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22.05.31(화)

by 어깨아빠

어제 아이들에게 ‘내일’(오늘)의 계획을 얘기했다.


“내일 밤에 공원에 갈까? 가서 인라인스케이트도 타고. 산책도 하고?”


물론 아이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밤에 축구하러 가서 보면 엄마, 아빠와 함께 나와서 노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때마다


‘소윤이, 시윤이도 데리고 나오면 좋겠다’


라고 생각은 했는데, 다음 날이 쉬는 날이어야 실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적당한 날이 언제 올까 벼르고 있었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그 시간쯤이 되면 너무 피곤하다는 게 약간의 걸림돌이었다. 소윤이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피곤해도 평상시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유지하는 데 탁월하기도 하고) 시윤이는 대책이 필요했다.


“시윤아. 내일 처치홈스쿨에 가면 서윤이 낮잠 잘 때 시윤이도 같이 자? 알았지?”


묘안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낮잠을 푹 재우는 게 전부였다. 시윤이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물론 아내와도 사전 협의를 마친 내용이었다. 아이들도 ‘밤에 공원에 가는’ 흔하지 않은 일이 설렜겠지만,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아내와 통화를 하면서 계획을 수정했다. 오늘의 일과를 마친 후의 일정을 ‘공원 방문’이 아니라 ‘부모님(내 엄마, 아빠)댁 방문’으로 바꾸는 게 어떠냐는 얘기가 나왔다. (내) 엄마와 통화를 하고 ‘와도 괜찮다’는 답을 받았다. 목적지가 ‘공원’에서 ‘할머니 집’으로 바뀌긴 했지만 낮잠의 유익함은 여전히 유효한 상태였다. 게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집’이라는 목적지는 무적이었다. 어쩌면 시윤이에게는 더 강력하게 약속을 지켜야 하는 명분(일종의 동기부여)이 생긴 거다.


“시윤이가 자러 올라와서 안 자는 중”

“너무 무리하지는 마”


30분쯤 뒤에 서윤이와 나란히 누워서 곤히 자는 시윤이 사진을 받았다. 공원에 놀러 가는 게 아니라서 낮잠을 안 자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부모님 집에 가는 길에 자도 되고, 그로 인한 늦은 취침은 (내) 엄마가 감당할 테니까. 그래도 어쨌든 크게 애를 쓰지 않고 잠들었다니 다행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을 마치고 바로 부모님 집으로 갔다. 난 집에 차를 두고 혼자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갔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것도 흔하지 않은 일이었고,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더욱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오랜만에 사람 구경(?)도 하고 내 속도대로 걸어 다니니 나름 재밌었다.


동생네도 왔다. 올 때마다 오랜만인 만큼 소윤이와 시윤이도 평소보다 훨씬 기분이 오른 상태였다. 나를 제일 반겨 준 건 서윤이였다. 특유의 촐싹거림과 함께 뛰어오더니 나에게 안겼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각자 재밌게 놀고 있었는지 아주 형식적으로 인사만 했다.


“소윤이, 시윤이. 아빠한테 와서 똑바로 인사하세요”


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나서야 와서 안기기도 하고 그랬다. 내가 갔을 때도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 아직 (내) 아빠는 퇴근 전이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퇴근하면 인사하고 자러 들어가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할머니와 자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언제나 그렇듯 자러 들어간 뒤에도 한참 동안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서윤이는 아내가 재웠다.


“서윤이 바로 자겠지?”

“아마도. 근데 여보도 바로 잠들 거 같은데?”

“안 돼. 오늘은 꼭 나올 거야”


아무리 안 된다고 다짐한들 내려앉는 눈꺼풀을 막을 길이 없다. 잠을 쫓아보겠다며 언제나 이어폰을 들고 들어가지만, 이어폰을 꼽기도 전에 잠드는 날도 있다고 했다. 오늘도 소식이 없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고 아내는 겨우 잠에서 깼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어른들끼리 모여서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나눴다. 동생네 딸(내 조카)은 다섯 시면 일어날 거라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이미 벼르고 잠들었다.


“내일은 엄청 일찍 일어날 거에여”


동생네가 한 방, 소윤이와 시윤이와 (내) 엄마가 한 방, 나와 아내와 서윤이가 한 방에서 잤다. 아빠만 거실에서 혼자 주무시기로 했다. 내일 다섯 시 무렵이면 만남의 광장이 될 거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