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3(금)
소윤이가 교회에서 1박 2일로 캠프를 가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가는 건 아니었고, 평소처럼 처치홈스쿨에 갔다가 저녁에 교회에 가야 했다. 오후에는 숲 체험이 있어서(땀이 많이 나서) 아내는 집에 와서 소윤이를 씻기고 교회에 데려다준다고 했다. 아내는 소윤이는 물론이고 시윤이와 서윤이도 샤워를 시켰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을 빼고는 소윤이가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자는 건 처음이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소윤이는 기대와 설렘 속에서도 약간의 긴장을 했다고 했다. 궁금했다. 소윤이가 내일 어떤 소감을 들려줄지. 아내는 처치홈스쿨에 갔다가 집에 와서 아이들을 씻기고, 다시 차에 태워서 소윤이를 데려다줬다. 그러고 나서 다시 집으로 와서 나를 기다렸다.
소윤이만 없는 집이 어색했다. 소윤이는 잘 갔는지, 어땠는지, 기분은 좋았는지 아내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소윤이가 보고 싶었다. 아내와 나, 시윤이, 서윤이는 다시 차를 타고 나왔다. 나는 교회에 가야 했고 아내와 아이들은 장모님, 장인어른 댁에 가야 했다. 한 대의 차로 움직여야 했다. 난 먼저 교회에 내리고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교회에 가는 길에 혹시나 소윤이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 교회 앞으로 지나갔지만, 소윤이 그림자도 안 보였다(내가 가는 교회는 본관, 소윤이가 있는 곳은 별관의 개념이다). 소윤이가 무척 보고 싶었다. 내일도 못 본다고 생각하니 더 보고 싶었다. 그나마 시윤이와 서윤이는 잠깐이라도 봐서 좀 나았는데 소윤이는 아니었다.
아내는 장인어른, 장모님께 아이들을 맡기고 내가 끝날 시간에 맞춰 다시 나를 데리러 왔다. 아내가 타고 간 차는 장인어른께 맡기고 아내는 장인어른의 차를 타고 왔다. 동선이 복잡해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내와 내가 내일 울산에 가야 했다. 그동안 장인어른이 우리 차를 수리해 주신다고 하셨고(직접 하시는 건 아니고 비용을 부담해 주신다는 뜻) 아내와 나는 울산에 갈 때 장인어른의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아무튼 소윤이는 교회에서, 시윤이와 서윤이는 장모님, 장인어른 댁에서, 아내와 나는 우리 집에서 자게 됐다. 아내와 함께 집에 돌아왔는데, 아까 소윤이만 없을 때보다 천 배 정도 더 어색했다. 이토록 고요하고 허전하다니. 중간에 장모님에게 전화가 왔다. 서윤이를 아내가 재우고 왔는데, 자다 깨서 보니 엄마가 없다고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서윤이는 전화기에 대고 서럽게 울며 엄마랑 같이 자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든 달래 보려고 했지만 잘 달래지지 않았다. 이럴 때는 여지를 두지 않고 과감하게 현실을 마주하게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그래, 서윤아. 할머니, 할아버지랑 잘 자. 엄마랑 아빠는 내일모레 갈게. 알았지?”
붙잡고 있어 봐야 더 나아지지 않으니 끊기는 했어도, 너무 서럽게 우니까 안쓰러웠다. 장모님도 적잖이 애를 먹고 계신 것 같았다. 차라리 애들이 자기 전에 아내가 왔어야 했나 싶기도 했다.
아이들이 없는 방에 아내와 둘이 누웠는데 우리 집이 이렇게 넓었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