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없이 저녁 먹는 이유

22.05.19(목)

by 어깨아빠

알람 소리에 눈을 떠서 일어났을 때, 엎드려 자는 것 같았던 서윤이가 벌떡 일어났다.


“어? 서윤아. 안녕”

“아빠아. 안녀어엉”


서윤이는 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다시 엎드렸다. 다시 잘 거 같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방 문을 닫고 준비를 하는데, 안에서 우는 소리를 비롯한 여러 소리가 들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처치홈스쿨 가는 날에는 어차피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야 하니 누군가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아내의 잠을 방해하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다(라고 애써 좋은 점도 찾아본다).


아내와 아이들이 처치홈스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오늘의 첫 연락이 닿았다.


“지금 끝났어?”

“어, 지금 가는 길이야”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그런가?”


정규 일정(?)을 마치고 다른 선생님과 면담이 있어서 좀 늦을 거라고 했는데, 내 예상보다는 빨랐다. 집에 일찍 가겠거니 생각했는데 퇴근하고 있을 때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가고 있지”

“우리도 지금 들어가는 중이야”

“어? 어디 갔다 왔어?”

“어. 우리 저녁 먹고 들어가는 중이야”

“아, 진짜? 어디서?”

“00000. 우리 세 개 시켜서 다 먹었어”

“아, 그랬구나”


아내가 나 빼고 아이들과 저녁을 먹는 건, 거의 100% 하나의 이유다. 내가 축구하러 가는 날이었다. 집에서 혼자 아이 셋과 저녁을 먹는 것보다 바깥 식당에서 먹는 게 과연 더 수월한 일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남이 해 주는 밥’을 먹는 데 의미를 둔다면 나쁜 선택은 아니다.


집에서 마주한 아내의 모습은 다른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한 주의 피로가 켜켜이 쌓여 다른 날보다 더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이제 씻기기만 하면 눕힐 수 있다는 거였다. 씻기 전에 잠시 쉬며 숨을 고르는데 소윤이가 아내에게 물었다.


“엄마. 오늘 아침에 수박 못 먹었네?”

“그러게”

“엄마가 다시 냉장고에 넣었어여?”

“어”

“왜 넣었어여?”

“꺼내 놓으면 쉬니까”


소윤이는 비염 때문에 찬 음식을 안 먹고 있다. 덕분에 수박도 못 먹게 되어서 아쉬운 대로 미지근한 수박을 만들고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자기 전에 냉장고에 있는 수박을 식탁에 꺼내 놓는 거다. 어제도 내가 수박을 꺼내 놨는데, 처치홈스쿨에 가는 날 아침은 바빠도 너무 바쁘니 수박 먹을 여유가 없었나 보다. 아내가 다시 냉장고에 넣었는데 소윤이는 미지근한 수박이 없어서 못 먹는 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아내에게 다소 따지듯 묻는 말투가 거슬렸지만, 소윤이의 아쉬운 마음을 헤아려 모르는 척 넘어갔다.


아내가 아이들을 씻기려고 차례대로 불렀는데 소윤이를 먼저 불렀다. 소윤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각 팬티를 입고 싶다고 했다. 내가 베란다에 있는 건조기에 가 봤지만 찾기가 어려웠다.


“소윤아. 일단 다른 거 입고 이따 엄마가 찾아볼게”


소윤이는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삐죽거리다가 눈물을 글썽였다. 아내가 지친 목소리로 왜 그러는 거냐며 소윤이에게 얘기하는 와중에 내가 아내의 말을 낚아챘다. 내가 보기에는 별것도 아닌 일에 눈물까지 흘리는 소윤이에게 순간적으로 화가 나기도 했고, 수박 사건(?)부터 시작된 ‘아내를 향한 미묘하게 버릇없는 태도’도 마음에 걸렸다.


소윤이를 불러서 호되게 야단을 쳤다. 소윤이는 눈물을 쏙 뺐다. 그러고 나서 다시 아내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내가 소윤이의 마음을 토닥였을지 아니면 내 야단의 정당성(?)을 다시 한번 가르쳤을지는 모르겠다. 소윤이를 위로해 주길 바라긴 했다. 나도 마음이 착잡했다. 너무 호되게 혼냈나 싶기도 했고, 약간 감정이 섞인 것 같기도 했고, 가뜩이나 얼마 못 보는데 좋게 얘기할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축구하고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초코송이 두 개와 마가레트 하나를 샀다. 초코송이는 소윤이와 시윤이, 마가레트는 서윤이 것이었다. 오늘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내일 아침에라도 보고 오늘의 우울했던 마음을 지우라는 바람이 담긴 선물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서윤이가 가장 먼저 선물을 봤다. 서윤이는 거실에 누워 있었다.


“뭐야?”

“깨서 나왔어”


나온 지 얼마 안 됐는지 서윤이가 약간 쌩쌩했다. 서윤이는 내 손에 들린 과자에 관심을 보였다.


“아빠아. 이거 무에여어?”

“아, 이거 선물. 이건 언니, 오빠꺼. 이건 서윤이꺼”

“이거 느으은 서니 꺼에여어?”

“어, 서윤이꺼. 내일 아침에 아침 먹고 먹어. 알았지?”

“아침 먹구우우?”

“아, 아침 먹고 시간 있으면. 아니면 처치홈스쿨 갔다 와서. 알았지?”


서윤이는 구별된 자기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 좋아했다. 그나저나 서윤이는 다시 들어갈 생각을 안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 눈앞에 엄마가 보이는데 자기 혼자 방에 들어갔던 적은 거의 없다. 서윤이는 거실에 누워 있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애초에 거실로 탈출한 게 늦었던 데다가 서윤이까지 깨서 나오는 바람에 뭘 하지 못했던 아내는, 뒤늦게 내일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 사이 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아내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여보. 얼마나 더 걸려?”

“한 20-30분?”


마침 서윤이도 거실에서 자고 있으니 나도 서윤이 옆에 누워서 아내를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밝은 불빛과 시끄러운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크게 뻗어서 자는 서윤이 옆에 누워서 손과 발, 볼을 만지작거렸다. 모든 근심과 피로가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너무 거칠게 만지면 잠결에도 내 손을 피해 도망가니까, 멀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살살 만지면서 아내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