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14(토)
일어나기는 일찍 일어났다. 물론 나보다 애들이 더 먼저 일어났고. 눈만 뜨고 몸은 일으키지 않은 채로 한참을 버텼다. 누워서 빈둥빈둥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여유를 즐기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배가 고프다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외면하기가 어렵다. 아침에 프렌치토스트를 해 주기로, 어제 아내와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는 아내도 방에 들어와서
“여보. 언제 나올 거에요?”
라며 나를 채근했다(아내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애들도 모자라서 아내까지 이러나’ 싶은 마음에 살짝 짜증을 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좀 오래 버티기도 했나 보다.
일어나자마자 편의점에 가서 식빵과 우유를 사 왔다. 밥이 없으니 간단하게 먹자고 하는 건데 의외로 성가신 게 프렌치토스트다. ‘밥 대신 먹는 별식’이라는 데 의의를 두면 감수할 만하다. 또 애들도 굉장히 좋아한다. 식빵 한 봉지를 다 구웠는데 남김없이 먹었다. 나나 아내는 고작 한 조각 먹었을까 말까다. 나머지는 다 자녀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아내와 소윤이의 비염 증세가 심해도 너무 심해서 병원에 가 보기로 했다. 둘 다 잠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로 코가 막혀서 고생이었다. 당연히 아내와 소윤이만 가려고 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나도 밖에 나가고 싶었다.
“그럼 우리 다 같이 가지 뭐”
내가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내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아까 소윤이가 짧게라도 엄마랑 데이트한다고 좋아했는데”
“아, 그랬어? 아, 그럼 둘이 갔다 와”
그랬더니 이번에는 시윤이가
“아,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라며 기회를 놓칠세라 달라붙었다. 원안대로 아내와 소윤이만 가기로 했다. 서윤이는 자기도 가겠다면서 현관까지 쫓아 나갔다. 매우 서럽게 울면서.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서 우는 건지 그저 나가고 싶어서 우는 건지 정확히 분간은 안 됐다. 후자의 이유가 더 큰 것 같기도 했다.
“서윤이 너무 울면 같이 갈까?”
아내가 메시지를 보냈다. 언제나 그렇듯, 헤어지는 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진다. 서윤이도 금방 울음을 그치고 오빠와 깔깔거리며 장난을 쳤다. 같이 나가도 못했고, 엄마도 떠나보냈지만 아빠와의 시간도 좋아하는 시윤이가 보드게임을 들고 왔다.
“아빠. 도블 하자여”
“아, 아빠 설거지만 하고”
어제부터 미룬 설거지가 꽤 됐다. 정말로 그 설거지만 끝내면 시윤이와 함께 보드게임을 할 생각이었다. 부지런히 설거지를 하는데 시윤이가 똥을 쌌다. 손에 묻은 거품을 씻어내고 시윤이에게 갔다. 깊은 해저로 잠수하는 잠수부처럼 한껏 숨을 들이마시고 뒤를 처리했다.
“아빠. 이제 도블 하자여”
“아, 시윤아. 시윤이 그냥 샤워하자”
기왕 똥 싼 김에 샤워도 시켰다.
“아빠. 이제 설거지 다 했어여?”
“아니. 시윤이 샤워했잖아. 설거지 마저 해야 돼. 조금만 기다려”
그 사이 아내가 메시지를 보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병원이 휴가라 문을 안 열었다는 소식이었다. 설거지가 다 되길 기다리던 시윤이는 마음을 바꿨다.
“아빠. 우리끼리 산책하러 나가자여”
“그럴까?”
“네. 아빠랑 서윤이랑 저랑”
“그래. 그러자”
설거지를 마치고 애들 옷을 입히려고 하는데 막막했다.
“시윤아. 서윤이 옷 좀 골라 봐”
“아빠. 제가 건조기에 가 볼게여”
호기롭게 건조기로 갔던 시윤이는 소득 없이 돌아왔다.
“아빠. 뭘 꺼내와야 할지 모르겠어여”
“아, 알았어. 아빠가 찾아볼게”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 시윤이에게 그걸 부탁하다니. 나도 참. 빨래더미에서 서윤이 옷을 찾아서 입혔는데, 내가 봐도 난해했다.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동네 바람 쐬러 가는 마당에 거기에 더 시간과 노력을 쓸 필요가 없었다.
유모차도 안 가지고 나왔다. 안아달라고 하면 안아주겠다는 심정으로. 동네 산책이라 가능한 패기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아내와 소윤이가 내렸다.
“어?”
“어?”
서로 놀랐다. 진료를 안 보고 와서 생각보다 빨리 왔다. 시윤이는 그래도 우리끼리 산책을 하고 오자고 했다. 서윤이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서윤아. 엄마랑 집에 갈래?”
