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5(월)
아이들은 일찍 일어났다. 지인의 자녀들은 원래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난다고 했는데 아마도 우리 자녀들의 영향을 받은 듯했다. 시윤이는 어제 자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다.
“엄마. 저 혼자 먼저 일어나면 어떻게 해여?”
“왜?”
“아니. 누나들은 먼저 일어나서 놀고 있는데 저만 못 나가면 어떻게 해여?”
“아, 걱정하지 마. 엄마가 같이 시윤이 데려다 줄게”
자기 혼자 못 놀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나 보다. 일찍 일어난 누나들은 시윤이를 깨우러 왔다. 덕분에 나도 깼고.
바로 아침을 준비했다. 자녀들에게는 볶음밥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내 자녀들이야 아빠가 만들어 주는 게 최고인 줄 알고 먹지만 다른 자녀들은 냉정하게 숟가락을 내려 놓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성심성의껏 열악한 환경을 뚫고 만들었다. 지인의 자녀들은 원래 아침을 안 먹거나 늦게 먹는다고 했다. 일부러 밥을 조금만 떠 줬는데도 다 먹는 건 힘들어 했다. 평소에 아침을 안 먹다 먹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맛이 별로여서 그랬는지는 모른다. 소윤이도 평소보다는 덜 먹었다. 집에서는 아빠 볶음밥이 최고라면서 몇 번을 더 먹더니 오늘은 처음 준 것도 다 못 먹었다. 시윤이는 평소처럼 먹었고. 서윤이가 나를 흡족하게 했다. 어제 저녁을 제대로 안 먹은 게 크겠지만 어쨌든 엄청 잘 먹었다.
어른들의 아침은 라면이었다. 전기 레인지의 성능이 떨어지는지 물을 끓이는데 엄청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면을 넣고도 한참 끓였더니 국물은 졸아들고 면은 푹 퍼졌다. 라면의 완성도에 민감한 사람은 화를 낼 법한 상태였다. 맛이야 어차피 수프 맛으로 먹는 거니까 다행이었다.
어제도 더웠는데 오늘은 어제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웠다. 뜨거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늘 퇴실을 하고 나서라도 수영장에 한 번 더 갈까 고민을 했었는데, 오늘은 아무도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자녀들만 어제 너무 재밌었다면서 오늘 또 가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더운 만큼 물놀이 하기에는 딱이었지만, 엄마 선생님들의 피로도가 너무 클 거 같았다. 물에도 못 들어가는 데다가 만삭의 임산부까지 있으니. 물놀이는 못 해도 퇴실하고 바로 헤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로 자녀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일단 집으로 가서 숨을 고르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날이 너무 더우니 야외에서 보기는 어려웠고 실내 어딘가에서 만나기로 했다. 장소는 차차 정하기로 했다.
소윤이가 어제 갑자기 손바닥이 아프다고 했다. 처음에는 뜨거운 것에 데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시가 박힌 것도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쓰라린 것처럼 아프다고 했다. 집에 가는 길에 병원에 들러 보기로 했다. 서윤이도 얼마 전부터 허벅지에 두드러기가 났는데 그것도 함께 볼 겸. 난 차에 시윤이와 남고 아내가 소윤이와 서윤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올라갔다.
“여보”
“어. 왜?”
“접수가 끝났다네. 한 시까지 진료인데 이미 사람이 꽉 차서 끝났대”
점심 시간이 임박해서 갔는데 이미 접수 마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집으로 왔다. 소윤이가 집에 와서는 또 멀쩡히 잘 지내는 듯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극히 멀쩡했다. 그쯤 지인에게 연락도 왔다. 며칠 전에 소윤이와 시윤이가 갔던 키즈카페에 가자고 했다. 그렇게 하기로 정하고 통화를 끝냈는데 소윤이가 자기는 손바닥이 아파서 가도 못 놀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괜찮은 거 아니었냐고 했더니 스치거나 닿으면 아파서 조심하고 있었다고 했다. 일단 키즈카페에 가는 건 취소했다. 점심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병원에 가 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아내가 소윤이와 서윤이를 데리고 갔다.
