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아이 셋은 일상이 되었고

22.07.15(금)

by 어깨아빠

다행히 아내에게 다른 변수는 없었다. 아내는 더 나빠지지 않았다. 밥도 정상적으로 잘 먹었다. 목소리도 괜찮았다. 일시적인 통증으로 지나가서 다행이긴 하지만 아내의 각종 통증이 혹시나 전조 증상은 아닌지 항상 걱정이다. 걱정은 하면서도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알면서도 모르겠고.


소윤이는 요즘 또 치과에 간다. 이가 아프다고 해서 가 봤더니 썩은 곳이 있었다. 신경 치료를 시작했다. 뽀뽀로 충치균을 옮기지 않으면 아무리 단 걸 많이 먹어도 충치가 생길 일이 없다고 하던데, 알고도 뽀뽀 세례를 퍼부었던 게 전혀 후회가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충치를 막을 수 있다고 해도 어떻게 뽀뽀를 참을 수 있을까.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는 못한다.


아내가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치과에 다니느라 고생했다. 오늘 그것 말고는 별 다른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저녁 시간에 매우 피곤해 했다. 아무리 가까워도 애들 차에 태우고 내려서 어딘가를 다녀오는 일이 생각보다 체력을 쓰게 된다. 이게 너무 익숙한 모습이 돼서 그렇지 내 주변에도 아내 걱정과 동시에 감탄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친 아내는 퇴근하는 나에게 전화해서 돈까스를 찾아서 와 달라고 했다. 오늘은 아이들과 큰 문제(?)도 없었던 것 같았는데 목소리가 많이 지쳐 있었다. 그런 힘겨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오늘도 철야예배에 가겠다고 했다. 심지어 오늘은 내가 드럼을 치는 날인데도. 이곳에서 금요철야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도 두 번밖에 남지 않았고, 마지막을 향해 가는 일상의 아쉬움이 반영된 의지였다.


돈까스는 식재료로 비교하자면 계란에 견줄 만한 필수 외부 음식이다. 대체로 저렴하고, 간편하고, 맛도 좋고, 영양 공급의 측면으로도 훌륭하고. 우리 자녀들이 모두 좋아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만만한 게 돈까스다. 부지런히 저녁을 먹고 쫓기듯 서둘러서 나왔다.


내 연습 시간에 맞춰서 나왔기 때문에 예배가 시작될 때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남았다. 아내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소윤이는 나를 따라서 교회에 남겠다고 했다. 아주 사소한 변화지만 이럴 때 소윤이가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뭔가 애 같은 구석이 점점 사라진다. 귀찮은 거 싫어하고, 꼭 엄마가 아니어도 되는 것도 많아지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소윤이는 혼자 예배당 의자에 앉아서, 연습하는 아빠를 보며 엄마와 동생을 기다렸다.


아내가 시윤이, 서윤이를 데리고 예배당에 들어왔고 서윤이는 변함없이 예배당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아빠를 불렀다. 물론 이 때는 아직 연습 시간이라 소음을 내도 상관은 없었지만, 목청 좋은 서윤이가 계속 “아빠”를 외치면 꽤 시끄럽다. 손을 흔들어서 화답을 해야 연호를 멈춘다. 사실 묘한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샘솟는다. 딸에게 사랑받는 아빠라는 걸 공증 받는 느낌이랄까.


서윤이는 그렇게 초반에 확 끓어 오르고 금방 시든다. 졸릴 시간이다. 얌전히 유모차에 누워서 잠들면 좋을 것을 자꾸 아내의 품에 안겼다가 의자에 앉았다가, 의자에 앉았다가도 부산스럽게 움직이다가, 결국 졸음을 못 이겨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짜증을 내곤 한다. 오늘도 비슷했다. 고군분투하는 아내의 모습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반주를 마치고 자리로 가서 서윤이를 안으려고 했는데 엄마 옆에 있겠다고 했다. 얌전히 있으면 그대로 뒀겠지만 역시나 몸을 이리저리 꼬며 잠투정을 했다. 사전 예고 없이 서윤이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아빠아. 엄마 옆에 갈래여어”

“서윤아. 서윤이가 엄마 옆에서 계속 움직이고 짜증냈잖아. 엄마 옆에는 못 가”

“갈래여어”

“엄마 옆에 가고 싶어?”

“네”

“그럼 유모차에 누워. 그럼 엄마 옆으로 갈 수 있어. 유모차에 누울래?”

“네에”


많이 크고 성장하긴 했어도 아직은 단순한 면이 있다. 술수가 먹힌다. 서윤이는 순순히 유모차에 누웠다. 바로 잠들지는 않았지만 결국 잠들었다. 그게 밤잠으로 이어졌고.


소윤이야 당연하고 오늘은 시윤이도 잠들지 않았다. 졸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자기 입으로도 졸리고 피곤하다고 했다. 예배 드리기 전에


“저는 예배 시간에 자는 게 창피해여”


라고 말하더니 정말 그것 때문인지 잠들지 않았다. 시윤이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굉장히 예민하다. 여섯 살 어린 아이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체면을 차리는 것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 아주 가볍게 ‘그런 건 괜찮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정도로 얘기하고 만다. 위선으로 흐르지만 않는다면 적당한 체면은 곧 예의의 기초가 되기도 하니까. 무엇보다 체면과 위선, 무례의 집합체일지도 모르는 나의 삶을 생각하면 감히 함부로 얘기하기 어렵다. 부모라는 권력을 활용해 나는 아닌 것처럼 가르칠 때마다 양심의 자극을 느끼곤 한다.


서윤이가 잠든 채로 집에 왔기 때문에 소윤이와 시윤이도 엄마 없이 자야 했다. 재우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아내도 별 다른 걸 하지 못하고 쉬는 듯 안 쉬는 듯 있다가 자러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