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만병 통치약인가

22.05.15(주일)

by 어깨아빠

자면서 머리가 아팠다. 보통 자고 일어났을 때나 낮에 활동하다가 머리가 아프지 자면서 두통을 느끼는 건 생소한 경험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밤새 코와 기침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룬 소윤이도 아팠다. 코가 너무 막혀서 힘들다고는 했는데 꼭 감기 걸렸을 때처럼 기운이 없었다. 아플 때면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밥을 못 먹었다.


소윤이 스스로도 어린이 예배에 가는 건 힘들 것 같다고 했고, 아내와 내 생각에도 오늘은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게 나아 보였다. 시윤이는 멀쩡했으니 새싹꿈나무 예배에 가야 했지만, 시윤이는 자기도 엄마, 아빠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마침 오늘 창립 기념 주일이라 2년 만에 교회 식당도 다시 가동되고, 잔치 같은 날이라 온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야 오늘이 스승의 주일이라는 걸 생각해 내고는, 교회에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소윤이와 시윤이의 선생님의 선물도 샀다.


운전을 하는데 너무 졸렸다. 뭔가 이상했다. 몸에 이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너무 졸렸다. 졸릴 시간도 아니었고 졸릴 만한 거리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냥 조금 졸린 게 아니라 더 이상 운전을 하기 어렵다고 느낄 정도로 눈이 막 감겼다. 신호에 걸렸을 때 아내와 자리를 바꿨다. 교회까지 10분도 안 남은 거리였지만, 조수석에 앉자마자 잠들었다.


예배 시간 내내 서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졸음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소윤이는 힘없이 아내에게 기대어서 예배를 드렸다.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고, 쉴 새 없이 손수건으로 코를 닦았다. 시윤이는 힘이 없지는 않았지만 거의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예배를 드렸다. 시윤이에게는 어른의 예배가 굉장히 지겨웠을 텐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서윤이는 바쁘게 움직이다가 유모차에서 잠들었다.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로 처음, 2년 만에 교회에서 밥을 먹었다. 서윤이는 아직 자고 있었고, 식당에는 유모차를 동반할 만한 자리가 없었다. 서윤이를 태운 유모차를 식당 뒤쪽 구석에 박아두고 줄을 섰다.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는 선생님에게 선물을 드리고 왔다. 받아야 할 밥은 5인분이지만 받을 사람은 두 명(아내와 나) 뿐이라 항상 손이 모자란다. 겹치고 포개고, 몰아서 받고 하면 꾸역꾸역 가능은 하다. 밥과 반찬을 받아서 자리에 앉았는데 시윤이가 얘기했다.


“어? 어디서 울음 소리가 들리는데?”

“울음 소리? 안 들리는데? 얼른 먹자”


아내가 유모차에 가서 서윤이를 안고 왔다. 서윤이가 깨서 울었던 게 맞았다.


“오, 시윤이가 잘 들었네”


소윤이는 점심도 못 먹었다. 한 숟가락 먹더니 더 못 먹겠다고 했다.


“아직도 배가 하나도 안 찼어여. 아직 배가 안 불러여”


요즘 시윤이가 자주 하는 말이다. 괜히 허세 부리는 게 아니라 진짜 그래 보인다. 실제로 엄청 많이 먹기도 하고. 교회에서도 마지막까지 ‘아직 배가 안 찬다’는 말과 함께 숟가락을 놓지 못했다. 너무 ‘오랫동안’ 먹는 게 조금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시윤이가 시원시원하게 숟가락질하는 걸 보면 내 속이 다 후련하다.


소윤이는 얼른 집에 가서 눕고 싶다고 했다. 코가 목뒤로 넘어가면서 기침도 많이 했다. 기침을 너무 많이 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 교회에서 집에 갈 때도 아내가 운전을 했다. 아침보다는 나아졌지만 나도 여전히 졸리긴 했다. 집에 도착해서 소윤이와 함께 방에 들어가 누웠다. 모양새는 아픈 딸을 보듬으면서 재우는 거였는데, 실상은 내가 먼저 곯아떨어졌다. 일어났을 때 소윤이는 방에 없고 나 혼자였다. 나만 푹 잔 거다.


시윤이가 막 짜증 내고 징징대는 소리가 들렸다. 시윤이 특유의 줄이 풀린 현악기에서 나는 듯한 늘어지는 소리가 있다. 본능적으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시윤이를 방으로 불렀다.


“시윤아. 누가 엄마한테 그렇게 짜증 내래. 버릇없이. 시윤이도 누워서 자. 아빠가 보니까 너 졸려서 그래. 짜증 내지 말고 한 숨 자고 일어나”


시윤이는 내 옆에 와서 누웠다. 내가 말하니까 마지못해 누운 느낌이긴 했는데, 결국 시윤이도 금방 잠들었다. 역시 졸리고 피곤한 게 맞았다.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듯, 시윤이도 피곤할 때 더 태도가 안 좋아지곤 한다. 낮잠이라고 하기에는 꽤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가랑비처럼 쉬지 않고 적시는 투정과 함께하는 것보다는 늦었더라도 재우는 편이 훨씬 나았다.


난 시윤이를 재워 놓고 축구하러 나왔다.


“여보. 낮잠도 자고 축구도 하러 가고. 완전 쓰레기 남편이네”


민망하니까 괜히 자아비판을 하고 나왔다. 그래도 시윤이를 재우고 나와서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안 그랬으면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처럼, 언제 아내 옆에서 터질지 몰랐다.


시윤이는 잠에서 깨고는 나를 찾았다고 했다. 이미 축구하러 갔다는 걸 알고는 ‘아빠랑 인사를 못했다’면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좀 미안하긴 했다. 기껏 재워 놓고 자기(나)는 축구하러 사라지다니. 아픈 소윤이를 위해, 잘 자 준 시윤이를 위해 빼빼로를 샀다. 서윤이 것도 따로 하나 사려고 했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이 정도 사리 판단은 명확하게 하는 서윤이가 실망할 모습이 그려졌지만, 별 수가 없었다.


장모님이 샌드위치를 배달시켜 주셔서 그걸 저녁으로 먹었다. 아내와 시윤이, 서윤이는 내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먼저 먹었다. 소윤이는 안 먹었다. 또 먹기 싫어서 그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와 함께 먹겠다고 기다린 거였다. 소윤이와 마주 보고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아침, 점심보다는 많이 먹긴 했지만 소윤이는 여전히 얼마 못 먹었다. 소윤이가 남긴 샌드위치는 내가 먹었다. 다 먹고 빼빼로도 먹었다. 소윤이는 빼빼로는 안 남기고 다 먹었다. 여전히 아파 보였지만 아침보다는 아주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했다.


서윤이는 자기도 먹을 줄 알고 기대했는데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는 엄마의 말에 울음을 꾹 참았다. 대신 낮에 교회에서 받은 빵을 줬다. 다행히 서윤이는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나중에는 언니와 오빠가 초콜렛이 묻지 않은 빼빼로의 끝부분만 남겨서 줬다. 살 다 발라 먹고 강아지에게 뼈다귀 남겨 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서윤이는 그것도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듯, 초콜렛 묻은 부분을 달라는 등의 주제넘은 요구는 일절 하지 않고 잘 받아먹었다.


“여보. 머리는 어때?”

“나? 없어졌어. 축구하고 오니까 두통이 싹 사라졌네”


그러고 보니 졸린 것도 없어졌다. 축구하고 싶어서 거짓말로 명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진짜 그랬다. 저번에 엉덩이 아플 때도 그러더니, 축구만 하면 증상이 사라진다. 축구를 해야 사는 사람이 됐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