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8(목)
다섯 시 반에 알람을 맞췄는데 다섯 시 이십 분에 눈을 떴다. 굉장히 피곤했지만 꾸물거릴 여유가 없었다. 그 이른 시간에 일어났는데도 여유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먼 거리를 가야 했다. 내 준비를 먼저 마치고 아내를 깨웠다. 그토록 잠이 없는 나의 자녀들도 아주 곤히 잠들어 있는 이른 시간이었다. 따로 깨우지 않고 자고 있는 상태 그대로 옷을 갈아입혔다. 그랬더니 깼다.
아내가 떠나는 우리를 배웅했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나도 운전석에 앉았는데 조수석은 비어 있는 게 너무 어색하고 별로 좋지 않았다. 1박 2일 동안 혼자 아이 셋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이나 걱정은 거의 없었다. 대신 ‘아내 없이 혼자’인 상황이 싫었다. 슬슬 바퀴를 굴려 출발하는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드는, 차 창 밖의 아내를 보니 기분이 복잡했다. 어디 해외를 가는 것도 아니고 몇 개월씩 떨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굉장히 아내 의존적인 사람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됐다. 약간의 불안, 약간의 긴장, 약간의 뭉클함 같은 게 계속 있었고 빨리 아내와 다시 만나고 싶었다. 언젠가 세상과 작별해야 할 때가 오면 내가 아내보다 딱 하루 정도 더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또 했다.
나와 아이들은 오늘이 이 집과의 마지막이었다. 모든 짐이 다 빠지고 나서 기념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겼으면 좋았을 텐데, 짐보다 우리(나와 아이들)가 먼저 빠지게 됐다. 그래서 더 묘하고 뭉클한 기분이었나 보다. 결혼하고 가장 오래 산 집이었다. 여기서 시윤이와 서윤이도 태어났다. 이 곳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나눈 시간과 추억도 적지 않았다. 아침 댓바람부터 감성에 젖어서 콧날이 시큰했다.
서윤이는 차에 탄 지 얼마 안 돼서 또 잠들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긴 했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가는 동안 한두 번씩 잠들고 그랬다. 그럴 만한 꽤 긴 여정이었다. 여섯 시 반쯤 출발해서 한 시 반쯤 도착했다. 물론 평소보다 휴게실에 많이 들르기도 했고 체류 시간도 제법 길었다.
휴게소에서 감자, 소떡소떡, 호두과자를 사서 아이들 아침으로 먹였다. 간단히 허기만 때우는 정도였다. 이 때도 아내 생각이 많이 났다. 사실 어느 때를 특정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계속 아내가 보고 싶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고맙게도 조금도 힘들게 하지 않았다.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다니며 챙기면 기본으로 따라오는 고단함 정도만 느껴졌고, 그 이상은 아니었다.
도착하니 점심을 먹어야 했다. 예전에 살았던 곳이라고 해도 이 동네는 처음이었다. 어디 가서 밥을 먹어야 할 지 감이 안 잡혔다. 그렇다고 맛집을 검색해서 갈 여유도 없었고 간다고 해도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려울 게 뻔했다. 다만 뭔가 뜨끈한 국물에 밥이 먹고 싶다는 막연한 식욕이 느껴졌다. 근처의 큰 마트에 가기로 했다. 마침 비도 오고 그래서 아이들 내리고 태우기도 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식당은 딱 한 곳이었다. 콩나물 국밥을 파는 곳이었는데 다행히 아이들이 먹을 만한 음식도 팔았다. 뚝배기 불고기와 고기 만두, 돈까스를 시켰다. 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한 음식이었다. 얼큰한 콩나물 국밥 한 그릇이 먹고 싶었지만 나 혼자 먹자고 그걸 시키기는 좀 그랬다. 세 녀석 모두 엄청 잘 먹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안 먹지도 않았다. 그냥 적당히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K의 집(여름마다 울산에 가서 자는 집)으로 갔다. 오늘 우리가 묵을 거처였다. K는 출근하고 없었고 K의 아내와 아이들만 있었다. 엄마의 부재가 아이들에게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와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만 아내를 그리워했다. 신기하게도 엄마에게 전화 한 통 해 달라는 소리도 없었다.
아내는 에어컨이 없는 무더운 집에서 마지막까지 정리하느라 고생이었다. 저녁에는 이삿짐도 싸러 오셨는데 반포장이라 주방의 짐은 아내가 직접 싸야 했다. 장모님과 장모님과 친한 권사님이 오셔서 도와주지 않았으면 제 시간에 못 끝냈을 거라고 했다. 아이 셋을 홀로 데리고 다닌 나보다 아내가 더 고생이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이들을 씻기고 눕히니 긴장이 풀렸는지 피로가 몰려왔다. 아이들은 거의 눕자마자 잠들었는데 바로 나가지 않고 조금 더 누워 있었다. 너무 피곤했다. 다행히 잠들지는 않았다.
K와 그의 아내와 함께 치킨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아내 없이 이렇게 조합을 이룬 건 처음이었다. 이때도 아내가 많이 생각났다. 아내는 모든 짐이 빠지고 텅텅 빈 집을 혼자 보는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뭉클하다고 했다. 비워 놓고 보면 그저 건물이고 공간이지만 그 안에 많은 시간과 기억이 담겼다. 단순히 이사가 아니라, 꽤 급격한 방향 전환이라 복잡한 감정이 깊어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지막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