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4(주일)
오늘도 마지막이었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주일 예배였다. 다시 말하면, 이 교회와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말이었다(나는 다음 주 화요일에 목장 모임이 남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옷을 갖춰 입었다. 교회에, 목사님께, 또 여러 사람에게 갖추는 감사의 예였다.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께 가서 기도를 받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직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소윤이부터 데리러 갔는데 반 친구들과 둥그렇게 앉아서 인사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기다려 주고 싶었지만 밑에서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먼저 데리고 나왔다. 소윤이는 친구들에게 밝은 목소리로
“안녕”
이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6개월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 꽤 많은 추억을 쌓았다. 소윤이는 집에서도 교회 친구들 얘기를 자주 했다. 처치홈스쿨에서 만나는 친구들이 아닌 다른 친구와는 어떻게 지낼까 궁금했는데, 소윤이에게 듣는 교회 친구 얘기가 재밌기도 했다. 이것 또한 내가 다 아쉬웠다. 소윤이는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니라서 그런 건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슬픔이나 아쉬움에 깊이 빠져들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진짜 속마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시윤이도 데리러 갔다. 시윤이는 뭘 만들고 있었다. 시윤이에게는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윤이 다웠다. 오히려 시윤이 부서에서, 선생님들이 마지막이라고 선물을 챙겨주셨다. 나중에 시윤이 선생님이 아내에게 동영상도 보내 주셨는데, 심지어 예배 시간 중간에 앞에 나가서 축복의 시간도 가졌다. 동영상 속 시윤이의 모습은 ‘얘가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표정했다. 자세히 보면 약간 미소를 띤 것 같기도 했고.
목사님과 사모님, 나의 목자 집사님, 아내의 목자 집사님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기도를 받았다. 가정을 이루고 가장 오랫동안 다닌 교회였다. 시윤이와 서윤이가 여기서 태어났고 세례를 받았으니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었다. 아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나도 위기였지만 잘 참았다. 울어도 되지만 참게 된다. 기도를 받고 나와서는 교회 앞에서 가족 사진도 찍었다. 여러 이별과 아쉬움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슬픈 마음을 유발하는 이별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교회였다.
교회와 작별을 하고 나서 부지런히 마트로 향했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지인의 가정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가까운 곳이었지만 어쨌든 집을 떠나 함께 숙박을 하는 거니까 여행은 여행이다. 숙소는 카라반이었다. 카라반 숙박은 처음이었는데, 장소가 너무 좋았다. 산과 강이 모두 가까웠다. 자연에 둘러 쌓인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만나자마자 수영장부터 들어갔다. 첫째는 첫째끼리, 둘째는 둘째끼리 각각 성별과 나이가 같아서 아주 잘 맞는다. 우리 자녀들은 올해는 물론이고 작년까지 포함해도 첫 물놀이였다. 오랜만인 데다가 마음이 잘 맞는 친구까지 함께였으니, 얼마나 신이 났을까 싶다. 저쪽 집의 막내는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만삭인 엄마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빠들은 물에 들어갔고 엄마들은 지상을 지켰다.
서윤이는 태어나서 처음 하는 물놀이였는데, 물 만난 고기 같았다. 서윤이에게는 익스트림에 가까운 미끄럼틀을, 겁도 안 내고 엄청 잘 탔다. 아내가 미끄럼틀 위까지 함께 데리고 가서 튜브에 태워 주면, 나는 물 속에서 기다렸다가 서윤이를 잡아줬다. 고생은 아내가 다 했다. 나야 시원한 물 안에서, 내려오는 서윤이를 잘 잡아주기만 하면 됐다. 그나마도 튜브 때문에 물에 빠지지도 않았다. 물 속의 서윤이를 다시 밖으로 꺼내 올려 주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에 비해 아내는 계속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했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 오는 서윤이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은 얼마나 더 놀고 갈 건지 궁금해 했다. 저녁에 불 피워서 고기 구워 먹을 걸 생각하면 너무 늦게까지 놀면 안 됐다. 그에 비해 아이들의 욕망은 강렬했다.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서 아이들과 의견 조율을 마쳤다. 그때 다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우리가 약속한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수영장 운영이 끝난다는 거였다.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다행이었다.
