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0(월)
서윤이가 새벽에 짜증을 많이 냈다. 정신을 차린 상태에서 그런 건 아니었고 자면서 그랬다. 잠꼬대처럼. 덕분에 잠을 좀 설쳤다. 서윤이의 짜증에 깊은 잠에서 얕은 잠이 되었고 나도 잠결에 서윤이의 짜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를 썼다. 서윤이는 아침에 일어날 때도 새벽과 비슷하게 짜증을 냈다고 했다. 몸이 어딘가 불편했나.
아직 이른 시간에, 내가 사무실에 가기도 전인 시간에 아내는 이미 진한 일상을 시작했다.
“아침 눈 뜨자마자 또 시작이네. 지금 훈련 중. 쉬하러 갔음”
그래도 일단 잘 마무리가 됐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화는 안 냈으니 그래도 반은 성공이 아닌가 싶고”
라고 얘기했다. 그 말이 정답이다. 화만 안 내도 그게 어딘가. 예수님도 육아를 했으면 화를 내셨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오늘 저녁에 나가기로 했다. 이미 어제 얘기했다. 아이들에게도 아내가 미리 얘기했고. 아내는 장모님과 데이트를 하겠다고 했다. 퇴근하면 바로 교대하기로 했다. 대체로 그렇긴 하지만 아내는 언제나 뭐라도 조금 더 해 놓고 나가려고 뭉그적(사실은 부지런이지만)댄다. 나의 채근에 못 이겨 나가곤 한다. 오늘은 아내가 먼저 ‘퇴근하자마자 교대하겠다’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얘기해 놓고도 막상 순간이 되니 역시나 나가지 못하고 싱크대 앞에서 그릇 하나라도 더 씻으려고 하면서 안 나갔다. 조금 차갑고 매정하게 그만하고 나가라고 해야 나간다. 마음이 여린 아내는 모진 듯한 말투에 서운했을지도 모르지만. 하필 오늘따라 차도 더 막혀서 평소보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얼른 아내를 내보내는 게 남편인 나의 숙명이었다. 그 순간에는.
아이들 저녁은 내가 했다. 파와 계란을 넣고 초간단 볶음밥을 만들었다. 밥을 넣을 때 주걱이 휘어지도록 세 번을 떠서 넣었다. 당연히 일반 그릇에 떠 줄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볶음밥은 항상 평소보다 많이 먹곤 하니까. 아이들 그릇에 차례대로 볶음밥을 담아 줬다. 평소보다 많이. 세 녀석의 밥그릇을 모두 채우고 남은 볶음밥의 양은, 내가 약간 부족하게 먹을 만한 양이었다. 살짝 고민하다가 내 밥은 뜨지 않았다. 이미 많은 양을 떠 줬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이들이 더 먹겠다고 하지 않으면 그때 먹을 생각이었다. 뭐 사실 부족한 양은 아니었기 때문에 먹었어도 상관없었지만 그냥 더 달라고 하면 더 주고 싶어서 그랬다.
역시나 소윤이가 무척 잘 먹었다. 집에서 만든 볶음밥은 소윤이가 제일 잘 먹고 많이 먹는다. 소윤이와 서윤이가 남은 밥을 더 먹었다. 남김 없이. 난 희한하게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 일단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뭘 먹든 말든 할 생각이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에 있었지만, 땀을 무척 많이 흘렸다. 날이 덥고 습해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맺혔다. 나도 무척 피곤해서 한시라도 빠르게 육아를 마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찝찝하기 그지없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차마 그냥 재우기가 미안했다. 게다가 내일은 처치홈스쿨에 가는 날이라 더 그랬다. 한 명씩 차례대로 씻겼다. 매 순간이 고비(여러 가지 의미로)였지만, 강력한 의지로 무사히 샤워를 마쳤다. 끝내고 나니 내 속이 다 후련했다.
서윤이는 어느새 아빠와 자는 게 익숙해졌나 보다. 그전에도 엄마 없이 못 자는 건 아니었지만 엄마를 간절하게 찾으며 한바탕 울 때도 많았다. 요즘은 그런 게 없다. 순순히 받아들인다. 나더러 자기 옆에 누우라고 하는 것도 너무 좋다. 간택 받은 기분이다. 누우면 5분도 안 돼서 곤히 잠든다. 그래서 더 예쁜가. 시윤이도 마찬가지다. 머리만 대면 잔다. 오늘도 소윤이만 예외였다. 언제부터인지 소윤이도 울지 않는다.
“아빠 나갈게. 소윤아. 잘 자”
“아빠. 잘자여. 안녕”
아내는 장인어른, 장모님과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왔다. 장인어른은 딸의 해방 소식을 듣고는
“딸이 데이트 하자고 하는데 빨리 가야지”
라고 하시면서, 퇴근 시간도 당기셨다고 했다. 30년 정도 인생을 덜 산 내가, 장인어른의 심정을 가장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싶다. 딸을 만나는 환희에 찬 시간. 생각만 해도 좋다. 소윤이가 갑자기 자유라면서 만나자고 하고, 어떤 날은 소윤이와 서윤이 둘이 날 보자고 하고, 또 어떤 날은 시윤이가 혼자 와서 만나자고 하고(이것도 생각보다 무척 기쁘고 감격스러울 것 같다).
요즘 소윤이와 서윤이를 볼 때마다 ‘딸이었던 아내의 시절’을 자주 상상한다.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는 여러 사람의 증언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긴 했지만, 내 딸들이 크니 새롭게 느껴진다. 내가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도 새삼 와 닿고.
요즘은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소윤이와 서윤이 중에 누가 결혼할 때 더 마음이 헛헛하고 슬플까(시윤아. 미안하지만 너의 미래를 상상할 때는 ‘아이고 저 놈 저거 잘 해야 할 텐데’ 주로 이런 생각이 드네?). 그러다 항상 결론은 똑같다.
‘뭐가 됐든 그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있으면 감사한 거다’
엄마와 아빠를 만나고 온 아내도 퇴근해서 만났을 때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퇴근해서 마주쳤을 때는 ‘바사삭’이라는 형용이 딱 맞을 정도로, 한 여름 가뭄이 든 논밭처럼 바싹 말랐었다. 그랬던 아내가 촉촉해져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