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으로 시작해서 가슴에 얼굴을 묻고

22.06.13(월)

by 어깨아빠

아내가 오늘 아침 산책을 나가겠다고 했다. 소윤이가 며칠 전에


“아침에 산책 나가면 기분이 너무 상쾌하고 좋아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요”


라고 말한 걸 듣고 결심했다고 했다. 아침 공기가 주는 특유의 쾌청한 맛이 있다. 그걸 알지만 평소에는 바쁜 일상에 치여 누리기 어렵고 여행 갔을 때 가끔 아이들과 아침에 나가는데, 다들 좋아했다. 소윤이도 좋았나 보다. 작년 여름이었나, 아내가 한참 아이들을 데리고 아침 산책을 나갔던 적도 있었다.


새벽에 비가 세차게 내리길래 ‘산책 못 나가겠네. 소윤이가 많이 실망하겠네’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내가 출근할 때는 비가 그쳤다. 아내와 아이들의 아침 산책은 잘 실행되었는지 궁금했다.


“아침 산책과 아침 식사는 무사히 진행되고 있나요?”


아침도 주먹밥을 싸서 나갈 거라고 했다. 아내는 밖에서 찍은 아이들 사진을 보냈다. 그전에 약간의 위기가 있었다는 얘기도 전해줬다. 위기라는 게 별 게 아니고 시윤이와 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다. ‘위기’라고 표현했다는 건, 아내가 그래도 잘 참고 다뤄서 끝까지 가지 않았다는 얘기였을 테고.


아내는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밖에 있었다. 짜증 섞인 울음과 함께 아파트 복도를 걷는 서윤이 동영상도 받았다.


“밖에서 똥 싸고 집에 오는 내내 이렇게 욺. 집에 와서도 현관에 누워서 울고. 응가 닦고 샤워할 때까지. 으으”

“왜 울어? 똥 싼 거 싫다고?”

“그냥 여러 가지 땡깡이지 뭐. 걷기 싫다, 유모차 타기 싫다, 집에 들어가기 싫다”


요즘 고집부리고 땡깡 피우는 것에 비해 여전히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녀석이다. 막내의 특권을 누리면서.


하루를 다 보내고 퇴근 전에 아내에게 물어봤다.


“오늘 하루는 잘 지냈나요? 아침 산책은 도움이 되었나요?”

“시윤이랑 또 큰일이 있긴 했지만”


아까는 ‘위기’였지만 이번에는 ‘큰일’이었다. 그마저도 순화한 표현이었을 거다. 그래도 그때는 잘 마무리가 된 듯했다. 시윤이 샌들 사는 것 때문에 아내와 카톡을 계속 주고받았는데, 아내에게서 어두운(?) 기운을 많이 느끼지는 않았다. 위기의 순간과 큰일을 겪긴 했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퇴근해서 집으로 가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오늘 저녁 준비를 못 했어요. 여보가 오는 길에 사 와야 될 거 같아요”

“그래. 알았어. 목소리는 왜 그래?”

“그냥. 여보. 내가 000에 주문해 놓을 테니까 찾아와요”


아내 목소리가 이상했다. 그냥 좀 우울한 정도가 아니라 누가 들어도 방금 전까지 막 운 사람의 목소리였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 여러 가지 생각도 했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아내와 시윤이의 문제로 맡겨 둬도 괜찮은 걸까.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나. 시윤이와 이야기를 해야 하나’


복잡한 머리가 정리되기 전에 집에 도착했다. 하긴 지난번 울산 갈 때처럼 아홉 시간이 걸렸다고 해도 정리가 됐을까 싶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내가 와서 안겼고,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소리는 안 냈지만 우는 거였다. 아내가 고개를 파묻었던 자리에 눈물 자국이 남았다. 아내는 저녁에 나가기로 했다. 낮에 이미 얘기를 했다. 아내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상을 치르고 있나 싶을 정도로 침울한 얼굴이었다. 아내는 가방을 챙겨서 나가긴 했는데, 그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낮에 ‘오늘 저녁에 나가겠냐’고 물어봤을 때만 해도 엄청 신나게


“어. 좋지. 이제 넙죽넙죽 잘 받지?”


라고 대답했었는데.


아내가 나가고 나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내가 먼저 운을 뗐다. 엄마는 왜 저러시는 건지 시윤이에게 직접 얘기해 보라고 했다. 오늘은 좀 심각하게 얘기했다.


무겁고 진지하게. 아빠는 사실 너희가 낮에 엄마에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시윤이가 엄마에게 어떻게 버릇없이 구는지, 또 잘 할 때는 얼마나 잘 하는지 다 알고 있다고. 아빠가 몰라서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알지만 말을 안 하는 거라고. 엄마가 저렇게 맨날 울고 속상해하다가 마음에 병이 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럼 엄마를 보고 싶어도 못 보고 엄마를 봐도 너희가 아무리 기쁘고 즐거운 말과 행동을 해도 엄마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질 거라고. 슬픔만 남은 사람이 될 거라고.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아빠가 보기에 이렇게 매일 반복되면 엄마 마음에 병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고. 어쩌면 지금도 이미 병이 났을지도 모른다고. 너희들 겁주려고 이런 말 하는 게 아니라 아빠가 겁이 나서 얘기하는 거라고. 아빠와 있을 때는 안 그러면서 엄마만 같이 있을 때는 왜 그러냐고. 그건 너무 비겁하고 치사한 거라고. 아빠하고 있을 때도 똑같이 할 수 없으면 엄마 앞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이렇게 얘기했다.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상황 개선에 도움이 될는지도 모르겠고. 다만, 진짜 겁주려고 하는 게 아니었고 정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몸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병 앞에서 자신을 끄떡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싶다. 소윤이는 중간에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시윤이도 슬퍼 보이기는 했는데, 더불어 엄청 졸려 보이기도 했다.


시윤이에게는 특별히 당부와 부탁을 더 남겼다. 시윤이도 그 순간에 그러고 나면 후회한다고 했다. 자기도 모르게 그런다고 했다(악쓰고, 막말을 쏟아내고 등등). 엄마에게 마음의 병이 안 생기려면 시윤이도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소윤이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많이 볼 거다. 엄마와 시윤이 사이에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소윤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다. 실제로 아내가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으면 편지를 써서 가지고 온다. 내용은 주로 이런 거다.


‘엄마 너무 힘들죠? 그래도 힘내요. 우리 계속 행복하게 지내자여’


그런 편지를 볼 때마다 속에서 울컥 올라오기도 한다. 혹시라도 소윤이가 자기 자신에게 원인을 둘까 봐 걱정이 된다. 조만간 소윤이에게도 따로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다 먹고 식탁에서 내려온 뒤로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시간을 보냈다. 아니, 오히려 더 아이들을 조심해서 대하려고 노력했다. 괜히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거나, 무기력하게 거절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내일은 조금 더 나은 하루가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