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을 모르는 육아

22.05.17(화)

by 어깨아빠

아내는 아침부터 녹록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처치홈스쿨에 갈 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을 태워서 가는데 오늘은 그것도 못하고 아예 지각을 각오했을 정도로 시간을 썼다고 했다. 물론 주인공은 시윤이였다. 아내는 이렇게 얘기했다.


“시윤이에게 채워줘야 할 사랑의 그릇도 분명히 있지만 한편으로는 잘 다뤄줘야 할 영역도 있는 거 같아”


명쾌한 정답이었다. 문장으로는 간단하지만 삶에서는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게 문제지만. 아내가 하나씩 하나씩 풀고 있으니 ‘큰’ 염려는 하지 않는다. 응원하고 격려하고 함께 고민하고 걱정할 뿐이다.


아침에 시윤이가 제일 먼저 일어났다고 했다. 아내도 깼지만 자는 척을 했는데, 시윤이가 아내 옆으로 오더니 여기저기를 쓰다듬었다고 했다. 얼굴, 팔, 다리 할 것 없이,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엄청 스윗하게’ 엄마를 만졌고, 아내도 기분이 엄청 좋았다고 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시작했는데…”


라는 아내의 말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게 육아다.


아내와 아이들이 오늘은 처치홈스쿨에서 늦게 돌아왔다. 나보다 조금 먼저 집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 말은 곧 아내의 저녁 준비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는 말이다. 아내는 어묵탕을 끓였다. 이것도 아내의 ‘시그니처’가 된 음식이다. 한 솥을 끓였는데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너무 맛있다’면서 쉴 새 없이 어묵을 집어먹었다. 서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너무 어묵만 골라 먹고 밥은 안 먹길래 중간에 잠깐 밥그릇을 박탈했다.


“강서윤. 자꾸 밥 안 먹고 다른 것만 골라서 먹으면 이제 밥 못 먹어요”


밥그릇을 뺏기자마자 서럽게 울었던 서윤이는 눈물을 삼키며


“네에”


라고 대답하더니 그 뒤로는 꼬박꼬박 밥을 떠서 함께 먹었다.


소윤이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코 막힘이나 기침은 아직 남았지만 말과 행동은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오히려 더 까불었다. 목장 모임을 하는 내 앞에서 율동 비스름한 동작을 하며 소리 내지 않고 웃고 까불었다. 반가운 모습이었다. 며칠 아파서 못 보던 모습이기도 했고, 점점 의젓하고 큰 언니(누나) 같은 모습이 많아져서 보기 힘든 모습이기도 했다. 아무튼 까부는 소윤이가 반가웠다.


저녁에는 목장 모임이 있어서 아내가 아이들을 씻기고 재웠다. 다 마치고 방에 들어갈 때쯤, 아내가 폭발(?)했다. 목장 모임에 집중하느라 자세한 상황은 파악을 못했지만, 아내가 아이들에게 ‘이제 그만 좀 해라’는 식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한 번 냈다. 그때도 아내가 남편이나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큰 한숨을 내쉬길래


“여보. 왜 그래?”


라고 물어봤다.


“하아 그냥. 정리를 하라고 하라고 해도 자꾸 그대로인 게 속이 터지네”


바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따끔하게 이야기를 했다. 소윤이는 내 얘기를 듣고는 작은방으로 들어갔는데 나올 때 보니 눈가가 붉었다. 아내가 바로 나에게 귀띔을 했다.


“여보. 소윤이는 정리 잘 했어요. 시윤이가…”


소윤이는 아내가 따로 불러서 마음을 다독였다. 아무튼 그때부터 꾹꾹 눌러 참았던 아내의 뭔가(라고 쓰긴 했지만 뭔지 알 것 같은)가 터진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엄청 뜨거운 폭발은 아니었다. 그냥 짧게, 휴가철 슈퍼마켓에서 파는 싸구려 폭죽처럼 지나갔다.


목장 모임이 막 끝났을 때 아내도 아이들을 재우고 나왔다. 아내는 낮에 사 놓은 커피와 쿠키를 꺼냈다. 쿠키 전문점이라 커피는 그저 그런 곳이었는데, 커피는 마시고 싶고 맛있는 커피를 사러 갈 시간은 안 돼서 울며 겨자 먹기로 그거라도 샀다고 했다. 대신 맛없는 게 조금이라도 가려지도록 단 커피를 샀다고 했다.


아내는 커피와 빵을 꺼내 놓고 열심히 영어 발음 연습을 했다. 왠지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이제 아내가 좀 기력을 찾은 건가. 기력을 찾을 만한 하루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