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9(금)
아내도 나도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아, 아이들이 더 바빴나 보다. 아침에 깼는데 아이들은 이미 거실에 나가고 없었다. 나 혼자였다. 아홉 시까지 새로 이사 갈 집에 가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이층 침대를 설치하러 온다고 했는데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도착한다고 해서 더 서둘렀다.
서윤이가 굳이 나를 따라 가겠다고 했다. 치즈를 비롯한 온갖 유혹을 건넸지만 완고했다. 그 어떤 달콤한 미끼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빠를 그렇게 좋아하니 기분은 좋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좀 떨어져 주길 바랐다. 어쩔 수 없이 서윤이를 데리고 나왔다.
우선 빈 집에 가서 아이들 이층 침대를 받았다. 기사님 두 분이 오셔서 설치를 하셨다. 설치는 금방이었다. 새로운 집에서는 아이들과 따로 떨어져서 잘 생각이다. 이층 침대까지 들였으니 강력하게 추진할 거다. 서윤이는 자기도 거기서 자는 거냐며 신이 난 모습이었다. 대충 그렇다고 대답하고 넘어가도 되겠지만, 서윤이는 자기 언니를 닮은 면이 있다. 허투루 대답했다가는 분명히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지도 모른다.
“아니야. 서윤이는 바닥에서. 언니랑 오빠는 침대에서 자고 서윤이는 바닥에서 자는 거야. 알았지?”
잔금 치르러 부동산에 가야 했는데 그 무렵 쯤에 옷장도 온다고 했다. 시간이 촉박해서 비밀번호를 알려 드리고 문 안에 넣어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마침 기사님을 마주쳤다. 문만 열어 드리고 급히 차에 탔다. 서윤이는 부동산에서 얌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울거나 짜증을 낸 건 아니었다. 기분은 좋았지만 굉장히 부산스러웠고 신경이 쓰였다.
잔금을 다 치르고 나서는 다시 빈 집으로 갔다. 냉장고와 세탁기, 건조기가 들어 온다고 했다. 그 즈음 아내는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제 친정에서 자고 형님(아내 오빠)이 공항까지 태워 준다고 했다. 형님의 아내와 장모님도 동행했다. 형님네 부부는 데려다 주고 바로 돌아갔다고 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장모님의 친한 친구와 아내의 사촌 언니도 공항에 나오셨다고 했다. 다들 눈물바다였고. 누가 보면 어디 해외라도 가는 줄 알았을 거다.
아내가 없으니 각종 변수에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아이들 이층 침대 위치도 애초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졌고, 세탁기와 건조기의 위치도 마찬가지였다.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도 똑같았다. 아내가 최종 결정을 해야 하는데 현장에 있는 건 나라서 계속 아내에게 물어 봐야 했다. 정작 아내는 직접 보지 못하니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그 와중에 서윤이는 칭얼대기 시작했다. 당연하다. 아무것도 없는 빈 집에서 할 게 없었다.
“아빠아. 띠디 두데여어”
“치즈? 치즈는 아까 서윤이가 안 먹는다며. 집에 있으면 준다고 했지”
“아니이이. 그게 아니라아. 띠디 두데여어”
계속 떼를 썼다. 계속 아내와 연락하랴, 기사님들과 이야기 하랴, 서윤이 상대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앞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치즈를 샀다. 서윤이는 치즈 두 장에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물론 그때 뿐이었지만.
거기서 배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짐이 빠진 집이라 휴지도 없었다. 다시 편의점에 가서 휴지를 샀다. 휴지를 사긴 했는데 화장실에 어떻게 가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기사님 두 분은 여전히 가전 제품을 설치하고 계셨다. 서윤이에게 잠깐 있으라고 하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1분도 되지 않아서 문을 두드리며 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서윤이를 데리고 들어가기도 그렇고. 고민을 했지만 뾰족한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서윤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왠지 모를 자괴감과 수치심이 느껴졌다. 자녀와 둘이 있는 엄마들이 호소하는 ‘배변권 침해’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아빠. 똥 따여어?”
“어”
“왜 아딕도 따여어”
“그냥. 배가 아파서”
“이데 그만 따야뎌어어”
문을 사이에 두고 나눈 대화가 아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나눈 대화다.