‘수영장은 여전히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만 못 노는 것’
‘더 놀고 싶고 그러기로 했는데 수영장 운영을 안 하니까 어쩔 수 없는 것’
이 둘은 엄청난 차이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쉬웠지만 이후의 일정을 생각하면 반가웠다.
숙소로 돌아가면서 숯불구이 장비를 빌리려고 했는데 모두 대여가 돼서 남은 게 없다고 했다. 캠핑장이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행 가서 숯불 장비가 모두 나가서 대여가 안 된다는 얘기는 처음이었다. 일단 숙소에 가서 아이들을 모두 씻기고 나도 씻었다. 그쪽 집의 아빠 선생님과 함께 근처 마트에 갔다. 숯불구이 장비를 샀다. 대여하는 비용하고 크게 차이가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샤워한 게 아까울 정도로 바로 땀이 흘렀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정성스럽게 고기를 구워서 아이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게 나에게는 아주 큰 낙이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집에서는 뒤처리가 너무 성대해지니 자주 하지도 않고, 해도 약식으로 하게 된다. 집에서 못하는 걸 하니까 좋기도 했다. 가래떡도 굽고, 마시멜로도 굽고, 고구마도 구웠다.
아이들은 꽤 늦은 시간까지 숙소 주변과 숙소를 넘나들며 놀았다. 특별한 날이니 만큼 취침 돌입 시간을 미뤄줬다. 마음 같아서는 밤새 놀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을 재우고 어른들만의 오붓한 대화의 시간도 가져야 하니 적당한 시간에 아이들을 눕혔다. 첫째들은 함께 자고 싶다고 해서 소윤이가 지인의 카라반으로 갔다. 우리 카라반에는 아내와 시윤이, 서윤이가 들어갔다.
각 가정의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는 동안 남편들은 먼저 자리를 잡고 대화를 시작했다. 양쪽 엄마 모두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고 다시 나왔다. 잠들지 않고 나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첫째들은 아직 안 잔다고 했다. 특별히 자율 취침을 허락했다고 했다. 둘은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사부작 사부작 뭔가를 쓰며 수다를 떨고 있다고 했다.
어른들도 오붓한 대화를 시작했다. 캠핑장에서 밤공기를 맞으며 나누는 대화의 매력은 또 색달랐다. 건물 안에서 나누는 수다하고는 완전히 다른 매력이었다. 매료됐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인 게 가장 컸겠지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캠핑과 불멍’을 찾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첫째들은 한 시가 다 되도록 자지 않고 자기들끼리의 시간을 보냈다. 내일을 생각해서 ‘이제는 자라’고 하고 불을 껐다. 어둠을 뚫고 수다를 이어 나가기에는 너무 피곤했을 거다. 그래도 대단하다. 각자 아침부터 교회에 다녀 와서 물놀이까지 했는데, 그 시간까지 버티다니. 어른들은 세 시쯤 자리를 정리했다.
시윤이는 낮은 침대에서, 서윤이는 바닥에서 재웠다. 소윤이가 저쪽 카라반으로 가는 바람에 이층 침대 한 개가 통째로 비었지만 난 바닥에서 잤다. 왠지 모르게 너무 답답해 보였다. 구석에서 벌레도 튀어 나올 것 같았고. 불편과 수고를 감당하는 것이 캠핑의 낭만이라지만 자고 싸는 건 깨끗한 곳이었으면 하는 게, 모태 도시인인 나의 한계다.
그래도 캠핑은 좋았다. 완전한 캠핑(직접 텐트를 치는)은 엄두도 못 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