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고 재우고 치우고, 그 중에 제일은 치우는 것이니

22.07.08(금)

by 어깨아빠

아내에게 특별한 일정이 있지는 않았다. 육아 그 자체가 큰 일정이었다. 밥 먹이고 싼 거 치우는 일이 겹치고 쌓이면 그것만큼 고단한 게 또 없다. 실제로 아내는 오늘 이 두 가지 일(먹이고, 싼 거 치우고) 덕분에 무척 힘들었다.


통상적인 점심 시간보다 조금 늦게 점심 식사를 시작했는데, 그때 서윤이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일단 소윤이와 시윤이만 점심을 먹였는데 시윤이의 식사 태도가 좋지 않다고 했다.


“피곤한 게 핑계인지 힘든 건지 애매하네”


다들 멀쩡해도 아직 기침도 많이 하고 콧물도 꽉 찼다. 완전히 멀쩡한 상태는 아니라는 거다. 시윤이는 아마도 아내에게 피곤하다는 걸 드러내며 숟가락질을 게을리 했나 보다. 그런 시윤이를 보며 끝없는 인내를 거듭하며 겨우 식사 시간이 끝나나 싶었는데, 서윤이가 깼다. 끝나려던 식사 시간은 다시 시작됐다.


“다들 왜 이러니. 밥 먹다 말고 내려감”


아내는 의자를 이탈한 서윤이 사진을 함께 보냈다. 아내는 무척 피곤하다고 했다. 식사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훈련병들처럼 착착착착 먹고 일어서고 치우면 모를까, 먹는 것만 해도 세월아 네월아니 지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중간에 시윤이 밥 먹을 때 잠깐 통화를 했는데 아내가 나중에 이런 후기(?)를 전했다.


“여보랑 통화할 때 부지런히 먹던데?”


그전까지는 영 별로였던 태도가 잠시나마 좋아졌다는 뜻이었다.


“시윤이. 나중에 고쳐지겠지?”

“나중에 결혼하고 나면 철 들려나? 여보처럼?”


하긴. 시윤이를 볼 때마다 오롯이 엄마의 아들이었던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아니 떠오른다. 불교에서는 이런 걸 업보라고 표현하나. 시윤이는 아직 여섯 살이다. 열 어섯에도 시윤이와 비슷한 말과 행동을 저질렀던 것 같다. 유전자의 세계는 실로 광범위하고 신비하다.


“서윤이는 응가 네 번째. 오늘 여러 모로 힘드네”


일일 사똥이라니. 그나마 서윤이가 잘 협조했는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 말을 안 듣고 고집부리고 힘쓰고 그랬으면 더 힘들었을 텐데. 순순히 사똥이어도 힘든데 반항적인 사똥이면 더 말 할 것도 없다.


퇴근하고 마트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다. 필요한 걸 사고 저녁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애들을 재우고 저녁 겸 야식을 먹기로 해서 아이들만 먹일 생각이었다. 푸드코트 비슷한 곳이 있어서 들어갔는데 가능한 음식은 제한적이었다. 황태해장국, 비빔밥, 제육볶음을 시켰다. 황태해장국과 비빔밥은 아이들, 제육볶음은 아내와 나의 몫이었다. 야식을 먹을 예정이었지만 급한 허기는 때울 요량이었다.


낭패였다. 모든 음식에 매운기가 도사렸다. 심지어 밑반찬들도. 겉보기에는 허여멀건한 것이 하나도 안 매워 보였는데 끝맛이 꽤 칼칼했다. 그나마 소윤이와 시윤이는 혀를 밖으로 꺼내서


“헤에. 헤에”


하며 꾸역꾸역 먹었는데, 서윤이는 거의 맨밥만 먹었다.


“여보. 근데 맛있네”


아내와 나의 입맛에는 적당히 매콤한 것이 아주 딱이었다. 아이들이 영 부실하게 먹은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내와 나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짐작해 보면, 주문하기 전에 맵냐고 물어봤어도


“아, 괜찮아요. 안 매워요”


라는 대답을 받았을 가능성도 크다. 이 식당에 입장한 이상 결말은 똑같았을 거다. 그래도 내일 주말이니까. 저녁 한 끼 정도는 부실하게 먹어도 그들의 인생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집에 오니 당연히 무척 늦은 시간이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갔고, 한참 동안 소식이 없었다. 깨워야겠다는 생각과 몇 분이라도 더 재워야 한다는 생각이 충돌했다. 항상 그렇다. 아내의 ‘육아없는 시간’ 확보를 위해서 깨우기도 하지만 내가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깨울 때도 많다. 오늘도 충돌과 연기를 거듭했는데, 아내가 먼저 깨서 메시지를 보냈다.


“헐. 지금 깨다니”

“안 그래도 막 깨우려고 했는데”

“깼는데 바로 배고픔”


아내가 거실로 진출하자마자 적당한 야식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많지는 않았다. 구관이 명관이라고(이게 적절한 인용인가?) 결국 치킨을 시켰다. 먹이고 치우느라 고생했으니까 아내도 먹어야지.


물론 아내는 기껏해야 두세 조각 먹었고 나는 닭의 모든 부위를 건드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