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1(수)
예상대로였다. 서윤이는 안 보였고 거실은 이미 소란스러웠다. 아내는 여전히 곤히 자고 있었다. 고요한 방과 다르게 거실은 이미 한창이었다. 뭐가 한창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랬다. 아이들은 활기가 넘쳤다. 동생네 딸까지 합류하니, 뭔가 다복한 느낌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진짜 할머니, 할아버지 같기도 했고.
소윤이는 오늘도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싶다고 했다. 진짜 타고 싶기도 했겠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 고모와 고모부에게 보여 주고 싶기도 했을 거다.
“시간이나 상황 봐서 되면. 못 갈 수도 있고”
소윤이 입장에서는 익숙할 답변이었다. 어쩔 수 없다. 우리 가족끼리 있으면 모를까 모든 식구가 소윤이의 인라인스케이트에 초점을 맞추고 움직이는 건 어려우니까. 소윤이도 되면 타는 거고 안 되면 다음에 타야 하는 거라는 걸 알지만, 계속 확인하고 물어봤다.
“아빠. 인라인스케이트 타러 갈 수 있어여?”
집에 있는 시간이 힘들지는 않았다. 자기들끼리 잘 놀거나 어른을 찾아도 아내와 나보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많이 찾았다. 분명히 힘들 이유가 없었는데 왠지 피곤했다. 계속 북적대는 분위기 속에 있어서 그랬던 건지 뭔가 고요함이 그리운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계속 졸리긴 했다. 서윤이 재우면서 한 숨 잘까 하다가 그냥 나왔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서 짐을 모두 챙겨서 나갔다. 점심 먹고 바로 공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갈 계획이었다. 날씨가 꽤 더웠다. 점심을 먹고 공원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늘에 돗자리를 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미 무척 피곤했다. 어제 엄청 늦게 자고 오늘은 엄청 일찍 일어난 후폭풍이었다(소윤이는 여섯 시도 안 돼서 일어났다고 했다).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인라인스케이트를 신은 소윤이는 꼭 누가 강제로 시킨 것처럼 재미없게 인라인스케이트를 탔다. 결국 소윤이는 얼마 안 가서 인라인스케이트를 벗었다. 소윤이가 유독 더위에 약하기도 하다. 더우면 눈에 띄게 활동량이 줄어든다.
시윤이는 무선 조종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서윤이는 이곳저곳을 활보했다. 어른들도 다소 피곤하고 지치는 시간이었다. 날도 덥고. (내) 동생과 아빠는 커피를 사러 갔고, 매제는 조카를 재우느라 유모차를 끌었다. 나와 아내, 엄마는 앉아서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지는 않는지 주시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누군가 얘기했다.
“어? 서윤이 어디 갔지?”
그때만 해도 ‘당장 발견하지 못했을 뿐, 내 가시거리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봤는데 서윤이가 보이지 않았다.
“서윤이 아빠가 데리고 간 거 아니지?”
“아니지”
그제야 다들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던 곳 주변을 둘러보며 급히 발걸음을 떼려던 순간 엄마가 외쳤다.
“서윤아!”
서윤이는 우리가 앉았던 곳에서 5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점점 더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공원에서 계속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발견하면 안내소로 데려다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우리가 그 주인공이 될 뻔했다. 서윤이는 엄마와 아빠와 멀어지는 줄도 모르고 계속 걸어가려던 참이었다. 다행이었다. 이렇게 아이를 잃어버리는구나 싶었다. 어른이 많으니까 ‘누군가 보고 있겠지’라고 방심하다 큰일이 날 뻔했다.
“아우, 서윤아. 그렇게 혼자 걸어가면 어떻게 해”
서윤이에게 푸념 섞인 말을 했지만, 사실 서윤이는 잘못이 없다. 관찰의 의무를 소홀히 한 우리의 책임이다.
거기서 바로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내) 엄마가 저녁도 먹고 가라고 했다. 그냥 가겠다고 했더니 소윤이가 그걸 듣고는 저녁을 먹고 가자며 입을 삐죽거렸다. 이맘때가 위험한 시간이다. 하루의 피로가 누적되어서 끝까지 찼을 때, 이때 까딱 잘못하면 감정을 쏟아내게 된다. 별것 아닌 일에도 입을 삐죽대는 소윤이의 모습에 순간 화를 낼 뻔했다. 다행히 잘 참았고 결국 저녁도 먹고 가기로 했다.
추어탕을 먹었다. 시윤이는 산초가루를 넣은 추어탕 국물도 잘 먹었다. 시윤이의 넓은 식성에 새삼 놀랐다. 어른들도 잘 못 먹는 산초가루를 먹다니. 물론 난 잘 먹는다. 소윤이는 추어탕이 별로인 듯했다. 설렁탕과 누룽지를 많이 먹었다. 서윤이도 누룽지를 잘 먹었다. 그릇째 들고 들이켰다.
저녁 먹고 가려던 계획은 또 수정되었다. 부모님 집에 가서 애들을 씻기기로 했다. 다들 엄청 피곤해서 차에 타면 잘 게 뻔했다. 그 시간에 잠든 아이들을 깨워서 샤워까지 시킬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차라리 출발하기 전에 씻기는 게 나아 보였다. 세 녀석을 차례대로 씻기고 나도 샤워를 했다. 개운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차에 타자마자 고개를 떨궜다. 오늘은 소윤이도 버티지 못하고 잠들었다. 그냥 잠든 것도 아니고 정말 푹 곯아떨어졌다. 셋 모두 집에 도착해서도 깨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깨워야 했다. 소윤이는 이름만 불러도 눈을 번쩍 뜨며 정신을 차렸다. 시윤이는 이름도 부르고 몸도 좀 흔들었더니 겨우 정신을 차렸다. 막 일어나서는 잠투정처럼 짜증도 좀 냈다. 그때 잠깐이었다. 제대로 된 시윤이의 막무가내 짜증은 평일 낮에, 아내만 볼 수 있다.
아이들을 모두 씻겨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한 일 중에 최고로 현명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