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들과 아침 마실

22.06.15(수)

by 어깨아빠

어제 엄청 늦게 잤지만(사실 어제라고 하는 것보다 몇 시간 전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아침에는 변함없이 일찍 일어났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서도 바로 출근하지 않고 아이들이 깨기를 기다렸다. 특히 시윤이가 깨는 걸 기다렸다. 어제 자려고 누웠을 때 생각했다.


‘내일 아침에는 시윤이와 짧게라도 시간을 보내야겠다’


아내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평안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어제 저녁 먹고 집에서 시윤이와 둘이 있었을 때, 시윤이가 무척 좋아했다고 했다. 아내도 처음에는 전혀 마음이 열리지 않았지만 점점 평정심을 찾았고 함께 누웠을 때는 아내도 좋았다고 했다. 시윤이는 가장 바라는 게 뭐냐는 아내의 질문에 ‘엄마와 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대답했다. 아무튼 어제 아내와 시윤이의 마지막 시간은 둘 모두에게 좋은 기억이었다.


그 여운을 지켜주고 싶었다. 시윤이의 짜증이 고개를 들기 전에, 내가 먼저 뭔가 장치를 하고 싶었다. 시윤이를 기다렸다. 시간은 정말 넉넉하지 않으니 잠깐 편의점이라도 데리고 갔다 오면서, 짧게라도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먹힐지 아닐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그렇게 해도 여전히 똑같은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실망도 덜 할 테니.


세 남매는 거의 동시에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아빠가 아직도 집에 있는 걸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아빠. 왜 아직도 출근 안 했어여?”


시윤이에게 잠시 바람을 쐬고 오자고 얘기했다.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서윤이가 자기도 따라가겠다면서 진지하게 매달렸다. 엄청 금방 돌아올 거고 오빠만 데리고 갈 거라고 얘기했더니, 역시나 진심으로 서럽게 벌릴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크게 입을 벌리고 오열했다. 달래지지 않는 서윤이를 두고 급히 시윤이와 함께 나왔다. 시간이 많은 건 아니었다. 정말 딱 편의점 정도만 다녀와야 했다.


“아빠. 왜 바람을 쐬는 거에여?”

“아, 그냥. 시윤이랑 나가고 싶어서. 시윤아. 편의점 갈까?”

“왜여?”

“시윤이 먹고 싶은 거 사 주려고. 누나랑 서윤이 것도 사고”


시윤이는 고민 끝에 비요뜨를 골랐다. 비요뜨를 사서 다시 집으로 오는 짧은 시간에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시윤아. 어제 엄마랑 자니까 좋았어?”

“네”

“시윤이 엄마 사랑하지?”

“네”

“그럼 오늘 아빠랑 약속 하나 할까?”

“무슨 약속이여?”

“엄마한테 짜증 내거나 악쓰지 않는 거. 약속할 수 있겠어?”

“네”

“약속하면 그렇게 안 하려고 엄청 노력해야 하는 거야. 안 그럴 거라고 약속할 수 있어?”

“아빠. 안 그러는 건 약속할 수는 없어여”

“왜?”

“저도 안 그러고 싶은데 그렇게 할 때가 많아여”

“그래? 그럼 노력하는 건?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건 약속할 수 있지?”

“네. 그건 할 수 있어여”


솔직해서 좋았다.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은 못하지만 노력하는 건 약속을 하겠다니. 시윤이에게 꼭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시윤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바로 출근했다. 아침부터 굉장히 바쁜 기분이었다. 어제 아니 몇 시간 전에 자서 그런지 피로감도 엄청났다. 시윤이와 아내의 하루가 평안히 지나가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부디 나의 노력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출근했다.


아내는 목장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안타깝게도 시윤이는 아침부터 훈육할 일이 생겼다고 했다. 다만 다른 날처럼 막무가내, 안하무인으로 떼를 쓰거나 짜증을 내는 건 아니라고 했다. 아내도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고 그런 건 아니고 그저 훈육의 시간이 길어지니 몸이 지친다고 했다. 아내는 목장 모임에도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미리 얘기했다. 어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내용이었다.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봐 너무 전전긍긍하지 말고 과감하게 미루거나 불참을 통보하라고 했다. 시간에 쫓겨서 아이들, 특히 시윤이의 태도나 모습에 더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막고, 시윤이가 ‘엄마의 촉박한 시간’을 무기처럼 쓰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결국 목장 모임에는 참석을 못 했고 식사하는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고 했다. 아내도 나름대로 어제 새롭게 마음을 먹어서 그런지 상황에 비해서는 훨씬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물론 보지 않은 나의 착각일 가능성도 크지만.


아내는 목장 모임을 마치고 쇼핑몰에 갔다. 이 행보 자체가 아내의 당시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시윤이 신발을 좀 보려고 간 거였다. 당장 오늘까지 마쳐야 하는 일이 아닌 이상,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데도 그런 강행군을 펼칠 리가 없었다. 어제 새벽까지 아내와 나눈 대화, 오늘 아침 일찍부터 보낸 시윤이와의 시간이 다 허튼짓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니 나름 보람찼다.


작년에 신었던 시윤이 샌들이 올해는 당연히 작아졌다. 그래도 당장 없으니 억지로 좀 신겼는데 발에 물집이 잡혔다. 얼른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인터넷으로도 알아보고 오늘 쇼핑몰에도 간 거다. 시윤이는 다양한 샌들을 신어 봤다.


'비싸지만 예쁜 샌들’

‘좀 덜 비싸지만 제법 예쁜 샌들’

‘저렴하지만 별로 안 예쁜 샌들’

‘싸구려답게 조금도 안 예쁜 샌들’


물론 아내와 나의 시각과 기준에 의한 잣대였다. 시윤이도 보는 눈이 비슷한가 보다. 아내와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샌들을 신었을 때, 시윤이 반응도 가장 좋았다고 했다. 아내와 내가 보기에 별로 안 예쁜 샌들을 신었을 때는, 딱히 싫다고는 안 했지만 처음 신었던 샌들하고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고 했다. 그래도 시윤이는 확고한 자기만의 기준이 있었다.


“시윤아. 시윤이는 예쁜 거 하고 편한 거 중에는 어떤 게 더 좋아?”

“저는 편한 게 더 좋아여”


뭔가 우리 세대 아버지 같은 면이 있다. 꼭 밥 찾는 것도 그렇고, 뜨거운 밥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심미보다 실용에 무게를 두는 것도 그렇고. 결국 시윤이는 작년에 신었던 샌들과 똑같은 브랜드의, 같은 색상의 샌들을 골랐다. 디자인이 아주 약간 다르긴 했지만 같은 샌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윤이는 그 샌들이 편하니까 그것도 좋다면서 흔쾌히 결정했다.


저녁에는 갑자기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아이들 재우는 시간을 고려해서 늦은 시간으로 잡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촉박하긴 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엄청 늦게 말했다. 저녁 다 먹고 잘 준비를 모두 마쳤을 때쯤. 그렇지 않고 미리 말했으면 아내는 분명히 ‘내가 다 할 테니까 얼른 준비하고 나가’라면서 나를 떠밀었을 거다. 주어진 시간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다 하고 나서, 저녁 약속에 관해 얘기했다. 그때는 이미 아이들 잘 준비가 다 끝난 상황이라 나의 외출이 아내나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건 아니었다. 아내는 오히려 반겼다. 남편이 친구를 만나는, 흔하지 않지만 남편의 삶을 왠지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일을.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아내가 마실 라떼를 한 잔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