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지만 즐거웠던 네 시간의 여정

22.05.21(토)

by 어깨아빠

어젯밤에 아내에게 갑작스럽게 제안했다.


“여보. 우리 내일 동물원 갈까?”


난 어렸을 때 동물원을 좋아했다. 집에서 가까워서 자주 가기도 했다. 크고 나서, 정확히는 자녀를 낳고 나서는 동물원이 동물에게 얼마나 가혹한 환경인지 배우게 됐다. 그걸 알고 나니 선뜻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가 어려웠다. 시윤이가 조리원에 있을 때 소윤이와 둘이 간 게 마지막이었다(몇 년 전에 소윤이, 시윤이와 다른 동물원에 간 적이 있지만 그건 동물원에 가려고 간 게 아니라 공원에 가 보니 동물원이 있었다).


여러모로 ‘지금’이 아니면 동물원에 가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조금 지나면 날씨가 너무 더워질 테고. 또 우리 가족의 앞날을 생각해 봐도 쉽지 않을 일이었다. 인간의 흥미를 위해 가둬 놓은 동물을 보러 가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과 별개로 ‘동물원’이라는 곳이 유발할 피로에 관한 두려움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래도 놀이공원보다는 좀 낫겠지’


라며 마음을 다스렸다. 아침에 소윤이와 시윤이를 불러서 따로 설명도 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가 여러 번 얘기한 것처럼 동물원이 썩 좋은 곳은 아니야. 원래 동물들은 자연 속에서 살라고 지어졌는데 사람들이 재밌으려고 엄청 좁은 곳에 가둔 거잖아. 동물들이 얼마나 힘들겠어. 근데 그걸 보고 즐거워하는 게 그리 좋은 행동도 아니고. 근데 오늘 동물원에 왜 가는 거냐면, 그래도 너희가 실제로 살아 있는 동물을 보려면 동물원 말고는 없으니까. 그래서 가는 거야. 대신에 가서 동물들 보면서 재밌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얼마나 불쌍할까, 얼마나 나가고 싶을까 이런 생각도 같이 해”


이게 맞는 교육인지 확신은 없다. 게다가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한다고 해도, 결국 보러 간 거면 수많은 앞의 설명이 과연 설득력을 가질지도 의문이었고. 그래도 일단 설명은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빠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그저 동물원에 간다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 좋아했다. 동물원까지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렸지만 누구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일단 날씨가 너무 좋았다. 짜증과 분노의 불씨를 잠재우기에 충분한 날씨였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코끼리 열차를 타러 가는 과정이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일단 짐이 제법 있었고 무거운 유모차도 있었고 무엇보다 서윤이도 있었다. 이 모든 걸 가지고 올라야 하는 계단도 있었다. 유모차에 실었던 짐을 꺼내서 아내가 들고 유모차는 접고 서윤이는 등산용 캐리어로 업었다. 등산용 캐리어를 거기서부터 쓸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래도 나 같은 아빠들이 많아서 외롭지 않았다. 다들 유모차 접고 아이와 짐을 나눠 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역시 육아인에게 최고의 위로는 ‘나만 그러는 건 아니다’라는 걸 확인하는 거다.


그렇게 시작한 동물원 여정은 거의 네 시간이 걸렸다. 이상 행동을 하는 동물이 너무 많아서 보는 내내 씁쓸하고 불쌍하긴 했지만, 그것만 빼면 즐거운 시간이었다. 서윤이는 유모차에 태우기도 하고 등산용 캐리어에 태우기도 했다. 등산용 캐리어에 서윤이를 싣고 걸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 십수 년 전 군대에서 행군할 때의 딱 그 느낌이었다. 어깨가 가장 아팠다.


‘이걸 메고 등산을 할 수 있기는 한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한편으로는 '동물을 향한 죄책감도 없고 더 웅장한 자연에 파묻힐 수 있는 등산이 더 좋겠다'는 불나방처럼 어리석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서윤이가 등산용 캐리어에 업힐 때마다 엄청 좋아했다. 그걸 연료 삼아 내 어깨를 바쳤다. 그나마 본격적으로 덥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꼬박 네 시간을 걸었으니 무척 힘들었을 거다. 다 보고 나갈 때쯤에는 다들 녹초가 되었다. 각오는 하고 왔지만 역시나 만만하지 않은 곳이었다. 대신 그 모든 고단함을 묻고도 남을 만큼 좋은 시간이었다.


지난번 놀이공원에 왔을 때 갔던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하필 오늘 단축 영업이었다. 급히 근처의 갈 만한 식당을 찾았다. 오리고기와 함께 백반을 파는 식당이라고 해서 갔는데 주말에는 백반이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전하는 젊은 남자분과 아주머니들이 너무 친절하셨다. 오리고기를 먹기로 하고 자리에 앉았다. 편의점 앞 파라솔 자리에 있을 법한 플라스틱 탁자와 의자가 있었다. 유원지 근처에 있는 백숙 가게 같은 분위기의, 50-60대 어르신들이나 올 법한 식당이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와서 먹기에 그다지 적당해 보이는 곳은 아니었지만, 나나 아내나 그런 걸 꽤 잘 무릅쓰는 편이다. 사실 난 그런 곳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 일하시는 분들의 친절함에 매료되었던 아내와 나는, 음식 맛에 또 한 번 무장해제되었다. 너무 맛있었다. 밑반찬부터 고기까지. 서윤이는 반찬으로 나온 미역국을 몇 그릇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마찬가지였고, 고기와 친하지 않은 아내도 ‘맛있다’는 나의 감탄에 깊이 공감했다. 다들 배가 고프기도 했다. 그렇게 걸었으니.


집에 오는 길은 그리 막히지 않아서 갈 때보다는 덜 걸렸다. 그래도 제법 늦은 시간이긴 했다. 겨울이었으면 그냥 간단히 씻겨서 재웠을 텐데, 이제 그러기 어려운 계절이 되었다. 머리도 감기고 샤워도 시켰다. 이때부터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와. 여보. 장난 아니다. 피곤하긴 하네”

“그러니까. 난 아까 나올 때부터 피곤하더라”


그렇게 묵직한 피로도 일단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일시적으로 사라진다. 그 틈을 타서 아내와 나는 영화를 봤다. 지금으로서는 영화를 보는 게 아내와 내가 주말을 즐기는 최선의 방법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서윤이가 깨서 나왔다. 오늘은 아내가 데리고 들어갔다. 아내도 마침 들어가서 자려고 하던 참이었다.


서윤아. 오해하지 마. 너 불쌍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엄마도 어차피 들어가려고 했어. 그러니까 다음에는 깨서 나와도 혼자 들어가는 거다? 오늘은 봐 준 게 아니라 엄마도 들어가려고 했어. 진짜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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