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애는 써야지

22.06.14(화)

by 어깨아빠

어제 나의 진지하고 간곡한 부탁이자 무거운 권면은 전혀 소용이 없었나 보다. 적어도 시윤이에게는. 아침이고 낮이고, 집에서고 처치홈스쿨에서고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아내는 여전히 몸과 마음의 고생이 심했다. 퇴근해서 집에 왔을 때는 막 절정(?)의 순간을 지난 듯했다. 시윤이는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목이 다 쉬어서 걸걸한 목소리를 냈다. 아내는 모든 의욕을 상실한 듯, 아니 상실했다.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계속 생각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오늘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맞을까. 어제 나름대로 진지하고 정중하게 얘기를 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니 이제 어쩌면 좋을까. 소윤이가 무표정한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는 것 같았다. 괜히 더 말을 거는 것 같기도 했고.


밥은 즐겁고 감사하게 먹자는 게 나의 중요한 신조라면 신조라서, 밥 먹을 때는 웬만하면 훈육을 하지 않는다. 밥 먹는 태도 자체가 불량한 게 아니라면 다른 일을 굳이 그 시간에 꺼내지는 않는다. 오늘은 예외였다. 어제보다는 훨씬 엄하게, 시윤이가 느끼기에는 훈육으로 느낄 만큼 세게 말했다. 세게 말했다는 게 다른 건 아니고, 어제보다 직접적으로 시윤이의 잘못된 태도와 행동을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시윤이가 혼나는 상황에만 집중해서 그저 속상하고 끝나지 않도록 나름대로 애를 쓰긴 했는데, 모르겠다.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굳이 표현하자면 다소 차갑게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엄마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엄마한테 그러느냐. 너를 짜증 나게 한 사람이 있으면 차라리 그 사람한테 짜증을 내든가 해야지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엄마한테 그러느냐. 그게 무슨 비겁한 행동이냐. 어제도 말하지 않았냐. 아빠 앞에서 못 할 행동이면 엄마 앞에서도 하면 안 된다고. 그런데 왜 자꾸 엄마한테 그러느냐. 어제 아빠가 한 말이 시윤이 겁주려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냐. 진짜 엄마 병 나서 못 봐야 아빠 말을 들을 거냐.


이런 내용이었다. 시윤이는 수긍하며 듣기는 했지만, 오늘도 졸려 보였다. 아내는 별 말이 없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아내와 시윤이의 일로만 남겨 두기에는 한계선을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전에도 신경을 안 쓴 건 아니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 시간이 됐다는 걸 느꼈다.


밥을 다 먹고 소윤이와 서윤이를 씻겼다.


“소윤아. 우리 나갔다 올까?”

“네? 지금여? 갑자기?”

“어. 나갔다 오자”

“왜여?”

“그냥. 바람 쐬려고”


언니를 닮아 귀가 밝고 큰 서윤이가 곧장 합류했다.


“아빠아. 더두여어. 더두 갈래여어”

“그래, 서윤이도 같이. 시윤이는 엄마랑 씻고 먼저 자. 알았지? 집에서 엄마랑 데이트. 알았지?”


글로 쓰니 오해의 소지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시윤이를 매몰차게 대하려는 의도도 없었고, 말투도 마찬가지였다. 시윤이에게 엄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아내는 별로 그런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옆에서 느껴지는 아내의 기운이 전에 없을 정도로 무겁고 어두웠다. 그게 마음에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시윤이에게 엄마와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도 아내는 어른이고 엄마니까,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말과 행동에 사랑을 담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빠. 근데 우리는 어디 가여?”

“그러게. 엄마 커피 사러 갔다 올까?”

“그러자여”


일부러 조금 거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래야 시윤이와 아내가 우리가 가기 전에 잠들 테니까. 며칠 전부터 계속 아빠 차를 타고 싶다고 하던 서윤이가 제일 신이 났다.


“아빠아. 아빠 차 타니까 도아여어어어”

“서윤아. 그렇게 좋아?”

“네에에. 아빠 차 타니까 도아여어어어”

“왜 좋아?”

“기냐앙”


진심으로 좋아했다. 무슨 놀이공원에 처음 간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좋아할 일인가 싶었지만 서윤이에게는 특별했나 보다. 차에 타는 내내 좋다고 했고, 내려서는 다음에 또 탈 거라는 얘기도 계속했다.


