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자유인데 자유가 아니야

22.06.25(토)

by 어깨아빠

아침에 일찍 나가야 했다. 꽤 멀리 사는 친구 집에 가기로 했다. 원래 내가 혼자 아이들 세 명을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아내도 같이 가게 됐다. 아내도 친구 집에 가는 건 아니었다. 친구 집에 갔다가 저녁에는 그 근처에 있는 야구장에 가기로 했다. 아내는 내가 친구 집에 있는 동안 혼자 ‘자유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역시나 목표로 삼았던 시간보다는 늦었다. 차도 적잖이 막혔다. 날씨는 엄청 더웠다. 내내 비가 오다가 잠시 주춤하더니 습도가 높아서 마치 습식 사우나에 안에 있는 듯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여보. 오늘의 일정이 뭔가 꿈 같네”


아내가 말했다. 친구 집에 가는 게 아니었으면 쉽게 이동할 만하지 않은 먼 거리를 움직이는 것도, 이 푹푹 찌는 날씨에 갑작스럽게 야구장에 가는 것도 다소 갑작스럽게 결정이 되었다. 너무 후다닥 결정되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꽤 만만하지 않은 일정이라는 걸 느낀 거다.


아내가 나와 아이들을 친구 집에 내려줬다. 아내의 기동력을 위해 아내가 차를 가지고 갔다. 주인인 친구는 아이가 없었고 나머지 두 친구는 아이를 데려왔다. 각각 두 명, 한 명. 물론 그들도 아내가 동행하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역시나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안 그래도 더운데 내 옆에 딱 붙어서 낯을 가렸다. 이럴 때는 역시 먹는 게 최고다. 친구가 점심으로 준비한 치킨을 먹으며 어색함이 약간 풀렸다.


점심을 먹고 나서 놀이터에 갔다. 날이 더워도 너무 더웠다. 그 더운 날씨에도 아이들 잘도 뛰어다녔다. 소윤이가 제일 힘들어 했다. 덥기도 했고, 놀이터 자체가 재미가 없기도 했나 보다. 철봉과 구름다리에 매달리는 걸 몇 번 하고는 그늘을 찾았다. 소윤이가 어울릴 만한 친구가 없기도 했다. 다 아들인데다가 모두 동생이었다. 나하고 노는 게 더 재밌었을 거다. 시윤이는 또래 친구들과 조금만 더 친해졌으면 훨씬 재밌게 놀았을 텐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서윤이가 제일 신나게 놀았다. 그 나이에는 외부 온도를 감지하는 능력이 없는 건지, 더운 줄도 모르고 잘 놀았다. 다들 모르는 사람이라 자꾸 내 손을 잡아끌어서 힘들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더운 날씨에 서윤이의 뒤를 일일이 쫓아다니다 보니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날씨를 생각하면 꽤 오랜 시간을 놀았다. 다시 친구 집으로 들어갔다. 천국이었다. 에어컨 덕분에 너무 쾌적하고 시원했다.


홀로 자유시간을 누리러 간 아내는 제대로 자유를 누릴 틈이 없었다. 예매한 야구장 자리가 따로 지정좌석이 있는 게 아니었다. 줄을 선 순서대로 자리를 택하는 방식이었다. 경기 시작 두 시간 전부터 입장이 가능했는데 줄은 그것보다 훨씬 일찍부터 선다는 걸,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됐다. 아내는 그 뙤약볕 아래에서 줄을 서고 기다렸다. 심지어 캠핑의자를 비롯한 여러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줄이 엄청 길다”

“그렇구나. 고생이네”


아내는 줄을 서기 전에 한 시간 정도 카페에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야구장에 반입 가능한 짐, 의자’ 따위를 찾아보는 데 썼다고 했다.


“나만 이 고생을 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최대한 늦게 와 여보”


진심이 느껴졌다. 자리를 잡아 놓고 잠시 나가는 게 가능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내는 자리를 맡아 놓고 근처에 있는 마트에 갔다. 나와 아이들도 그 즈음 친구 집에서 나왔다. 차를 아내가 가지고 가서 친구 차를 얻어탔다. 마트에서 아내와 재회했다.


“와. 여보. 나 진짜 힘들었다. 나 자유 맞지?”


자유는 맞긴 하지. 마음대로 쓰지 못했던 자유일 뿐. 아이 셋을 데리고 가는 내가 고생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고온 사우나 같은 날씨에 혼자 줄 서고 자리 맡은 아내가 진정한 고생길이었다. 아내의 고생 덕분에 엄청 괜찮은 자리에 앉았다. 며칠 전에 중고 거래로 산 캠핑 의자도 아주 유용했다. 소윤이가 처음에는 너무 더워서 약간 진이 빠진 듯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해가 지고 조금씩 시원해지니 다시 활력을 찾았다. 그럴 만했다. 쏟아지는 태양열을 피할 길이 없는 곳이었다. 그냥 정수리로 받아내야 하는 그런 곳. 소윤이만 그런 게 아니라 아내와 나도 처음에는 맥을 못 췄다.


1회부터 9회까지. 한 경기에 보통 3시간은 소요가 된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걱정이 안 됐지만 서윤이가 염려스러웠다. 과연 서윤이가 그 긴 시간을 버텨 줄까. 아마 소윤이와 시윤이를 통해 실패의 경험이 쌓였다면 시도조차 안 했을 거다. 소윤이는 훨씬 어릴 때 데리고 갔는데도 끝까지 다 봤고, 시윤이도 한두 번 데리고 갔는데 마찬가지로 중간에 나온 적은 없었다. 먹을 걸 잔뜩 준비했다.


다행스럽게도 경기 진행이 그렇게 느린 편은 아니었다. 순살 치킨, 튀김, 음료수, 오징어, 과자 등을 순차적으로 아이들에게 제공했다.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과한 양의 간식이었지만 야구장의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한, 또 아이들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한 특별 조치였다. 크게 덕을 봤다. 서윤이도 전혀 힘들어 하거나 지루해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서윤이도 얻은 게 많다. 평소에 먹던 간식의 양이 새 모이만큼이었다면 오늘은 거의 코스 요리 수준이었다.


“소윤아. 괜찮아? 안 지겨워?”

“아니여. 재밌어여”

“시윤아. 시윤이는? 안 힘들어?”

“저도 재밌어여”


뿌듯했다. 야구를 좋아하다니. 물론 규칙 따위는 전혀 모른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번갈아 가며 여러 질문을 던졌고 최대한 쉽게 설명을 했지만, 이해할 리 만무하다. 어른도 이해 못 하는 사람이 많은데. 볼 줄도 모르는데 뭐가 재밌나 싶었다.


“소윤아. 근데 뭐가 재밌어?”

“그냥 응원하고 이런 거여”


9회까지 무사히 보고 나왔다.


“여보. 이게 다 여보 덕분이다”


실로 아내의 공이 컸다. 놀랍기도 했다. 아이 셋에 26개월짜리 막내를 데리고 이걸 해내다니. 과업(?)을 마치니 피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게다가 온 몸은 땀범벅이었다. 애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차에서 잠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당연히 엄청 늦은 시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재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서윤이만 그대로 방에 눕혀서 재우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샤워를 시켰다.


“아빠. 오늘 너무 재밌었어여. 다음에 또 가자여”


소윤이와 시윤이가 모두 이런 반응이었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말했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규칙을 알고 흐름을 아는, 야구를 볼 줄 아는 자녀와 함께 야구장에 갈 날을 상상했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훗날의 나에게 아주 큰 행복을 주는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