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로 때우고 가시를 바르는 삶

22.05.24(화)

by 어깨아빠

어제 장모님이 주신 반찬이 있어서 아내의 반찬 고민과 수고가 좀 덜했겠지만, 그래도 처치홈스쿨 가는 날 아침은 바쁘다. 언제나. 전쟁처럼.


“약 먹기 위해 토마토 하나 먹었음”

“밥 먹을 시간은 없었고?”


아내의 아침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대화였다. 애들 밥 차려 주고 나면 밥 못 먹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약 때문에 뭐라도 먹어서 다행이었다. 심지어 나의 마지막 물음에 관한 답은 6시간 뒤에나 왔다. 중간에 서윤이 재울 때.


오늘도 아내와 아이들의 귀가가 늦은 날이었다. 나의 퇴근 시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시간에 집에 도착했고, 아내는 저녁 준비에 열심이었다. 불고기와 갈치구이였다. 불 앞에 서서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가 너무 피곤해 보였다.


“여보. 내가 생선 구울게. 가서 좀 쉬어”

“아니야. 괜찮아”

“왜. 가서 좀 쉬어”

“쉬는 게 쉬는 게 아닐 거 같아”

“에이. 그래도 애들 잘 놀고 있잖아”

“괜찮아. 그냥 저녁 준비하는 게 쉬는 거야”


어떤 심정인지 안다(난 자주 겪어보지 않았지만 매일 겪는 아내에게 들어서 안다). 그때라도 잠시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싶은, 24시간 ‘엄마’로 살아야 하는 아내의 소박한 해방 욕구다. 아이들도 이쯤 되면 피곤할 텐데 항상 바쁘다. 물론 노느라 바쁘다. 저녁 준비가 다 되고 ‘이제 정리하자’ 소리가 들릴 때까지 꽉꽉 채워서 논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식사에서 생선 가시를 바르는 사람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뭔가 챙겨 주면서 자기 입에도 밥 넣는 걸 잘 못하는 아내가, 생선까지 바르며 식사를 제대로 할 리가 만무하다. 삼치나 고등어는 내가 생선 바르는 걸 맡으려고 하는데, 갈치는 왠지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갈치는 수학 공식처럼 어느 정도 정형화된 순서가 있는데, 난 그걸 모른다. 아내는 능숙하게 가시를 뽑아내고, 살만 골라서 세 자녀와 남편에게 나눠줬다. 아내가 내 몫으로 준 걸 나는 그대로 서윤이에게 넘겼다. 그렇게라도 해야 아내에게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긴다.


생선은 다 좋다. 맛도 좋고 영양도 좋고 아이들도 좋아하고. 다만 먹고 나면 냄새가 잘 안 사라진다. 특히 서윤이처럼 양손에 범벅을 하고 먹으면 더 그렇다. 저녁 먹고 내가 애들을 씻겼는데, 아내가 서윤이를 데리고 가서 따로 한 번 더 씻겼다. 왜 아빠(나)와 씻으면 시간이 눈에 띄게 조금밖에 안 걸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윤이는 오늘도 뭔가 만들었다면서 보여줬다. 색종이로 지갑처럼 생긴 걸 접었는데, 뭘 보고 만든 게 아니라 자기가 생각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볼 때마다 놀랍다. 그냥 막무가내로 접는 게 아니라 모양이나 구조가 제법 정교하다. 보고 만들어도 못 만드는 나 같은 사람과는 확실히 다르다. ‘소윤이에게 손재주를 재능으로 주신 건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정말 신기하고 놀라웠는데, 너무 피곤하고 진이 다 빠지는 시간이라 마음만큼 표현을 못 했다.


아내는 오늘도 당연히 잠들었다. 전화를 세 번이나 하고서야 깨서 나왔다.


“여보. 나한테 처음 전화 한 건가?”


한참 동안 비몽사몽이다.


지난번에 손목이 아파서 한의원에 다녀온 아내가, 얼마 전부터는 어깨가 아프다고 했다. 오늘은 아예 올리기가 어렵다고 했다. 잠을 이겨내고 나온 아내를 앞에 앉히고 안마를 했다. 커피가 쓰지 않고 안마가 시원하면 어른이 된 거라고 그랬던가. 아내는 몸 어디를 주물러도 시원하고 물리치료보다 낫다면서 만족스러워했다. 그래도 내 눈에는 아직 젊어 보이니 괜찮은데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젊음’이라는 게 완전히 소멸되고 없을 때, 여기저기 상하고 낡은 몸을 두드리는 아내를 보면 얼마나 속이 상할까.


사진 찍고 나면 둘(아내와 나) 다 늙었네 어쩌네 해도, 그래도 아직은 미천하게나마 젊음에 발을 걸치고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