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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3(월)

by 어깨아빠

아내가 낮에 장모님 댁에 갈지 말지를 고민했다. 아내의 올케언니(이자 친구)가 만나자고 했는데, 처치홈스쿨 가기 전날이라 집에서 좀 차분히 쉬며(쉬는 게 쉬는 게 아니겠지만)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움직일 수 있는 날이 없긴 하다. 화, 목, 금요일에 처치홈스쿨을 하니까 월, 수요일 모두 준비하는 날이 되는 거다. 일단 자고 일어나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내가 바로 장모님 댁으로 퇴근을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방법도 후보였다.


“갔다 와야겠다. 이렇게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아”


낮에 장모님께 아이들을 맡길 건지, 퇴근하는 나에게 보낼 건지는 조금 더 있다가 결정하겠다고 했다. 퇴근하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어떻게 할 거야?”

“여보. 여기로 와”

“아, 그렇게 하기로 했어? 알았어”


바로 장모님 댁으로 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공원에서 놀다가 들어가려던 참이라고 했다. 내가 먼저 도착했다. 집에는 장모님만 계셨고 금방 온다던 아내와 아이들은 생각보다 늦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공원에서 집까지 올 때, 지난번처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왔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왔다. 소윤이의 얼굴에 ‘힘듦’과 ‘신남’이 모두 드러났다. 아내는 유모차를 끌면서 소윤이를 잡아 주느라 꽤 힘든 길이었다고 했고. 형님네 식구도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샤워를 했다. 장모님이 해 주셨다. 저녁도 미리 준비해 주셨다. 형님(아내 오빠)은 조카를 데리고 먼저 집으로 갔다. 아내에게 얼른 나가라고 했는데 결국 애들 머리도 말리고, 밥도 다 먹을 때까지 나가지 않았다(아니면 못 나간 건가). 결국 우리(나와 아이들)보다 조금 전에 나갔다.


아내와 올케언니가 나가고 장인어른이 퇴근하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윤이는 고농축 애교를 선사했다. 처치홈스쿨에서 배운 율동을 할아버지 앞에서 선보였다. 아빠인 내가 봐도 세상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는 느낌인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면 오죽할까 싶었다. 서윤이는 막내 손주로서의 밥값을 확실히 했다.


난 저녁으로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집에 오는 길에 사려고 했는데 아내와 아내의 올케언니(라고 하니까 꼭 남을 이야기하는 것 같네)가 거기 있다고 했다. 원래 좀 더 괜찮은(?) 곳에서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전화도 안 받고 그래서 그냥 ‘대화’에 의의를 두고 햄버거 가게에 갔다고 했다. 거기에서 나와서도 카페에 잠깐 있다가 차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사실 차가 생각보다 아늑하고 조용해서 좋긴 하다. 차가 생긴다는 건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니라 또 다른 나만의 공간이 생기는 거라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십분 공감을 한다. 아내가 미리 내 햄버거를 주문해서 받아 놨다가 나에게 전달해 줬다.


“아빠. 엄마랑 숙모 여기 있어여?”

“어”

“왜 여기 계신대여?”

“그냥 여기서 얘기하시나 봐”

“엄마 보고 싶다”


셋 모두 엄마가 보고 싶다고 난리였다. 불과 30분 전까지, 하루 종일 같이 있었는데.


소윤이는 안 자고, 시윤이와 서윤이는 자고. 이렇게 예상했는데 틀렸다. 셋 다 안 잤다. 놀라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서윤이가 잠들지 않은 게 신기했다. 뒤에서 열심히 떠들고 웃는 언니와 오빠의 소리를 듣느라 그랬나 보다. 보지는 못하고 그저 소리로만 들어야 하니 답답할 만도 한데, 언니와 오빠의 웃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같이 따라 웃으며 즐거워했다.


장인어른 댁에서 출발하기 전에 모든 준비를 끝내고 왔다. 서윤이가 잠들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재밌는 이야기도 좀 해 주고, 할 얘기가 많을 애들 얘기도 좀 들어 주고 그러면 좋으련만. 그러기에는 이미 모든 게 소진된 시간이다. 오늘은 나도 한 30분 자다가 깼다. 회장님 앞에서 술 마시는 말단 사원처럼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얼굴로 떨어지는 휴대폰도 내려앉는 눈꺼풀을 막지 못했다.


아내가 돌아오고 얼마 안 됐을 때 서윤이도 깨서 나왔다. 아내는 내일 처치홈스쿨에 갈 준비를 조금 더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서윤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구차한 설명과 함께.


“서윤아. 원래 깨서 나오면 서윤이 혼자 들어가는 거 알지? 오늘은 아빠랑 같이 들어가자? 원래는 서윤이 혼자 들어가야 돼. 알았지?”


서윤이도 처음에는 (꿩 대신) 닭(나)은 싫다면서 거부하다가 혼자 들어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그게 낫다고 생각했는지 마음을 바꿨다.


잠이 안 왔다. 서윤이는 눕자마자 잠들었다. 잠든 서윤이의 손과 발을 잡고 잠을 청해 봤지만 쉬이 잠들지 못했다. 결국 아내가 들어올 때까지 깨어 있었다. 아내가 들어오고 나서 서윤이를 원래 서윤이 자리에 눕혔다. 서윤이 대신 아내를 옆에 두고 다시 잠을 청했다.


왜 잠을 못 자냐고 하면서 재워 줄 것처럼 얘기하던 아내는, 눕자마자 잠들었다. 서윤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