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6(화)
아내는 오늘도 바빴다. 나도 바빴고. 아내는 함께 처치홈스쿨 하는 선생님 집에 갔다. 한 번 간다 간다 하다가 결국 떠날 때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가게 됐다. 그 만남이 끝나고 나서는 친구도 만난다고 했다. 앞의 만남도, 뒤의 만남도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만나는 거였다.
덕분에 나에게는 자유시간이 생겼다. 집에 정리할 게 많았지만 버릴지 말지를 최종 판단하는 건 아내였다. 아내 없이 정리하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나의 가장 큰 역할은 아내가 버리기로 결정한 걸 갖다 버리거나 힘이 필요한 일에 힘을 쓰는 거였다.
대신 환불을 하러 다녀올 생각이었다. 간단히 집 앞에 있는 곳이 아니라 차로 30분을 가야 했다. 아내에게 카드도 미리 다 받아 놨다. 약속한 시간이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내보내고 나도 준비를 해서 나가려고 했다. 자동차 열쇠가 없었다. 아무리 찾고 또 찾아도 없었다.
“여보. 혹시 여보가 내 차 키 가지고 있나?”
“차 키? 집에 없어?”
“어 없는 거 같아”
“나한테도 없는데”
“혹시 차에 있나?”
“그런가?”
아내도 이미 차에서 내려 집에 들어갔을 때라 차를 살펴 보기는 어려웠다. 본다고 한들 그걸 나에게 가져다 줄 수도 없었으니 큰 의미도 없었고. 결국 난 계획을 수정했다. 환불은 내일로 미뤄야 했다. 대신 카페에 가기로 했다. 가기 전에 점심도 먹어야 했다. 아침을 걸렀으니 배가 무척 고팠는데 집에는 먹을 게 없었다. 진짜 없었다. 냉장고를 대대적으로 비우고 나서 음식이 확 줄었고, 그나마도 계속 더 비우고 있는 중이었다. 기껏해야 라면 정도가 먹을 만했다. 밥이라도 있었으면 계란 프라이라도 해서 비벼 먹었겠지만, 밥도 없었다. 나 먹자고 솥을 채워서 밥을 하는 건 귀찮기도 하고 아깝기도 했다. 카페에 가기 전에 햄버거 가게에 들러서 햄버거를 먹었다. 애초에 햄버거를 먹고 싶었던 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 오랜만에 혼자 카페에 갔다. 어색했다. 뭔가 대단한 걸 하러 간 건 아니었다. 그냥 밀린 일기를 최대한 열심히 썼다. 무엇을, 누구를 위해 이토록 성실하게 일기를 쓰는지 스스로 의문일 때도 많지만 일단 쓴다. 그동안 쓴 게 아까워서라도.
아내는 꽤 늦게 돌아왔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서 왔다. 난 먼저 집에 가서 저녁을 준비했다. 아내가 사 놓은 간편 조리 삼계탕이 오늘의 저녁이었다. 정말 간편했다. 부속 재료 넣고 닭 넣고 물 부어서 끓이면 끝이었다. 아무런 간도 하지 않았는데 괜찮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닭에서 우러나오는 고소한 맛이 제법 진했다.
닭은 두 마리였다. 아이들은 이곳 저곳에서 간식을 많이 먹었다고 했다. 아내는 아마 배가 안 고플 거라면서 일단 한 마리만 꺼내자고 했다. 닭 한 마리를 솥에서 꺼내서 열심히 살을 발라줬다. 나도 아내도 당장 먹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 먹을 것만 열심히 발라줬다. 배가 안 고프다던 세 남매는 생각보다 열심히 먹었다.
“소윤아. 더 먹을래? 더 먹을 수 있어?”
“네. 더 먹을래여”
소윤이는 물론이고 시윤이와 서윤이도 빠르지 않은 속도였지만 꾸준히 먹었다. 결국 두 마리를 다 먹었다. 서윤이는 국물을 무한히 퍼 먹었다. 간이 하나도, 정말 하나도 안 됐는데 맛있었나 보다. 평소에도 워낙 짜지 않게 먹여서 그런가 보다. 인스턴트 삼계탕이었지만 더운 날씨에 기력과 체력 보충을 충분히 시킨 것 같아 뿌듯했다.
저녁에는 목장 모임이 있었다. 이것도 마지막이었다. 아내에게 세 남매를 맡기고 교회로 갔다. 마지막 목장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카페에 들러서 아내가 마실 라떼를 사려고 했다. 카페로 가고 있는데 아내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낮잠을 무려 세 시간이나, 옮겨도 깨워도 계속 잔 서윤이가 여전히 안 잔다는 내용이었다. 그 메시지에는 따로 답장을 하지 않고 내 용건을 전달했다. 아내도 내일 마지막 목장 모임이었는데 혹시 목자 집사님 선물을 사야 하냐고 물어봤다. 아내는 그러자고 하면서 다른 말을 덧붙였다.
“나는 하이쓰리파인즈 배달 시킴. 여보 커피는 안 시킴”
황당했다. 난 지금 자기 커피 사러 가고 있는 건데.
“근데 내 커피는 왜 안 사?”
“커피 마시고 오려나 싶어서 안 시켰는데”
“난 지금 여보 라떼 사려고 윌 가는 중이었는데”
방향을 틀어서 상품권을 사러 갔다. 커피는 안 샀다. 아내는 서윤이가 잠들기 전에 나왔다고 했다. 물론 서윤이가 순순히 받아 들이지는 않았다. 울고 불고 쫓아 나오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그 단계를 넘어가면 순순히 받아들이는 평화의 단계가 찾아온다.
아내는 계속 정리, 또 정리였다. 항상 ‘이게 없다, 저게 없다’ 그러면서 살았던 것 같은데 버릴 게 왜 그리도 많은지. 하루 하루 지날 수록 모든 게 마지막이었다. 심지어 아내는 오늘 이런 말도 했다.
“아, 이 세탁기로 빨래하는 거 마지막이네”
내가 뭘 그런 것까지 의미를 부여하냐면서 막 웃었더니 아내는
“왜. 마지막은 마지막이잖아”
라면서 받아쳤다. 누가 보면 손빨래로 돌아가는 줄 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