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아니지만 함께하는 시간

22.07.09(토)

by 어깨아빠

아침부터 바빴다. 동생네 집에 가서 하루를 자기로 해서 짐을 챙겨야 했다. 동생네 가기 전에 병원에도 들러야 했다. 최대한 빠르게 가야 오래 기다리지 않을 것 같아서 열심히 부지런을 떨었다. 아이들 아침도 생략하고 움직였다. 그렇게 했는데도 아내와 내가 희망(?)한 시간보다는 늦어졌다. 병원에도 사람이 꽤 많아서 좌절했지만 걱정한 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기침만 심했다. 의사 선생님의 진찰 결과도 비슷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거의 끝나가는 단계에 접어들었을 거라고 했다. 시윤이가 열이 났던 건 아마도 기관지염이 살짝 왔을 거라고 하시면서 이제 열이 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하셨다. 소윤이도 비슷했지만 만성으로 가지고 있는 비염 때문에 더 힘들 거라고 하셨다. 아무튼 셋 다 거의 다 나았다는 소견을 받았다.


이사를 가기 전에 다 함께 여행을 가려던 게 원래 목표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행은 무산되고 아쉬운 대로 동생네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황홀한 시간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보고, 고모와 고모부도 보고(고모부는 물론 대등한 지위는 아니겠지만), 요즘은 사촌 동생을 보는 즐거움까지 더해졌다. 사실 사촌 동생을 보는 걸 더 기다린다. (내) 엄마가 동생네 집에 갔다는 소리를 들으면 이렇게 얘기한다.


"할머니 좋겠다. 00 볼 수 있어서"


아이들의 사촌 동생이자 나의 조카는,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내가 쳐다보기만 해도 울었다. 비단 이쪽만의 일이 아니었다. 한참 더 어린 형님(아내 오빠)의 아들도 나를 보더니 막혀 있다 뚫린 수도관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동생 부부가 사진을 많이 보여줬다고 했다. 그 덕분이었는지 오늘은 약간 빗장이 풀렸다. 물론 처음에는 굉장히 경계를 했지만 결국에는 나한테 안기기도 했다. 내 인생의 첫 다음 세대였다면 내가 더 절절하게 사랑을 표현했을 텐데. 내 아이가 셋이나 있어서 그게 많이 반감됐다.


아침을 안 먹어서 무척 배가 고팠는데, 점심까지 늦게 먹었다. 아이들도 엄청 배가 고팠을 텐데 의외로 잘 참았다. 노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랬나. 조카가 깨고 나서는 걔랑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 분수가 가동됐다. 많은 아이들이 나와서 물놀이를 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다 나았다고는 해도 아직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정말 감기 때문에 못 나간 게 맞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놀이는 언제나 즐겁지만, 언제나 번거로우니까.


(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뵈러 갔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서윤이는 처음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보여 드리는 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건강하셨지만 더 많이 늙으셨다. 그만큼 서윤이와 함께 있는 그 자리가 뭔가 특별했다. 4대가 함께 있는 자리라니. 떠나기 전에 할아버지가 간단한 성경 구절과 함께 축복기도를 해 주셨다. 너무 좋았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말년에 자기 자녀를 불러 축복하며 기도하는 장면이 그대로 옮겨진 느낌이랄까.


아주 잠깐 있다가 나왔다. 매제가 퇴근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아서 카페에 들렀다. 아빠와 동생, 조카는 집으로 갔고 나와 아내, 엄마만 카페에 갔다. 큰 기대를 안 하고 갔는데 꽤 괜찮은 곳이었다. 커피는 별로 맛이 없었지만 마당이 아주 넓은 카페였다. 아이들하고 가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였는데, 그래도 해가 조금 지니 견딜만했다. 서윤이는 계속 잤다. 낮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밤에 안 잘 테니) 일부러 과격하게 움직이며 깨우려고 했는데 깊이 잠들었는지 전혀 소용이 없었다. 결국 서윤이는 아주 푹, 거의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와 함께 신나게 뛰어놀았다.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도 하고 얼음땡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선선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무더웠다. 다들 땀을 주룩주룩 흘렸다. 엄마의 고군분투가 감사했다. 덕분에 아내와 나는 그늘진 정자에 앉아 쉬었다. 그렇게 잘 놀다가 막판에 시윤이가 또 고집을 부렸다. 꽤 오래갔다. 그래도 내가 있어서 극한(?)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시윤이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하고 있다. 감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걸 처리하는 방법은 너의 선택이라고. 아마 내가 없었으면 또 온갖 만행을 저질렀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동생네 집에 가고 나서야 조금씩 얼굴을 폈다.


저녁을 먹기 시작한 시간 자체가 아주 늦었다. 자녀들의 일과 마감 시간도 그만큼 늦어졌다. 오늘도 할머니와 자겠다고 했다. 오늘은 아예 뭐 일찍 자라 마라 이런 얘기도 안 했다. 이사를 가면 이렇게 만나는 것도 어려울 거고, 일찍 자라고 해도 일찍 잤던 적이 없으니까. 역시나 한참 동안이나 깔깔대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그래도 곧 다가올 멀어짐의 시간을 위로받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