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12(주일)
아내의 바지런함 덕분에 아침이 많이 여유로웠다. 아내가 어제 자기 전에 애들 옷도 골라 놓은 덕분에 아내에게 묻지 않고 아이들 옷을 입혔다. 여유로운 시간은 너그러운 태도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선순환 구조의 시작이랄까.
서윤이는 예배 시간 내내 아예 자지 않았다. 교회에 가려고 차를 타자마자 잤던 시절이 벌써부터 아득히 멀어진 기분이다. 그래도 서윤이 정도면 굉장히 얌전한 편인 듯하다. 가만히 있는 건 아니지만 소란스럽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윤이의 적당한 움직임 덕분에 졸음 방지 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예배를 마친 뒤 아내는 식당으로 갔고 난 서윤이와 함께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러 갔다. 둘이 손을 꼭 잡고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흐뭇하던지.
“아빠. 우리 로비에 내려갔다가 엄마랑 아빠 아직 안 끝나서 다시 올라온 거에여”
“아 그랬어? 잘 했네. 이제 가자. 계단 조심히 내려가고”
교회에서 다시 점심을 먹게 되니 굉장히 편하다. 물론 먹는 시간 그 자체는 여전히 정신이 없지만 식당에 가기 위해서 다시 차에 태웠다가 내리는 과정을 안 겪어도 돼서 좋다. 아내는 혹시나 매운 국물이 나올까 봐 아침에 김도 하나 챙겨 왔다. 서윤이는 아직 매운 걸 전혀 못 먹는다. 다행히 미역국이었다. 몇 번을 더 받아왔는지 모르겠다. 다들 어쩜 그리 잘 먹는지.
커피를 사러 가는 길에 아내에게 아주 은밀하게 물어봤다.
“여보. 오늘은 장모님 만나러 갈 계획 없어?”
“글쎄.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왜?”
“아, 혹시 갈 거면 애들도 같이 보낼까 했지. 오늘은 날씨도 너무 덥고 그래서 축구 따라가는 것보다 그게 좋을 거 같아서. 애들도 좋아할 거 같고”
“아, 그럴까? 그럼 엄마한테 한 번 물어봐야겠다”
애들한테 괜한 헛바람을 넣으면 안 되니까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아내가 장모님께 메시지를 보냈는데, 마침 오늘 오후에 교회에서 일이 있다고 하셨다. 아이들에게 공개되지 않았으니 소윤이나 시윤이가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냥 없던 일처럼 묻었다.
서윤이는 집에 오는 길에 잠들었다. 방에 눕혀도 깨지 않았다. 덕분에 서윤이 없는,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조금이나마 확보했다.
“아빠. 오목하자여”
“그래. 가지고 와”
루미큐브와 마찬가지로 오목도 시윤이는 아직 못 둔다. 시윤이에게도 이세돌 기사님 같은 피가 흐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차분히 가르쳐 줬다. 이세돌 기사님의 피는커녕 혈액의 냄새도 안 나는 게 확실했다. 소윤이는 점점 집중력과 실력이 늘고 있다. 사실 나는 성인을 기준으로 삼으면 하수에 불과하다. 소윤이에게 지는 대국이 더 많아지는 날이 코앞이지 않을까 싶다.
“소윤아, 시윤아. 너네한테 선택권을 줄게”
아내가 오목을 두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했다. 나도 무슨 말인가 싶었다.
“아빠랑 축구하러 갈래 아니면 삼촌이랑 숙모 만나러 갈래?”
“삼촌이랑 숙모 보러!”
조금의 고민도 없었다. 축구는 그저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나은’ 정도의 선택지일 거다. 더군다나 요즘은 사촌 동생 보는 재미까지 생겼으니.
아내와 아이들이 나보다 먼저 나갔다.
“여보. 20분이라도 좀 쉬었다가 가”
어디 일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축구하러 갈 건데, 아내의 쉬라는 말이 민망스러웠다. 그래도 정말 쉬는 기분이긴 했다. 축구를 끝내고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아내는 아이들을 씻기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덕분에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소파에 앉아 푹 쉬었다. 돌아올 아이들이 깔끔하게 샤워까지 마친 상태라는 것도 너무 좋았다. 이래서 다들 친정 친정 하나보다.
아내와 아이들은 오자마자 손만 씻고 잘 준비를 했다. 나의 저녁은 아내와 아이들이 먹고 싸 온 돈까스였다.
“여보. 남은 것도 괜찮지?”
“어. 전혀 상관없지”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갔고, 난 거실에 상을 펴고 앉아서 돈까스를 먹었다. 유튜브를 보면서. 종종 있는 일인데 오늘은 유독 만족스러웠다. 밥이 좀 부족해서 냉동실을 열었는데 얼린 밥이 두 공기 있었다. 다시 문을 닫았다. 혹시라도 내일 아침, 아내의 비상식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함부로 손을 대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