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7(수)
그야말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관계도, 만남도, 집 정리도. 아내는 마지막 목장 모임을 하러 갔다. 내가 있었는데도 마지막이니 아이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그 사이 난, 어제 못한 환불을 하러 갔다 왔다. 개점 시간에 딱 맞춰서 갔다. 급히 환불만 처리하고 바로 집으로 와야 했다. 쓰던 냉장고를 아는 분에게 드리기로 했는데, 환불하고 집에 돌아오면 딱 그 시간이었다. 거의 다 비우고 정말 꼭 가지고 가야 할 것만 냉장고에 남았다. 기사님이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계셨고 나와 함께 집에 들어오셨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냉장고 속의 짐을 급히 빼서 아무 데나 막 놨다. 냉장고 철거가 끝나니 에어컨과 세탁기 철거 기사님이 오셨다.
집이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됐다. 폭탄 맞은 집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기도 했다. 나름대로 정리를 좀 한다고 했는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난 곧장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했다. 아내는 목장 모임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했는데 아이들은 목장 모임만 마치고 내가 데리고 오기로 했다. 미용실을 예약해 놨다. 주인공은 시윤이었다. 난 계속 길렀으면 했는데 시윤이가 너무 덥고 불편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자르기로 했다.
교회로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시윤이는 나를 보더니 두 발을 방방 구르며 나를 반겼다.
“아압빠아아악”
그러면서 내 허벅지에 매달리는 기분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내 어찌 이 녀석의 작은 호흡이라도 외면할 수 있을까.
감사하게도 서윤이는 가는 차 안에서 잠들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두 시간은 걸릴 텐데 그걸 어떻게 버티나 약간 막막하기도 했는데, 잠들었으니 한 숨 돌렸다. 소윤이와 시윤이야 그 정도 시간쯤은 이제 너끈하다.
아내는 목장 모임과 식사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서 정리와 버리기를 재개했다. 에어컨도 이미 철거를 했기 때문에 엄청 더웠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야 겨우 시원한 느낌을 받을까 말까인데 쉼 없이 움직여야 했으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을 거다. 실제로 아내는 시윤이와 힘든 일을 겪었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지친 목소리였다.
미용실 체류 시간은 두 시간 정도였다. 중간에 서윤이도 깨긴 했지만 아주 얌전히 앉아서 오빠의 파마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보통은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쪽이 훨씬 힘들지만 오늘만큼은 아내가 압도적으로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파마를 마치고 나서는 점심을 먹었다. 아주 늦은 점심이었다. 이른 저녁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장모님도 잠깐 오셨다. 정말 눈앞으로 다가온 이별에, 작은 기회라도 생기면 수시로 아이들 얼굴을 보시려고 애를 쓰신다.
“여보. 늦게 와”
이것은 전우애였다. 고통은 나 하나로도 족하니 너라도 살 길을 찾으라는 눈물 어린 우정이랄까. 아내의 전언이 아니었더라도 빨리 가기 어려웠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예전에 함께 일했던 형의 사무실도 찾아갔다.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모르는 사람의 사무실이었으면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다. 그나마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난리를 피워도 좀 괜찮았다.
꽤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더위를 피하기 위한 목적은 조금도 없었다. 아이들이 집을 오래 비울수록 아내의 정리가 수월해지니 굳이 오랜 시간을 밖에서 머물렀다. 집에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와 계셨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우리(아내와 나)가 쓰던 가전 제품 하나를 가지고 가시기로 하셨고, 그걸 실으러 오신 거였다. 오신 김에(?) 고군분투하는 아내를 도와 각종 정리에도 힘을 보태셨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가시고 나서, 간단하게 과일로 저녁을 대신했다. 모든 가전이 다 빠지고 난 뒤라 집이 굉장히 허전하면서도 ,정말 무질서하게 늘어 놓은 짐 때문에 어수선하고 복잡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에어컨이 없어서 힘들었다. 선풍기에 두 대에 의존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저녁 아닌 저녁을 먹었다. 예배도 드렸다. 이 집에서 드리는 마지막 가정 예배였다. 마음 속에서는 감사함이던게 목구멍 근처에서 뭉클함으로 변신했다. 아이들과 이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기도 했고. 아쉽기도 하면서 슬프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찬물로 샤워를 하니 그래도 좀 괜찮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자기 직전에 샤워를 했다. 최대한 움직임을 줄이고 바로 눕도록 했다. 아내는 계속 정리를 해야 해서 내가 아이들을 재웠는데, 찬물로 씻고 바로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쐬니 생각보다 덥지는 않았다. 오히려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자는 것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어디까지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의 이야기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땀이 맺혔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와서도 정리를 계속했다. 꽤 많은 걸 정리하고 버렸는데도 여전히 할 게 많아 보였다.
난 내일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니, 그것도 아내 없이 홀로 가야 하니 아내보다 먼저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