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은 아니지만 마지막 같은

22.07.23(토)

by 어깨아빠

틈틈이 정리와 버리기를 하느라 바쁘다. 난 주로 아침 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덕분에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릴 때가 많지만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해야 한다.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강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때가 되기 전까지 다 정리를 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압박감을. 아내는 아내대로 분주하다. 결국 정리와 버리기의 주도자는 아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제로 정리와 버리기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건 아내다.


아주 늦은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아내는 이불 빨래를 하러 집 앞 빨래방에 갔다. 아내가 나가자 언니, 오빠와 잘 놀던 서윤이가 무척 서럽게 울었다. 잠깐 나갔다 오는 거라고 설명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너무 서러웠나 보다. 밤에 아내가 자유부인이 되어 나갈 때도 그렇게 안 우는데 오랜만에 ‘엄마 껌딱지’인 아이처럼 슬프고 크게 울었다. 한참을 안아서 달래 주다가 시간을 보니 낮잠을 잘 만한 시간이었다.


“서윤아. 잘까? 아빠랑 들어가서 잘까?”

“네에”


졸리기도 했나 보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이 거실에서 놀고 있었다. 서윤이는 엄청 금방 잠들었지만 바로 나오지는 않았다.


“아빠. 아빠도 잤어여?”

“아니?”

“근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여?”

“아, 뭐 그냥”


‘아빠도 좀 쉬려고 누워 있다 나왔어’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혹시라도 ‘엄마, 아빠는 우리랑 있는 게 힘들기만 한가?’라고 생각할까 봐. 사실 그런 말은 밤에 자주 한다.


‘소윤아, 시윤아. 이 시간이 되면 엄마, 아빠도 엄청 힘들어. 그러니까 너희도 말을 잘 들어야지’


밤을 위해 낮에는 아껴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 아무튼 몰래 쉬고 나왔다.


아내는 꽤 한참 자리를 비웠다. 이불을 빨아서 건조까지 마치려면 그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나도 가 봐서 알지만 빨래와 건조는 기계가 하는 거고 기다리는 시간은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아내가 부러웠다.


저녁에는 처가 식구들과 밥을 먹기로 했다. 이것 또한 이곳에서 모이는 마지막 전체 모임이었다. 저녁을 먹기로 한 식당이 우리 집 근처였는데 아이들을 처가에 가서 맡기고 왔다. 처가에 있는 서랍장을 가지고 와야 했는데 서랍장이 들어갈 만한 차가 내 차 뿐이었다. 굳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처가에 맡긴 건, 원래는 그 사이에 아내가 자유롭게 집 정리를 하려고 했다. 어쩌다 보니 정리를 할 만한 시간의 여유가 사라져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이유가 없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와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도록 애초 계획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서랍장을 차에 옮기고 아내와 나는 또 가구를 보러 갔다. 그러고 나서 집에 들러서 서랍장을 집에 올려놨다. 시간이 남으면 잠깐이라도 뭘 하려고 했는데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 바로 저녁을 먹으러 가야 했다. 다들 먼저 와 있었고 아내와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나를 발견한 서윤이가 아기 의자에 앉은 채로 엉덩이를 들썩이며 환영했다.


“아빠아아악. 아빠하하하학”


소윤이가 좋아하는 월남쌈이 오늘의 저녁 음식이었다. 서윤이는 멀찌감치 할아버지 옆에 앉았다. 서윤이 챙기는 게 보통 바쁘고 성가신 게 아닐 텐데 장인어른이 제대로 드셨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나는 평소보다 엄청 여유로웠다.


카페도 갔다. 가족이니 다른 어떤 사람들과는 다르게 영영 이별은 아닐 테지만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건 꽤 짙은 슬픔을 유발한다. 평소와 다름없던 반가운 만남의 시간은, 누군가 ‘이게 마지막이네’라고 말하는 순간 얼굴을 싹 바꾼다. 형님네 식구는 다시 만나기까지 꽤 오랜 공백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내가 다 아쉬웠다. 소윤이가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며 많은 추억을 공유했는데.


이제 그럴 일이 없어진다는 게 아쉽고 또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