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14(목)
새벽에 깼는데 아내가 안 보였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봤더니 거실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애들한테 시달리다 못 견디고 나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새벽에 깼을 때는 아내 혼자였고 그 다음에 깼을 때는 서윤이도 안 보였다. 시윤이가 깨서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나에게
“아빠. 저도 엄마 옆에 가서 자도 돼여?”
라고 물었다. 엄마 힘드시니까 그냥 방에서 자라고 얘기했더니 순순히 방에 눕긴 했다. 내가 괜히 미안했다. 미안하다기 보다는 시윤이의 마음이 어떨지 너무 상상이 됐다.
“시윤아. 엄마 옆에서 자고 싶어?”
“네”
“알았어. 그럼 엄마 옆으로 가. 서윤이랑 싸우지 말고. 엄마 잠 못 자게 하지 말고”
시윤이는 거실로 나갔다. 난 소윤이 옆에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이 돼서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자리의 변동이 없었다. 다만 내가 출근하고 나면 소윤이가 혼자 방에 남는 거였고, 소윤이가 괜히 아쉬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훨씬 늦게 일어났다. 세 명이나 거실에서 자고 있었으니 최대한 조용히 나가려고 노력했는데 나가자마자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여보. 혹시 조금 전에 나갔어요?”
“응”
“늦었네 엄청”
“그러니까”
“새벽에 갑자기 위통이 심해서 토하고 그랬네”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설명 그대로였다. 겁이 났다. 요즘 그게 누가 됐든 ‘가족 누군가의 부재를 과연 내가 견딜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러다 보면 작은 변수에도 심장이 쪼그라들 때가 많다. 아내는 어제 ‘배도 안 고픈데 먹었던 치킨’이 원인일 거라고 얘기했다. 그게 얹히고 체해서 그런 거 같다고 했다. 차라리 그게 이유면 다행이었다. 아내는 여전히 위가 아픈 듯한 통증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심하지는 않다고 했다.
아내는 낮에 아이들을 데리고 지인의 집에 다녀왔다. 거기도 아이가 많은 집이라(우리보다 더 많음) 아이들은 실컷 잘 놀고 왔을 거다. 심지어 1층이라 막 뛰는 것도 가능했다. 대신 아내는 진이 빠졌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잘 논다고 해도 어른 두 명에 아이 일곱이면 심각한 불균형이긴 하다. 실제로 아내는 퇴근 시간 무렵에 전화를 해서 이렇게 얘기했다.
“여보. 어디야?”
“나? 이제 막 출발했지”
“아 그래?”
“여보는?
“나도 이제 막 출발하려고. 근데 저녁 할 기운이 없네. 밖에서 먹을까?”
“그래”
요즘 자주 가는 중국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한 것까지 겹쳐서 정말 힘이 없어 보였다. 사실 생기가 뚝뚝 흐르고 넘치는 날이 굉장히 드물긴 하지만. 아내는 저녁에도 매우 소량만, 최대한 덜 자극적인 걸로 먹었다. 계속 비슷하게 통증은 없지만 통증의 흔적은 남은 정도라고 했다. 최근 며칠 아내의 일상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속이 멀쩡한 게 이상한 것 같기도 했다. 원래 체력이 센 사람이 아닌데 엄마의 역할을 하느라 어쩔 수 없이 강해졌다. 몸도 마음도. 그동안은 젊음을 먹고 버텼지만, 점점 영양분으로 쓸 젊음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낀다. 아내도 나도. 가수 노사연 님은 ‘바램’ 이라는 노래에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라고 했다. 너무 과숙성 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게 없어서 그런지 아내는 유독 피곤했다. 아예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갈 때 아내도 잘 준비를 다 마쳤다. 씻고 옷도 갈아입고. 깨서 나오지 않고 쭉 잘 생각으로. 어떤 병이든 밥과 잠이 보약인데 오늘 같은 날은 둘 다 무너졌으니까 기본부터 챙겨야 한다. 아내는 생각보다 그런 것에 관대한 사람이라 옆에서 자꾸 채근을 해야 한다.
“여보. 오늘은 그냥 좀 푹 자”
내일은 아내의 안부부터 물어야겠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아내와 내가 처음 교제를 시작한 날이다. 그러니까 역사적인 '1일'이 시작된 날이다. 해가 가며 부부의 연이 깊어질수록 빛이 바래고 있지만, 그래도 아내와 나에게는 특별한 날이다.
그러네. 벌써 13년이 흘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