“아니여어. 나가꺼에여어”
역시. 아까 운 건 못 나가서 아쉬웠다는 뜻이었나 보다. 서윤이는 조금의 미련이나 아쉬움도 없이,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반갑게 손을 흔들며 엄마와 언니를 보냈다. 날씨가 정말 좋긴 했다. 시윤이가 가자고 하는 대로 따라서 걸었다. 아파트 단지 둘레를 따라 걸었다. 어딜 가도 푸르른 계절이기도 하고 아파트 경계를 따라 나무나 꽃이 많이 펴서 생각보다 괜찮은 산책길이었다. 서윤이는 열심히 걷다가 힘들면 안기고 다시 걷다 안기고를 반복했다.
어제 아내와 얘기했던 것처럼 오늘은 집에서 쉬기로 했는데, 늦은 오후에는 약속이 생겼다. 그전까지는 집에서 쉬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낮잠 시간에 모두 들어가서 눕기로 했다. 예배를 드리고 다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안 자도 되지만 서윤이가 잠들 때까지는 같이 누워서 쉬자”
라고 얘기했다. 병원놀이하면서 환자 역할 하느라 잠깐 누워 있기만 해도 황홀한 마당에 합법적(?)으로 누울 수 있다는 건 참 소중한 거다. 아내와 나에게도 쉼이 필요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뭔가 지치고 피곤한 상태였다.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서윤이는 물론이고 시윤이까지 잠들었다. 안 잘 것처럼 종알종알 떠들더니 어느 순간 곯아떨어졌다. 이럴 때 보면 아직 어린 티가 팍팍 묻어나서 너무 좋다. 심지어 서윤이보다 더 오랫동안 잤다. 나가야 하는 시간이 되도록 안 일어나서 먼저 깨웠다.
집 근처 공원에서 지인 가족과 만나기로 했다. 처음 가 보는 공원이었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애들 데리고 가서 놀기 딱 좋았다. 일단 멀리서 찾아올 만한 곳이 아니라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에 비하면 관리는 제법 잘 되어 있었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기에도 좋았다. 소윤이와 소윤이 친구는 인라인스케이트를 가지고 와서 함께 탔다. 시윤이도 시윤이 친구와 자전거도 타고 킥보드도 타면서 놀았다. 아내들은 각자의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고 공원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들은 주인 없는 농구공 하나를 주워서 골대에 던지며 대화를 나눴다. 가끔씩 바람이 조금 세게 불기는 했지만 야외 활동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두 시간 넘게 있었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놀았다. 먼저 가자고 안 했으면 밤을 새워 놀 기세였다. 저녁도 함께 먹기로 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지인의 집으로 갔다. 함께 저녁을 먹고 2차로 수다를 떨었다. 밤 10시까지.
소윤이가 많이 힘들어 보였다. 최근 며칠 동안 하루 종일 손수건으로 코를 풀며 살았다. 내 비염 증세가 매우 심할 때의 상태로 며칠을 보내고 있는 거다. 얼마나 괴로운지 안다. 소윤이는 오늘도 손수건을 손에 쥐고 쉴 새 없이 코를 닦고 풀었다.
“아, 오늘은 빨리 집에 가고 싶었어여. 얼른 집에 가서 눕고 싶었어여”
비염 증세가 너무 심해서 그것만 생각했는데 전반적으로 기력이 많이 떨어졌던 모양이다. 소윤이 입에서 먼저 집에 가고 싶다는 얘기가 나오고, 졸려서 눕고 싶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니. 부지런히 씻겨서 눕혔다. 소윤이는 금세 잠들었는데 얼마 안 돼서 깼다. 깼다기보다는 코가 막혀서 괴로웠는지 막 흐느끼듯 울었다. 짜증도 내고. 자기도 어떻게 못하니까 너무 힘들었나 보다. 한참을 그렇게 뒤척이며 끙끙거렸다.
나도 무척 피곤했다. 일기를 쓰겠다고 소파에 앉긴 앉았는데 조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되겠다’
라고 생각하며 노트북을 접어서 가방에 넣고
‘얼른 씻고 자야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잠들었나 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소파에 앉은 자세 그대로였고 시간은 한 시였다. 진짜 피곤했나 보다. 거짓말을 하나도 안 보태고 거실에 나와서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 어제 써 놓고 올리지 않은 일기 올린 거 정도. 그것 말고는 나와서 제대로 놀거나 쉰 것도 아니고 정말 소파에서 졸다, 자다 끝났다.
이럴 거면 차라리 애초에 방에 누워서 편하게 푹 잘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