“시윤아. 아빠랑 있는 거 괜찮지?”
“네. 상관없어여”
혹시나 엄마를 따라 가고 싶을까 봐 물어봤는데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난 막간을 이용해 내가 할 수 있는 정리를 좀 하려고 했다.
“아빠. 우리 우노 하자여”
“우노? 아빠 이거 해야 되는데”
“아 딱 한 판만”
“그래. 알았어. 우노 하자”
그깟 정리야 뭐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아들이 보드 게임 한 판 하자는데 그걸 외면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시윤이와 둘이 앉아서 우노를 했다. 시윤이에게 집중하니 새삼 시윤이의 매력이 보였다. 참 신기하다. 어쩜 그렇게 자녀 각각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샘솟게 만드셨는지. 시윤이와 마주 앉은 시간이 오히려 나에게 더 선물 같았다. 시윤이는 할리갈리도 하자고 했다. 그게 끝나니까 도블도 하자고 했다. 다 했다. 즐겁게 했다. 정말 즐겁게.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천사 같은 시윤이’와. 그러고 보니 시윤이하고는 데이트를 아직도 못했다. 시윤이가 종종 얘기했는데.
아내가 진료를 마치고 돌아왔다. 소윤이는 일단 정확한 원인을 알기는 어렵다고 했다. 추정하기로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미세한 염증이 많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물론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일시적인 통증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혹시라도 통증이 며칠이 되도록 계속된다면 그때는 좀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처방 받았다. 서윤이는 수족구를 의심해 볼 수도 있겠지만 두드러기가 난 지 며칠 됐다고 하니까 오히려 그 가능성은 낮다고 하셨다. 손이나 발, 입에는 두드러기가 없는 걸로 봐서는 단순 접촉성 피부염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다. 물론 이 또한 단정할 수는 없고 추후에 다른 곳에도 두드러기가 생기면 의심을 해 봐야 한다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처방 받았다.
키즈카페 대신 조금 일찍 만나서 저녁을 먹고 카페에 가기로 했다. 이 만남 또한 당분간 이별에 가까운 긴 시간의 공백이 예정된 만남이었다. 그동안 가깝게 지낸 만큼 예정된 공백이 더 슬프고 아쉬웠다. 어쩌면 우리 가정의 삶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어제 물놀이도 하고 늦게 잔 덕분에 피로감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 누구도 헤어짐을 재촉하지 않았다. 카페도 가서 시간을 보내고 꽤 늦은 시간에 나왔다. 마치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것 같은, 당장 내일이라도 또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착각이었다. 곰곰이 생각하고 깊이 묵상하면 슬픔이 차오를 만한 순간이었다.
‘어? 정말 이게 끝인가? 이제 한동안 못 보는 게 맞나?’
싶은 기분이었다. 차라리 그게 나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 이별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너무 슬펐을 거다. 우는 막내를 달래고 자녀들을 단속해야 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울컥했으니까. 마치 가족처럼 다시 볼 게 분명한 사람들이지만, 그동안 공유하던 일상을 더 이상은 공유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무척 컸다. 이제는 멀리서, 가끔 한 번씩 만날 때마다 반가워하고 추억을 곱씹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아마 한 5분만 더 이별에 관해 얘기를 나누거나 집중했으면 모두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집에 와서도 한참 동안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함께 여행 다녀온 건 정말 잘했다는 생각도 했고 진짜 오늘이 마지막이었나 싶은 기분도 들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번 여행이 너무 재밌었다고 했다. 어제 물놀이 했던 게 너무 좋았나 보다. 다행이었다. 가기 전에 아주 좋은 추억을 만들어서. 다음에 만나면 자녀들끼리 서로 서먹서먹 한 건 아닐지 생각하니 내가 다 아쉬웠다. 영상통화가 있으니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