카페에 가면서 소윤이에게도 대화를 걸었다. 요즘 힘들지는 않은지, 엄마와 시윤이가 그러고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혹시 소윤이 때문에 엄마가 힘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소윤이의 속마음을 듣고 싶었다. 다행히 소윤이는 이런 대화를 회피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말하는 편이다. 소윤이는 내가 걱정한 것에 비해서는 굉장히 담담했다.


자기가 직접적으로 잘못한 게 있을 때는 당연히 자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닐 때는 크게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괜한 죄책감 같은 건 없는 게 확실했다. 다만 진짜 아무렇지 않은 건지 아니면 굳이 표현하지 않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물론 아예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걱정한 것에 비하면 훨씬 건강하게 처리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평소 소윤이 성향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하지만, 그렇다고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아무튼 소윤이는 솔직담백하게 자기 생각을 얘기했다.


나도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혹시라도 소윤이 스스로 ‘나 때문에 엄마가 이렇게 힘든가’라는 생각을 한다면 절대 그럴 필요 없다. 엄마는 너네 때문에 엄청 행복하고 기쁘지만 힘들 때도 있는 것뿐이다. 당연히 그게 소윤이 때문은 아니다. 소윤이는 지금도 잘 하고 있으니 지금처럼 엄마 마음을 잘 살펴주면 된다. 동생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하고 엄마 말씀 계속 잘 들으면 된다. 그리고 시윤이를 좀 긍휼히(실제로 이렇게 표현했다) 여겨줬으면 좋겠다. 시윤이는 어렸을 때 항상 목이 쉬어 있었다. 안아달라고 우는데 소윤이가 안아주지 말라고 해서 안아주지를 못했다. 그래서 항상 목이 쉬어 있었다. 어쩌면 셋 중에 가장 엄마, 아빠에게 안기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소윤이가 시윤이를 좀 이해해 주고 불쌍히 생각해 주고, 그럴 때마다 시윤이를 위해서 기도해 줘라. 이런 얘기를 했다.


커피를 산 뒤에 마트에도 들렀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먹을 과자를 하나씩 고르라고 했다. 서윤이는 자기도 고르겠다면서 전에 먹었던 아기과자를 가리켰다. 자그마한 수박도 하나 샀다.


“소윤아. 이거 과자랑 수박 내일 목장 모임 다녀와서 먹어. 알았지?”


서윤이는 과자가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품에 꼭 안고 걸었다. 들기가 힘들다고 하면서도 끝까지 자기가 안고 걸었다. 확실한 자기 몫으로 구별된 걸 주면 엄청 좋아한다. 아직은 언니와 오빠만 누리는 게 훨씬 많아서 더 그런가 보다.


집에 들어가면서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당부했다. 혹시라도 시윤이가 자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손을 씻고 옷만 갈아입혀서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갔는데, 시윤이와 아내 모두 뒤척였다. 자다가 깬 건지 아니면 아예 안 자고 있었던 건지는 분간이 안 됐다. 서윤이는 엄마 옆에 눕겠다면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동생들에게 엄마 옆자리를 내준 소윤이가 아쉬워했다.


“소윤아. 매트리스에 누워서 자면 이따가 엄마랑 잘 수 있잖아”

“아, 맞다”


소윤이는 얼른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소윤아. 혹시 엄마가 옆에 못 누우시면 아빠가 누울게”

“알았어여”


아내는 깊이 잠들었다가 깨서 나왔다. 아내와 새벽 두 시가 되도록 대화를 나눴다. 내가 퇴근하기 직전의 상황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그때 아내의 심경이 어땠는지를 시작으로 요즘 아내의 마음과 상황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어둡고 깊은 골을 지나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다른 것보다도 그저 든든한 지원군이자 응원군이 되어 주는 걸 원했다. 아내가 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내에게 필요해 보이는 생각과 결심에 관한 조언(?)도 했다. 자신감과 여유로움, 담대함 같은 것들이었다. 아내가 이렇게 되려면 어떤 상황을 만들어야 하기보다는, 압박해 오는 상황을 무시하거나 의연하게 넘겨야 할 때가 더 많다. 상황에 위축되지 말라는 격려와 함께 그런 상황을 아예 피하기 위해 내가 협조할 수 있는 부분도 얘기했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애쓰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저 지나갈 뿐, 우리가 원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