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보다 피곤함

22.06.16(목)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에 다녀왔다. 그래도 아직은 어제의 수고가 유효했는지 아내와 시윤이 사이에 극도로 힘든 상황은 없었다고 했다. 물론 수시로, 매 순간마다 시윤이의 잔잔한(절대적으로 잔잔하다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짜증을 받아내기는 했다. 극한으로 가지 않았다는 거고, 여기에는 오로지 아내의 공로만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오후 일정이 없어서 집에 일찍 왔다고 했다. 저녁으로는 단호박치즈계란찜을 먹을 거라고 했다. 며칠 전에 아내가 작은 단호박을 샀는데 그날부터 소윤이가 계속 원하고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아내가 만들어 주는 특별식 느낌인가 보다. 엄청 좋아한다.


저녁으로 그걸 먹는다는 건, 나는 저녁 식사에 함께하지 않는 뜻이었다. 축구하러 가는 날이었다. 내가 퇴근하고 나서도 아내는 저녁 준비할 생각을 안 했다. 저녁을 늦게 먹으면 그만큼 늦게 잘 텐데 괜찮은가 싶었다. 몇 번이나


“저녁 준비 안 해도 돼? 단호박계란찜 금방 돼?”


라고 물었는데 아내는 금방 한다면서 여유로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유로웠던 게 아니라 방전이었나 싶기도 하다. 축구하러 나가야 하는 나는, 괜히 조급했다. 아내가 너무 늦게 자게 될까 봐. 이유가 있긴 했다.


“단호박계란찜은 10분이면 돼”


아, 그랬구나. 진짜 조금밖에 안 걸리긴 하는구나. 대신 난 애들을 미리 씻겼다. 고작 세수하고 손, 발 닦는 거라 엄청 금방 끝나긴 했다. 실질적으로 아내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는 거다. 설거지도 했다. 아내는 극구 만류했다. 퇴근하고 오자마자 무슨 설거지냐면서, 그럴 때마다 자기 마음이 너무 좋지 않다면서. 자기는 정말 괜찮으니 마음 편히 갔다 오라고 하면서. 그래도 꿋꿋하게 설거지를 마무리했다.


“여보? 근데 여보는 저녁 뭐 먹어?”

“나는 이따 애들 재우고 나와서 비빔면이나 먹지 뭐”


누가 보면 비빔면을 엄청 싫어하는 걸로 오해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밤에 나와 앉아 있다가 한숨을 푹 쉬면서 일어나서는


“아, 빵이나 먹어야겠다”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낮에도


“아, 엄마는 라면이나 먹어야겠다”


라고 얘기하니까 소윤이가


“엄마. 근데 라면은 엄마가 좋아해서 먹는 거 아니에여?”


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런 게 진정한 팩트 폭행인가. 비빔면은 좋다고 해도 어쨌든 홀로 육아의 마무리를 감당해야 하니 그것을 향한 한숨이라고 하면 충분히 이해도 된다. 아무튼 난 아이들이 막 단호박계린찜을 먹기 시작할 즈음에 집에서 나왔다.


축구를 하고 왔는데 집이 깜깜했다. 고요를 깨지 않기 위해 조용히 움직였다. 불을 켜고 집안 상황을 살펴 보니 아내는 아예 나오지 못한 듯했다. 혹시 재우고 나와서 들어간 건 아닌지 흔적을 찾았지만 발견하지는 못했다. 비빔면을 먹은 흔적도 없었다.


배가 많이 고팠을 텐데, 배고픔보다 피곤함이 더 깊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