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7(목)
“시윤이 아침 잘 먹었어?”
“응 엄청. 셋 다 아침 잘 먹었어요”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밥을 잘 먹는다는 건 일종의 신호다. 몸이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 특히 내 자녀들은 몸이 아프면 먹는 게 확 달라져서 더 그렇다. 아내가 ‘엄청’이라는 표현을 쓴 걸 보면 그동안 못 먹고 배고팠던 걸 해갈이라도 하듯 잘 먹은 모양이었다. 한시름 놨다.
낮에 은행에 갈 일이 있었다. 집 근처 은행이었다. 점심 시간이 되기 전에 사무실에서 나왔다. 낮에는 차가 안 막히니까 오고 가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는다. 은행에서 많이 기다리거나 시간을 많이 쓰지 않으면 의외로 빨리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이 좀 빨리 끝나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깜짝 선물이라도 주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커피와 빵 같은 것.
역시나 은행 업무는 언제나 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의외로 기다리는 시간을 그렇게 길지 않았는데 일을 처리하는 시간 자체가 오래 걸렸다. 뭐 그렇게 서명할 게 많은지. 일을 다 끝내고 나니 점심 시간의 끝이었다. 안타깝게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들르기는 어려웠다. 마침 은행 앞에 아내와 내가 손가락에 꼽는 카페가 있어서 더 아쉬웠다. 나만 마셨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샀고, 편의점에 가서 땅콩크림빵도 하나 샀다. 그게 나의 점심이었다.
아내는 저녁에 약속이 있었다.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시간은 부족해지고 만나야 할 사람은 넘쳐난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아내에게 제안했다.
“애들 아침, 점심 뭐 먹였지?”
“점심 아직 안 먹음. 계란밥?”
“아침에?”
“아침은 삼계탕”
“아하. 그럼 저녁에는 다른 거 먹어야겠네. 여보는 퇴근하자마자 바로 나가”
오늘 저녁도 볶음밥이었다. 참치와 계란, 파를 넣었다. 아이들이 점심을 늦게 먹어서 배가 많이 안 고플 거라고 했는데 정말 많이 안 먹었다. 그래도 다들 기력을 회복한 듯 보여서 감사했다.
오늘은 서윤이가 책을 골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각자 읽었다. 새로운 양상이다. 소윤이는 이제 동화책을 읽을 수준을 지났는데 소윤이가 읽는 책은 글밥이 무척 많다. 몸과 마음의 체력을 거의 다 소진한 상태인 밤에 읽어 주기에는 힘에 부친다. 읽고 싶은 책을 고르라고 해 놓고 막상 고르면 ‘너무 긴데 그건’이라는 말을 할 때가 자주 많다. 그렇다 보니 소윤이는 차라리 엄마나 아빠가 동생들 책을 읽어주는 동안 자기가 읽는 방법을 택한 거다. 시윤이는 아직 동화책을 읽고 있지만, 누나를 따라 스스로 읽는 길을 선택했다.
오늘도 몇 번이나 휴대폰을 얼굴에 떨어뜨리고 나서야 방에서 나왔다. 시간이 제법 많이 지났는지 소윤이도 잠들고 난 뒤였다. 아내는 다른 날에 비해 일찍 들어왔다. 아내 혼자 시간을 보내러 나가는 날은 늦게 오고, 누군가를 만나면 조금 일찍 온다. 서윤이는 마치 엄마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아내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문을 열고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정말 신기한 건, 나오면 꼭 우선 나한테 와서 안긴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이랬던 적이 없다. 눈 앞에 엄마가 보이는데 나에게 먼저 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사정을 해야 겨우 한 번 안아 볼까 말까였는데. 서윤이는 나에게 직행이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들어가서 눕고 싶지만 한 번 그러기 시작하면 다시 일상처럼 자리를 잡을 거고, 그건 고스란히 아내의 몫이 된다.
“서윤아. 이제 들어가서 누워야지”
“ㅇ…..ㅏ…..ㅃ……ㅏ……ㅇ…..ㅑ…..ㅇ…..ㄱ……ㅏ……ㅊ…..ㅣ”
활자로 표현할 길이 없어서 이렇게 적는다. 서윤이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바로 앞에 있어도 안 들리는 목소리로 ‘아빠랑 같이(혹은 엄마랑 같이’ 눕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한다. 그래도 이제 완전한 학습이 되어서
“아니야. 서윤이 혼자 들어가서 눕는 거지? 누구랑 들어갈 거야? 엄마? 아빠?”
라고 물으면 포기하고 한 명을 선택한다. 주로 엄마가 당첨된다. 이제 그렇게 눕히고 나오면 다시 깨서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요즘 이사를 기회 삼아서 아이들과 떨어져 자는 걸 고려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결정했다. 수면의 질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왠지 모르게 아쉽다. 벌써 아쉽다. 아이들이 서운해 하고 말고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먼저 아쉽다.
“여보. 내가 맨날 애들 방에 가서 자는 거 아니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