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5(수)
아내는 처치홈스쿨이 없는 날이었지만 목장 모임을 하러 교회에 가야 하는 날이었다. 그것도 꽤 이른 시간에 가야 해서 처치홈스쿨 하는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다. 가방을 메고 길을 걷는 서윤이 사진을 받았다. 실제로는 어땠을지 몰라도 그런 사진을 찍어서 보낼 정도의 여유(몸도 마음도)는 있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됐다.
그러고 나서 한 네 시간 뒤에 또 하나의 사진을 받았다. 사진 속에는 (내) 엄마도 있었다.
‘응? 뭐지? 엄마 만났나? 엄마가 오셨나?’
라고 생각하며 자세히 봤더니, 엄마가 오신 게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이 간 거였다. 엄마네 동네에 있는 고깃집이었다. 아이 셋을 데리고도 동으로 서로 날아다니는 아내의 기동력에 새삼 놀랐다. 목장 모임이 끝나고 (내) 동생 집에 놀러 갈까 해서 연락을 했는데 전화를 안 받았다고 했다. 혹시 엄마와 같이 있나 싶어서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가, 갑작스럽게 엄마 집으로 갔다고 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엄청 좋았을 거다. 예상하지도 않은 할머니를 만난 데다가 너무 좋아하는 갈비(그 집 갈비를 유독 좋아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도 아내도)까지 먹었으니.
서윤이는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내의에 가까운 옷이었다.
“서윤이 혼자 한여름”
“교회에서 자기가 정수기 물 받는다고 하다가 옷이 다 젖음^^”
아내의 ^^ 웃음 이모티콘은 반어적 표현이었다. 아니면 힘들 때 웃는 일류가 되기 위한 의지를 담은 건가. 당시에 아내가 어떻게 반응했을지는 모르겠다. 허허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지도 모르고, 끓는 마음을 애써 부여잡으며 어금니를 꽉 물고 ‘음므그 흔드그 흐찌’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면 잊히는 시간이지만, 그 순간에는 그런 생각을 못 할 때도 많다.
“난 오늘 축구야. 알고 있지?”
“잊고 있었어 ㅋㅋㅋㅋㅋㅋ”
이번의 ㅋㅋㅋㅋㅋ 는 허탈함과 막막함의 웃음이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한 번 더 말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집으로 안 가고 내 사무실로 왔다. 퇴근 시간에 거의 딱 맞춰서 도착했다. 그 시간에 집에 가서 저녁 차려 먹일 생각을 하니 막막해서(물론 축구하러 가는 내가 아닌 아내의 막막함이다) 사무실 근처에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과 가서 먹을 만한 곳이 많지는 않아서, 음식이나 맛보다는 장소의 적합성을 기준으로 골랐다.
“애들은 배가 별로 안 고플 거야. 점심도 늦게 먹은 데다가 갈비 먹었고, 어머니 집에서도 간식 먹고 그랬거든”
아내는 설렁탕을 두 개만 시켜도 되겠다고 했다. 양은 둘째 치고 아무리 아이 포함이라고 해도 다섯 명이 들어가서 두 개를 시키는 건, 어디를 가든 눈치가 보인다.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 개를 시켰다.
“여보. 두 개 시켰으면 택도 없었겠는데?”
“그러니까. 잘 먹네”
두 개를 고민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잘 먹었다. 국물이 맛있다면서 그릇째 들고 들이켜기도 했다. 나의 ‘음식량 조절 센서’가 작동하며 내 숟가락질의 속도를 제어했다. 두 개 시켰으면 난 거의 굶는 수준이었을 거다. 사장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손님이 없고 한산해서 굉장히 편안하게 밥을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그리고 서윤이도 이색적인(?) 저녁 식사에 한껏 기분이 좋았다.
집에 와서는 옷만 갈아입고 바로 다시 나왔다. 당연히 나 혼자. 아내와 아이들, 아니 아내에게 가혹한 시간을 선사하는 게 매주 미안하다. 진심이다. 미안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축구를 끝내고 집에 왔을 때는 불이 다 꺼져 있었다. 안방 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가 보낸 메시지가 왔다.
“좀 전에 서윤이 깨고 애들은 그때까지 안 잠. 지금은 거의 잠든 거 같은데”
그 시간까지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재우고 나왔다가 서윤이가 깨서 다시 들어갔다는 말이었다. 시윤이는 차에서 늦은 낮잠을 자는 바람에 잠이 오지 않았고, 혼자 깨어 있으면 심심하니까 자꾸 소윤이한테 말을 걸고 장난을 쳤다고 했다.
아내의 ‘지금은 거의 잠든 거 같은데’라는 말은, 자기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나 보다. 금방 나올 것처럼 메시지를 보낸 아내는, 소식이 없었다. 푹 자고 한참 뒤에 나왔다. 자러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에.
잠시 후에는 소윤이가 깨서 나왔고, 서윤이도 다시 깨서 따라 나왔다. 엄마와 함께 들어가겠다는 서윤이와 아닌 밤중에 밀고 당기기를 시작했다. 아내와 나도 곧 들어가려던 참이긴 했지만, 서윤이의 경험(자다 깨면 혼자 들어가는 것을 깨닫는) 누적 차원에서 일부러 혼자 들어가게 했다. 서윤이는 당연히 거부하며 펑펑 울기도 하고, 사정도 하고 그랬다. 가뜩이나 사라져 가는 아내의 육아 퇴근 후 시간을 위해, 마음을 굳세게 먹고 서윤이를 상대했다.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금방 끝났다.
아니, 서윤아. 잘 생각해 봐. 엄마는 이미 널 재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썼어. 일단 처음에 재우러 들어가면 1-2시간 기본이지. 그렇게 겨우 나오면 엄마에게 남은 시간 또한 1-2시간 남짓이야. 그런데 그걸 또 깨서 나와가지고는 엄마에게 재워 달라고 하는 것도 일단 너무 하잖니? 그래도 엄마가 자비로운 마음으로 다시 함께 들어갔지? 다시 널 재우고 나오면, 그때는 이미 오늘이 오늘이 아니야. 오늘은 이미 어제가 되었고 엄마는 갑자기 내일로 오게 된 거야. 그런데 그때 또 깨서 또 엄마한테 또 재워 달라고 또 그런다고 또? 벼룩의 간을 내어 먹어도 이것만큼 야박하지는 않겠다, 이 녀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