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조퇴

22.06.02(목)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이 처치홈스쿨에 가는 날이라 잘 갔는지 안부 문자를 보냈는데 한참 뒤에 답장이 왔다.


“집에 왔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바로 전화를 했다. 예상했던 대로 시윤이와의 문제 때문에 집에 온 거라고 했다. 교회에서는 도저히 얘기도 안 되고 더 이상 뭘 할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집으로 왔다고 했다. 책임감 강한 아내가 맡은 일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니, 보통 상황이 아닌 건 분명했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뭘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아내도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뭘 말하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아내는 여전히 지하 20층인데, 시윤이는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 모습을 전하는 아내의 목소리에서 허탈함과 막막함,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난 여전히 가슴 쿵쾅거리고 진정이 안 되고 화가 나는데 저 녀석은 저렇게 속 좋게 웃고 있다니'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아내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힘들고 별의 별 상황이 다 생겨도 어떻게든 거기서 지지고 볶았던 아내였는데,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뒤에 어떻게 풀었는지, 괜찮아졌는지 자세히 듣지는 못했다. 오후에는 장모님이 오셨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넓은 정원이 있는,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가기 좋아하는 카페에 갔다고 했다. 장인어른도 퇴근하고 오셔서 함께 저녁도 먹었다고 했다. 난 퇴근하고 바로 축구하러 갔다.


축구를 마치고 집에 와서도 시윤이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는 않았다. 아내가 먼저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길래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물어본다고 한들 뾰족한 해결책(?)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내가 그저 푸념하는 것만으로도 뭔가가 풀릴 것 같았으면 어련히 먼저 얘기했을 거다. 아내가 처치홈스쿨을 하다 말고 집에 올 정도였으면, 아내에게는 꽤 큰 일이었을 텐데.


다른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도 아내는 집중을 하지 못했다. 나름 중요한 얘기라 차근차근 설명을 해도 똑같은 걸 또 묻고 그랬다. 피곤하거나 힘들 때 나타나는, 아주 미세하게 신경질적인 아내 특유의 말투와 표정이 나왔다. 오전부터 시윤이와 그런(?) 시간을 보낸 데다가 남편은 축구한답시고 늦게 귀가했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물론 나에게 짜증을 냈다는 건 아니다. 누구나 피곤하고 지치면 누구에게나 친절하기 어려운 것처럼, 아내도 딱 그런 거였다. 자기 전에 결정해야 할 꼭 중요한 얘기만 겨우 끝마쳤다.


아내는 내일도 바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