정수기도 설치하러 오셨다. 여기도 변수가 존재했다. 원래 생각했던 위치에 설치가 안 된다고 했다. 아내는 비행기 안이라 연락이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결정했다. 물론 서윤이는 여전히 칭얼거렸다.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K의 가족은 점심에 약속이 있다고 했다. K 아내의 아버님 생신이라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가는 길에 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그냥 식사 자리에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원했고, 나도 그래 주면 굉장히 고마운 일이었지만 엄청 미안한 일이었다. 그냥 아이 둘을 맡겨 놓는 것도 미안한데 부모님 생일 식사 자리라니. K와 그의 아내는 정말 괜찮다고 했다. 사실 서윤이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버거웠다. 소윤이와 시윤이라도 잠시 누가 맡아 주면 굉장히 도움이 되는 상황이긴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조금 더 맡기기로 했다.
드디어 아내가 도착했다. 무척 반가웠다. 안심, 안도, 평안, 안정, 기쁨, 든든함 같은 게 한꺼번에 밀려왔다. 아내가 도착하고 나서도 계속 바빴다. 해야 할 일이 끊이지 않았다. 동사무소(주민센터, 행정복지센터 등의 명칭이 영 싫다)에 가서 서류를 하나 떼야 했다. 굉장히 간단한 일이고 가까운 곳에 가면 되는 일이었지만, 은근히 번거로웠다. 시간도 꽤 걸렸다. 아내도 나도 배가 무척 고팠다. 어디 가서 자리를 잡고 먹기에는 시간과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햄버거를 샀다. 난 아내가 동사무소에 가서 일을 처리하는 동안 차에서 허겁지겁 먹었다. 서윤이는 차에서 잠들었다. 서윤이가 깨면 먹일 김밥도 샀다.
오후에는 이삿짐이 도착했다. 많이 버린다고 버렸는데도 역시나 꽤 많았다. 반포장 이사라 정리는 우리가 해야 했다. (완)포장 이사를 해도 결국 정리는 우리가 해야 하길래 처음으로 반포장 이사를 해 봤다. 덕분에 짐을 올리는 건 엄청 금방 끝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저녁까지 K네 가족이 봐 주기로 했다. K의 아내 쪽 식구들과 계속 시간을 같이 보낸다고 했다. 당사자인 소윤이와 시윤이는 전혀 거부감 없이 잘 어울렸다고 했다. 뭐 워낙 친한 친구(K의 아들)가 있어서 그랬겠지만, 그래도 참 넉살이 좋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순수함인 것 같기도 했고.
아내와 나는 열심히 짐 정리를 했다. 아내가 짐을 보내기 전에 정리를 한 덕분에 풀 때 꽤 수월했다.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가 없어서 심심했을 텐데 굉장히 잘 있었다. 물론 중간에 한 번씩 칭얼대기도 했지만 그 연령(?)에 그건 당연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우리 서윤이 너무 기특하네”
소리가 절로, 몇 번씩이나 나올 정도로 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혼자 중얼중얼 하면서 놀았다. 덕분에 아내와 나의 정리도 비교적 빠르게 진행됐다.
소윤이, 시윤이와는 저녁이 돼서야 만났다. K네 가족도 함께 왔다. 주방과 방 하나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됐지만 거실은 아직 난장판이었다. 내일 옷장이 설치가 돼야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것 같았다. 어수선 했지만 이사의 분위기를 타서 중국 음식을 시켜 먹었다. 분명히 ‘우리 집’이었는데 우리 집 같지가 않았다.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아내도 비슷한 소감을 전했다. 숙소 같았다. 언젠가 비워줘야 하는.
K의 가족이 가고 아이들을 씻겨서 눕혔다. 공식적(?)으로는 오늘이 살던 집과 이별하는 날이자 새로운 집과 만나는 날이었다. 첫날 밤이었다. 아직 이사의 분위기가 가득한, 정리되지 않은 집에 누워서 자는 아이들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다. 세 녀석 모두 잠자리가 예민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들어 보니 하루 종일 엄청 잘 놀았다고 했다. 덕분에 둘 다 금방 잠들었다. 소윤이가 그렇게 금방 잠들 정도였으면 진짜 열심히 놀았나 보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도 정리를 계속했다. 새벽 네 시가 다 되도록 움직였다. 안 그래도 내 집 같지 않은데 정리라도 빨리 해서 ‘내 집 같은 아늑함’이라도 만들고 싶었다.
다시 이 곳으로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쨌든 오랜만이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