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19(화)
알람을 맞추지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 시간에 눈이 떠졌다. 억지로라도 더 잘까 하다가 그냥 일어났다. 기왕 습관이 됐다면 굳이 일부러 늦게 일어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출근하지 않는 내가 반가우면서도 어색한 듯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이 자꾸 주말 같다고 했다. 아내도 편해 보였다. 평소에 아내가 맡았고 애를 적잖이 쏟아야 했던 아주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내가 대신했다. 무엇보다 자녀들을 훈육하는데 쓰던 체력과 정신력을 비축할 수 있어서 좋아 보였다.
아내와 아이들은 곧 출산을 앞둔 처치홈스쿨 선생님의 베이비 샤워를 하러 가야 했다. 나는 그 시간에 머리를 자르러 가기로 했다. 머리를 다 자르고 나면 아내의 일정도 얼추 끝날 줄 알았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베이비 샤워는 끝났지만 모인 김에 같이 점심도 먹고 자녀들끼리 좀 놀게 한다고 했다.
집에는 밥이 없었다. 나 혼자 먹자고 새로 밥을 하는 것도 성가셨다. 아내에게 집에 혹시 뭐 먹을 만한 게 있는지 물어봤는데, 냉면이 있다고 했다. 그게 없었으면 편의점에서 땅콩크림빵을 사 먹으려고 했는데, 냉면이 있다고 하길래 집에 가서 먹기로 했다. 혼자 밥 먹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아침도 먹지 않은 터라 배가 무척 고팠다. 다행히도 냉면의 조리 과정은 매우 간단했다. 면은 1분 정도 삶고 찬물에 헹궈서 찬 육수를 부으면 끝이었다. 하나는 양이 좀 작아 보여서 면만 두 개를 삶았다. 육수는 하나만 썼다.
매우 심심한 냉면이었다. 오로지 육수와 면만 존재하는.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꽤 한참 동안 놀다 들어왔다. 저녁에는 아내가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해서 그나마 일찍 돌아온 거였다. 다른 지인들은 여전히 놀고 있을 때 먼저 인사를 하고 왔다고 했다. 이것 때문에 또 아내가 화르르 타올랐던 것 같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왜 우리만 먼저 가야 하냐’며 시무룩했고, 곧 시무룩을 넘어 ‘부모의 신경을 긁는 뾰로통’까지 나아갔던 것 같다. 아내도 짜증이 났고. 아내가 따로 소윤이와 시윤이를 불러서 사과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과를 했다는 건, 상황이 어떠했든 감정을 많이 쏟아냈다는 말이었다. 육아에서 감정만 걷어내도 훨씬 질이 좋아질 텐데. 그게 참 어렵다.
서윤이는 잠든 채로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나에게 아이들을 인계하고 바로 나갔다. 오늘따라 떠나는 아내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게 싫었다. 붙잡고 싶었다. 오랜만에 아이 셋과 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나도 모르게 부담스러웠나 보다. 평소에는 주로 퇴근하고 와서 재우기만 하면 될 때, 아내는 나가고 난 남았다. 그래 봐야 몇 시간 더 늘어난 건데 그게 참 막막했다.
‘뭘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하나’
막상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저 고민은 무색해진다. 한 것도 없이 시간만 훌쩍 흐를 때가 참 많다. 오늘도 마음 속으로는 ‘잠깐 밖에 데리고 나갔다 올까’ 생각하다가 이내 접었다.
‘낮에 밖에서 잘 뛰어 놀았는데 뭐. 부지런히 끝내고 재워야지’
잠든 채로 집에 와서 그대로 방으로 들어간 서윤이는, 한참 자고 깼다. 깬 줄 알았는데 거실에 누워서도 또 잤다. 잠을 이기기가 어려웠는지 금방 다시 잠들었다. 너무 많이 자면 밤에 안 잘 테니 좀 깨우려고 했는데 안 일어났다. 엄청 피곤한지 아예 정신을 못 차렸다. 길어도 길어도 너무 긴 시간을 잤다. 서윤이는 결국 세 시간이나 자고 일어났다. 밤 시간이 두렵긴 했지만,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잠든 서윤이 옆에 서윤이를 깨우겠다며 누웠는데 나도 같이 잠들었다. 밤잠처럼 숙면은 아니었지만 졸았다고 하기에는 더 깊고 달콤했다. 자면서도 ‘이거 해야 하는데, 저거 해야 하는데’를 계속 생각했다. 그 중에 가장 큰 게 샤워였다. 낮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놀고 왔으니 꼭 씻겨야 했다. 졸음에 취해 코를 시끄럽게 골면서도 계속 샤워 생각이 났다.
저녁 먹기 전에 아이 셋을 모두 씻겼다. 정확히 말하면, 소윤이는 혼자 씻었고 시윤이와 서윤이는 씻겨 줬다. 자기 직전은 아니라서 머리를 따로 말려 주지는 않았다. 이게 너무 좋았다. 머리 말려 주는 과정만 사라져도 샤워가 훨씬 가벼울 텐데. 대충 수건으로 털어 주고 자연 건조가 되도록 했다.
샤워를 한 다음 저녁을 먹었다. 그게 뭔가 마음이 편하다. 밥 먹고 나서 샤워를 해야 하는 것과 밥 먹고 양치만 해도 되는 건 어마어마한 차이다. 물론 조삼모사겠지만, 그래도 큰 일을 먼저 끝내는 게 심신의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저녁은 볶음밥이었는데 역시나 소윤이의 큰 호평과 반응을 받았다. 소윤이는 ‘아직도 배가 안 찼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몇 번이나 밥을 더 떠줬다.
낮에, 아니 저녁 직전에 세 시간이나 잔 서윤이는 당연히 밤에 재우는 게 오래 걸렸다. 그래도 웬만하면 모두 잠들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서윤이가 너무 쌩쌩했다. 서윤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네고 나오려고 했는데 서윤이가 울음으로 막아섰다.
“아빠아아. 나가지 마여어어. 같이 자자여어어어어”
“어, 서윤아. 아빠는 이제 나가 봐야 돼. 지금까지 서윤이 재워줬고”
“아빠아아아. 내 옆에 누워여어어”
“서윤아. 아빠는 나갈 거야. 서윤이는 어디에 누울래? 침대에 누울래? 아니면 원래 서윤이 자리에 누울래?”
“아빠라아아앙”
“아니, 아빠는 같이 눕지 못해. 서윤이가 말 안 하면 그냥 아빠 마음대로 눕혀도 되지?”
“아니여엉”
“그럼? 서윤이가 얼른 얘기해. 침대에서 잘 거야 서윤이 자리에서 잘 거야?”
“침대”
아빠가 눕느냐 나가느냐의 선택지를 내가 침대에 눕느냐 바닥에 눕느냐의 선택지로 바꾸는 부분 전술이 잘 먹혔다. 서윤이는 훌쩍거리면서도 순순히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나의 탈출을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