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0(금)
새벽에 자다 깨서 보니 서윤이가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어제 서윤이 옆에 누워서 아내를 기다리다가 그대로 잠들었나 보다. 아내는 서윤이와 내가 너무 곤히 자니까 깨우지 않았던 것 같고. 내 곁에는 아내가 놓고 간 이불도 있었다. 서윤이도 곤히 잤다. 다시 잠을 청했고 또 잠에서 깼다. 그때는 서윤이가 옆에 없었다. 아빠를 버리고 엄마를 찾아 떠난 모양이었다.
아침에는 세 녀석이 모두 깨서 나왔다. 알람 소리를 듣고 깬 건 아니지만 그 무렵 쯤에 모두 나왔다. 나도 바로 출근 준비를 하지 않고 아이들과 시간을 조금 보냈다. 그래 봐야 한 20분 정도였지만 메마른 출근 시간에 꽃이 핀 듯한 느낌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도 처치홈스쿨에 갔다. 오늘은 오후에 야외 활동을 하러 간다고 했다. 근처에 있는 숲 체험장에 간다고 했다. 숲을 해설해 주시는 분도 계셨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 타기 전에 읊어주는 유의사항처럼 형식적인 게 아니라, 정성과 진심이 느껴지는 설명이었다고 했다. 도심이긴 했지만 너무 관리한 티가 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도 좋았고. 아이들도 엄마 선생님들도 모두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아이들을 어떻게든 자연 속에서 기르고 싶은 이유다. 소윤이가 벌써 여덟 살이 되었다는 걸 인지할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너무 열심히 논 덕분에 집에 와서는 다들 피곤과의 사투를 벌였다. 아내는 퇴근하는 나에게 돈까스를 찾아서 와 달라고 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았다.
‘저녁 만들 힘이 남아 있지 않구나’
아내는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아이들을 모두 씻겼다. 빠른 퇴근을 위한 아내의 의지가 느껴졌다. 금요일을 금요일답게(?) 보내고픈 간절함의 표현이기도 했다. 정작 퇴근 시간이 엄청 당겨지지는 않았다. 저녁을 좀 오래 먹기도 했고, 양치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오히려 더 늘어지기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숲에서 있었던 일을 이것저것 전해줬다. 어떤 풀이 있었는데 그게 이름은 뭐고 왜 그런 이름이었는지, 어떤 곤충이 있었는데 뭘 먹고 살고 이름은 무엇인지, 어떤 벌레가 있었는데 그게 이름은 뭐고 어떻게 사는지. 애들이 말하는 모습만 봐도 얼마나 재밌었는지가 느껴졌는데, 아이들과 함께 있었던 아내가 보기에도 정말 좋아했다고 했다. 거기에 유익하기까지 했다니. 자연은 곁에 두기만 해도 누리는 게 많긴 하다.
“여보. 오늘은 커피를 좀 마셔야겠다”
마치 평일에는 카페인을 멀리 하고 주말이나 되어야 커피를 마시는 사람처럼 얘기했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평일에도 마시는 날이 있지만, 오늘만큼은 당당하게(?) ‘떳떳하게 마실 만한 자격이 있으니 마시겠다’는 마음으로 마신다는 뜻이었다.
“그럼 내가 사 올게”
아내가 애들을 재우는 동안 나가서 사 오기로 했다. 아내는 자기가 안 나오면 깨워 달라는 부탁도 남겼다. 커피를 찾아 왔는데도 역시나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 요즘은 당연한 모습이었다. 조금 시간을 보내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두어 차례 더 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피곤하다는 얘기기도 했다. 그냥 포기하고 내 할 일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는데 그때 깨서 나왔다.
아내가 오늘의 서사를 자세히는 아니고 줄거리 소개 정도로 들려줬다. 아침(나가기 전)에도 절정이 있었고 오후(집에 돌아와서)에도 절정이 있었다고 했다. 그저 감정의 대립 정도가 아니다. 대부분. 혼자 방에 들어가서 베개를 적시는 눈물의 기도(혹은 탄식)를 할 정도로 절박하다(그 순간에는).
시윤이는 말로는 뭐든 할 것처럼 ‘악행’을 일삼는다. 말로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이거(가위)로 이거(배즙) 잘라야지”
라고 얘기하면서 가위와 배즙을 들기는 하지만 막상 진짜 자르지는 못한다.
“이거(그릇) 던져서 깨뜨려야지”
라고 하지만, 막상 진짜 던지지는 못한다.
“엄마 다 젖게 할 거야”
라면서 샤워기를 들지만 진짜 뿌리지는 못하고.
마음과 의도는 누구나 품는다. 그걸 진짜 실행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거다. 다행히(?) 시윤이는 그 선을 넘지는 못한다. 더군다나 파도의 고점을 지났더니 아내에게 편지를 쓱 건넸다고 했다.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거였다.
“엄마 아까 그렇게 해서 죄송해요”
시윤이가 자기 잘못을 알고 뉘우치는 것도, 용기 내서 먼저 사과하는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내와 시윤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방 문이 벌컥 열리고 서윤이가 나왔다. 이미 재우는데 많은 시간을 쓴 아내가 허탈한 듯 한숨을 쉬었다. 순간, 즉흥적으로 ‘자다 깨서 나오면 혼자 들어가야 한다는 걸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윤이도 금방 수긍할 거라는 근거없는 확신도 있었다. 아내가 집에 없을 때는 깨서 나왔다가도 혼자 들어가서 자기도 했다. 잘 설명하면 금방 이해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서윤아. 아까 엄마가 재워줬지? 이제 자다 깨서 나오면 서윤이 혼자 들어가서 자는 거야. 알았지?”
그걸 시작으로 한 시간이나 씨름을 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다. 서윤이는 생각보다 강력하게 엄마를 원했다. 일단 시작을 했고 처음이니 받아주지 않고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나도 강력한 서윤이의 요구를 외면했다. 중간에 아내가 나가는 연기(실제로는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까지 했지만 서윤이는 계속 혼자서는 들어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꿩 대신 닭은 필요없다더니 아빠라도 같이 들어가자며 매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더라면, 서윤이가 그렇게 거부할 줄 알았더라면 시작을 안 했을 텐데, 아무래도 너무 쉽게 생각했다.
한 시간 동안 눕히고 나오고를 반복하고 나서야 혼자 잠들었다. 애초에 엄마 대신 아빠와 들어가서 자자고 했으면 좀 수월했으려나. 아무튼 아이들 재우는 데 이미 많은 진을 쏟은 아내를 위한 일이긴 했지만 서윤이가 안쓰럽기도 했다. 미안하지는 않았는데 그냥 안쓰러웠다.
‘으이그. 그냥 좀 들어가서 자지’
딱 이런 느낌이었다. 사실 아내와 내가 이렇게 만든 건데. 깨서 나오면 그거 예쁘다고 같이 데리고 놀고 그랬으면서.
다음에 또 깨서 나오면 어떻게 해야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