마시긴 했지만 오늘도 아내와 오랫동안 수다를 떨지는 못했다.
“아, 여보랑 놀고 싶은데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그래. 얼른 자”
“여보. 우리 내일은 좀 쉬자.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그래”
표현만 ‘빈둥’일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딘가를 나가는 데 따르는 체력 소모를 줄여보자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