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닭은 필요없다

22.05.18(수)

by 어깨아빠

원래 목장 모임이 잡혀 있었는데 목자 집사님의 사정으로 취소됐다고 했다. 만나서 대화하고 말씀을 나누는 건 좋지만 그에 따르는 수고도 만만하지가 않다. 누군가와 집중해서 대화를 나눠야 하는 상황에도 세 자녀는 아내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특히 막내가. 이런 이유로 아내는 어제부터 적잖이 부담을 느꼈다.


“아, 내일 목장 모임이네”


그러던 와중에 취소가 된 거다. 아내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을 거다. 싫은 건 아니다. 다만, 너무 힘드니까 가끔 피하고 싶을 뿐.


아내는 어제 오랜만에 먼저 얘기했다.


“여보. 나 내일 저녁에 나갔다 와도 돼?”

“어, 되지”

“나 다음 날 준비를 좀 해야 돼서”

“그래. 애들한테만 미리 말해”


기왕 나가는 거 저녁도 맛있는 거 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평이 괜찮은 식당 두어 개를 찾아서 추천했다.


“여기도 평이 좋다. 이따 여보 가서 먹어도 좋겠다”

“여보. 나 지난번에 여기 가려다 실패했음”

“아하. 인기 있는 곳은 다르구나”


또 다른 곳을 추천했다.


“여기도 가 봤음. 친구들이랑. 맛있더라 여기도”


역시. 아내는 나보다 몇 발은 빠르다. 연예나 시사 쪽 소식은 한 2-3일 뒤에나


“여보. 000가 이랬다며?”

“어. 그거 벌써 며칠 됐는데”

“아, 그래? 난 오늘 알았네”


라며 굉장히 늦지만, 식당이나 카페는 엄청 빠르다. 주변에 유명한 곳은 물론이고 맛있다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곳부터 아직 입소문도 안 난 곳까지. 다 섭렵하고 있다.


“여보. 이런 데가 있나 봐”

“아, 거기 알아”

“여보. 저기 봐봐. 저런 게 있네”

“아, 저기도 알아”


퇴근했는데 장모님이 와 계셨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말하지 않으시고 갑자기 오셨다고 했다. 월요일처럼 설거지도 다 되어 있었고, 또 반찬도 해 오셨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아이들과 내가 먹을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다. 아이들은 볶음밥이었고 난 비빔밥이었다. 장모님과 아내는 우리의 저녁 식탁이 다 차려지고 나서 나갔다.


서윤이가 낮잠을 안 잤다고 했다. 서윤이는 마지막 서너 숟가락을 남겨 두고 더 이상 숟가락질을 하지 못했다. 그건 어떤 식사 태도의 불량함이 아니라 그저 너무 졸려서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것이었다.


“서윤아. 그만 먹을래?”

“네에”

“그래. 이제 그만 먹어”


언니와 오빠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식탁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서 손가락을 빨았다. 냉장고에서 오렌지 두 개를 꺼내 껍질을 깠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밥을 다 먹고 나서 나눠 줬는데, 서윤이는 여전히 졸렸지만 힘을 내서 고개를 들었다.


“서윤아. 너무 졸려서 오렌지 못 먹겠지?”

“아니여어. 먹으꺼에여어”

“먹을 수 있겠어? 너무 졸리지 않아?”

“네에. 먹으꺼에여어”


일부러 장난을 좀 쳐 봤는데 역시나 오렌지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두세 조각을 먹을 때는 거의 졸면서 먹었다. 그래도 끝까지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서윤이가 어제 의자에 올라가다가 입술을 좀 찧었다. 아주 살짝, 서윤이 새끼손톱보다 작게 상처가 났다. 서윤이가 아프다고 하길래


“이리 와. 아빠랑 뽀뽀하면 안 아파”


라고 하면서 서윤이 아랫입술을 빨아들이며 뽀뽀를 했다.


“어때? 이제 안 아프지?”

“네에. 암 아파여어어”


그 뒤로도 몇 번 나한테 와서


“아빠. 아파여어. 뽀뽀해야 돼여어”


라고 했는데, 오늘도 낮에 통화할 때 그 얘기를 했다. 자기 입술이 아픈데 아빠가 없어서 뽀뽀를 못한다고, 얼른 아빠가 와서 뽀뽀를 해야 안 아프다고. 집에 오니 입술을 들이밀며 뽀뽀를 하자고 했다. 자기 전까지 수시로 뽀뽀를 했다. 갑자기 짠 계락치고는 수확이 좋았다.


소윤이는 혼자 씻었다. 그 사이에 시윤이와 얘기를 좀 했다.


“시윤아. 오늘은 뭐 하면서 지냈어?”

“오늘은 뭐 그냥 다른 날이랑 비슷하게 보냈져”

“그래? 오늘도 엄마 말씀 잘 들었어?”


시윤이는 대답 대신 특유의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왜? 엄마 말씀 안 들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맞네. 얘기 못하고 웃는 거 보니까 엄마 말씀 안 들었구만”

“아니 쪼금 안 들을 때도 있었어여”

“시윤아. 엄마 그렇게 좋다면서 엄마 말씀 좀 잘 듣지”

“아니 근데 저는 제 마음대로 하고 싶어여”

“마음대로? 마음대로 하면 좋을 거 같아?”

“네. 마음대로 하고 싶어여”


아내가 낮에 시윤이 훈육하느라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어봤더니 저렇게 대답을 했다. 낮에 아내에게도 똑같이 얘기했다고 했다. 진짜 마음대로 하고 싶은가 보다. 앞으로도 한참 동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텐데.


서윤이는 중간에 깨서 나왔다. 엄청 서럽게 울면서 나왔다. 나에게 안겼는데도 계속 울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서윤이를 방에 눕히고 나왔다. 물론 충분히 설명은 했다. 서윤이가 우느라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윤아. 잘 자. 아빠 나갈게”

“네에”


기대를 거의 안 했는데, 서윤이는 그대로 다시 잠들었다. 의미를 해석해 보자면 엄마가 보이면 엄마는 꼭 자기 옆에서 재워 줘야 하지만, 아빠는 있다는 걸 알아도 굳이 자기 옆에 눕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한 마디로 꿩이면 꿩이지 닭은 굳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다시 잠든 서윤이는 아내가 오고 나서 한 번 더 깼다. 기어코 아내의 품에 안겼다.


어제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서윤이 요즘은 좀 안 깨네?”

“그러게? ‘요즘’의 주기가 매우 짧긴 하지만”


역시. 그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응급실에서 하면 안 되는 금기어처럼 우리 집에도 금기어를 정해야겠다.


‘어? 요즘 안 깨네?’

‘요즘 애들 늦게까지 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