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전혀 실감이 안 나는 여행 같은

by 어깨아빠

아이들은 새로운 집이라 어색하고 그런 것도 없는 건가. 여느 날처럼 일찍 일어나서 자기들끼리 거실에 나가서 놀았다. 요즘 시윤이와 서윤이의 다투는 소리가 자주 들려서 거슬릴 때가 많긴 해도 놀 때는 또 잘 논다. 나도 꽤 이른 시간에 눈을 떴지만 바로 기척을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있었다. 금방 걸리긴 했지만.


양쪽 부모님들이 다음 주 월요일부터 휴가라서 집에 오시기로 하셨다. 양쪽 모두 이틀 밤을 보내고 가신다고 했다. 이 먼 거리를, 소중한 휴가까지 써 가며 오시는 걸 보면 궁금하시긴 했나 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이 보고 싶기도 하셨고. 누구를 초대할 집 상태가 당연히 아니었다. 부모님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내) 부모님은 아침 여덟 시가 조금 넘었을 때 근처에 왔다고 하셨다. 막히는 시간을 피해서 새벽 네 시에 출발하셨다고 했다. 나를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의 장거리 운전 이야기를 많이 겪었지만, 이렇게 빠른 출발은 본 적이 없었다. 뭔가 나의 엄마, 아빠 답다고 생각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당연히 너무 좋아했다. 방방 뛰며 좋아했다.


일찍 오시긴 했는데 딱히 할 게 없었다. 어디 엉덩이 붙이고 앉으실 만한 곳도 없었다. 널브러진 짐을 피해 그냥 바닥에 앉아야 했다. 오전에 옷장을 설치해 주러 오셨는데 처음 말씀하실 때는 빠르면 두 시간이면 된다고 하셨다.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두 시간은 고사하고 오전 안에 끝나지도 않았다. 오후 네 시쯤 되어서야 끝났다. 아내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평했다. 우리가 직접 했으면 오늘은커녕 내일이 되어도 못 끝냈을 거다.


덕분에 (내) 엄마와 아빠도 하루 종일 대기하셨다. 특별히 하신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쉰 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쉴 만한 공간과 분위기가 아니었다. 소파라도 하나 있었으면 모를까 그저 바닥에 앉아 있어야 했다. 거기에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까지 쉬지 않고 떠들고 장난을 치니 무척 소란스러웠다. 언젠가 가 봤던 앤트러사이트 서교점의 깊은 고요함이 그리웠다.


아빠는 쉬기는커녕 오히려 일을 하셨다.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의 위치를 바꾸느라 고생하셨다. 이런 류의 일에 관심도 흥미도 능력도 없는 나를 대신해서 아내의 구상을 현실로 옮겨 주셨다. 아빠를 보면서 ‘꼭 전문가가 아니어도 인생의 연륜으로 대신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다 직접 했을 거다. 아무튼 난 뒤로 빠지고 아빠와 아내가 호흡을 맞춰 냉장고 배치를 마무리했다.


옷장 설치가 마무리 되고 나서는 다시 정리에 열을 올렸다. 엄마와 아빠도 함께 하셨다. 덕분에 속도가 엄청 빨랐다. 옷장을 기다리던 옷과 이불을 빠르게 옷장에 넣고, 버릴 건 다 갖다 버리고 나니 이제 좀 사람 사는 집 같았다. 앉아서 쉴 만한 곳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짐과 쓰레기가 눈에서 사라진 것만으로도 제법 괜찮았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이때쯤 도착하셨다. 아침 아홉 시에 출발하셔서 다섯 시쯤 도착하신 거다. 엄청 피곤하셨을 텐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으셨다. 딸과 손주들을 보러 오는 길이라 그랬을 거다. 그래도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오셨을 때는 집이 꽤 괜찮은 상태였다.


저녁은 밖에서 먹었다. 차를 타고 가기에는 너무 가깝고 걷기에는 약간 먼 듯한 애매한 거리였다. 날씨가 꽤 습하고 더웠지만 걸어갔다. 걷기에 만만한 날씨는 아니었다. 바람이 불면 시원하다는 착각이 일기도 했지만, 분명히 더운 날씨였다. 금방 땀이 맺혔다. 저녁은 모두에게 만족스러웠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도 잘 먹었다. 배가 고팠는지 마지막까지 더 없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부모님들도 만족하셨다. 카페에도 들르긴 했는데 잠깐 앉아 있다가 나왔다. 아이들과 함께 있기에 적당하지도 않았고 다들 피곤했다. 집에 간다고 바로 잘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집이 그리웠다. 그렇게 어색하고 내 집 같지 않아도 집이라고 그리운 게 신기했다.


아이들은 오늘도 엄청 빨리 잠들었다. 피곤했을 거다. 양쪽 부모님과 함께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나눴다. 부모님들도 마치 여행을 온 기분이라고 하셨다. 어디 숙소에서 자는 것 같다고 하셨다.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집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자녀와 손주가 멀리 떠나온 게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을 거다.