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는 아니고 오늘'은'

22.06.09(목)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이 처치홈스쿨에 가는 날이었지만 하루 쉬었다. 소윤이는 완전히 회복했지만 관리 차원에서, 또 이참에 아내도 좀 쉬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내가 적극적으로 하루 쉬는 걸 권했다. 집에 있는 게 쉬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의 마음은 있었지만 아침부터 바리바리 짐을 싸고, 점심도 챙겨가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수고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었다.


다행히 소윤이는 완전히 멀쩡하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늦은 오후쯤에 지인의 집에 갔다고 했다. 처치홈스쿨에서 생일 맞은 친구에게 축하를 해 주는 날이었는데 마침 오늘 못 가게 돼서 생일 선물도 전해 줄 겸 갔다고 했다. 내가 아내와 아이들보다 먼저 집에 도착했다.


아내가 밖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올 때까지 차에서 기다렸다. 밖에서 먹자고는 했는데 막상 어디서 먹을지는 정하지 못했다. 일단 좀 걸으면서 생각을 해 보기로 했다. 걷는다고 새로운 곳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얼마 전에 새로 생겼는데 아직 가 보지 않은 중국 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사실 제일 만만하긴 하다. 시윤이가 탕수육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종종 가던 중국 음식점이 폐업한 후로는 걸어서 갈 만한 거리의 새로운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이 꽉 차서 기다려야 했다. 일단 손님이 많으니 안심이 됐다. 가게 앞에서 기다렸는데 소윤이가 시윤이 발에 걸려서 넘어졌다. 양쪽 무릎이 바닥에 긁혔는데 소윤이가 무척 서럽게 울었다. 정말 아팠나 보다. 한참 동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아내와 소윤이는 바로 약국에 가서 밴드를 사 왔다. 밴드가 치료에 도움을 주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주는 면이 있다. 막 아프다고 하다가도 밴드를 붙이면 좀 진정이 된다. 소윤이는 이제 그런 시기를 좀 지나긴 했지만.


음식은 훌륭했다. 다 잘 먹었다. 오늘도 마지막 한 조각의 탕수육까지 알차게 먹는 시윤이를 보니 흐뭇했다. 서윤이도 턱받이를 안 하고 먹었는데 생각보다 옷이 더러워지지 않았다. 무려 짜장면이었는데. 그만큼 서윤이가 장난을 안 쳤다는 얘기기도 했고 손놀림이 보다 정교해졌다는 의미기도 했다. 단단히 각오를 한 것에 비해 닦아주고 주울 것이 없어서 놀랐다.


“시윤아. 오늘도 엄마 말 잘 들었어?”

“오늘도는 아니고 오늘은 그래도 많이 안 듣지는 않았어여”


요즘 퇴근하면 시윤이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시윤이의 반응이 어떤지도 보려고 조사도 일부러 ‘도’라고 붙이는데, 시윤이는 자기가 스스로 ‘은’을 붙여 이실직고를 했다. 시윤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시윤이의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 아이를 셋이나 키우며 8년을 아빠로 살았어도 아직 그런 기술은 터득하지 못했다. 여전히 미숙하다. 탕수육 먹는 시윤이의 모습은 세상에 그렇게 천진난만할 수가 없는데. 난 주로 그런 모습만 보는데.


오늘은 아내와 시윤이의 모습이 최근 며칠과 사뭇 달랐다. 둘 사이에 굉장히 청명한 기류가 흘렀다. 평소에도 어두움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지만, 뭔가 달랐다. 같이 사는 사람은 느낄 수 있는 미묘한 변화였다. 아내가 엄청 애를 쓰고 노력하는 게 느껴졌다. 의지를 내서 표현하는 게 보였지만 그렇다고 억지는 아니었다. 의지와 억지는 마케팅과 사기처럼 한 끗 차이다. 아내가 붙잡고 있는 건 의지였다. 그래서였는지 시윤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도 평소보다 훨씬 밝았다.


“여보. 나 오늘 진짜 노력했다”


스스로 그렇게 자평할 정도로 아내는 나름대로 정말 많이 애를 쓰고 있었다. 아내의 노력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었다. 사랑한다는 말 많이 하고, 먼저 안아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며 배신감을 선사하는 아들을 보면서도 참고 또 참고. 마지막이 가장 힘들 거다. 오늘도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지났다고 했다. 아내는 숱한 배신과 위기 속에서도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밖에서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돌아온 덕분에 퇴근시간은 많이 늦어졌다. 그래도 아내의 노력 덕분에 뭔가 넉넉한 밤이 되었다. 선선한 밤바람에 딱 맞는 그런 기분으로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